새누리 "밀어붙여"… 민주 "다시 국정원"… 진보정당 "각자도생"… 안철수 "신당 깃발"새누리-재보선 유리 고지… 민주-돌파구 찾기 안간힘진보-최대 위기 활로 모색… 안-민생행보 보폭 넓혀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과 김진태 의원이 6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석기 사건'이 블랙홀처럼 정국 이슈를 빨아들이면서 그 여파로 정치권 지각변동마저 감지되고 있다.

새누리당이 힘을 얻어 공세를 취하는 반면, 민주당은 반전된 상황에서 수세 국면을 벗어나려 한다.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진보 정당은 최대 위기를 맞아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찾고 있고, 정치적 변방으로 몰렸던 안철수 의원은 '신당'의 깃발을 세우는데 안간힘이다.

정치적 역학관계가 급작스럽게 변하면서 코앞으로 다가온 10월 재ㆍ보궐선거, 나아가 내년 6월 지방선거도 영향을 받게 됐다. '이석기 후폭풍'의 추이에 따라 정국은 한동안 롤러코스터 국면에 놓일 전망이다.

새누리당 공세로 국면 전환

'이석기 사건'은 정치권 최대 이슈였던 '국정원 사건'을 한순간에 무력화시켰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과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에 따른 여야의 정면승부에서 새누리당은 늘 수세에 몰렸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오른쪽 두번째)가 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당은 촛불집회의 힘까지 더해 정부, 여당을 '국정원 사건'의 주범으로 몰아붙였고, 국정원 청문회에 따른 여론악화는 고스란히 새누리당의 부담이 됐다. 국정원 사건으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근혜정부의 지지율은 3%가량 떨어졌고, 이는 새누리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이석기 사건'은 새누리당에 반전의 기회를 준 돌파구가 됐다. 새누리당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향한 비판의 창을 체포동의안 처리를 전후해 '민주당'으로 돌렸다. 지난해 총선에서 통진당과 야권연대로 이 의원의 국회 입성을 가능하게 한 데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포석이다. 아울러 민혁당 간첩사건으로 수감중인 이 의원이 2003년 8월 광복절 때 가석방된 것에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의원이 관련됐다는 주장을 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새누리당 심재철 최고위원은 "민주당은 야권연대를 통해 친북 인사들의 국회 진입을 도운 원죄를 졌다"면서 "민주당은 이번 사태에 대해 우물쭈물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4ㆍ11 총선에서 야권연대의 최대 수혜자는 통진당이었다. 통진당은 민주당의 '양보'에 힘입어 수도권 지역에서만 4석을 차지하는 등 전체적으로 13석을 얻으면서 원내 제3당으로 부상했다. 지역구 의원인 이상규(서울 관악을)·김미희(성남 중원)·오병윤(광주 서구을) 의원이 야권 단일화를 통해 당선됐다.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비준 때 최루탄을 던졌던 김선동(전남 순천ㆍ곡성) 의원은 당시 민주통합당의 노관규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통진당 비례대표인 이석기ㆍ김재연 후보가 원내에 진출했다..

새누리당이 '이석기 사건'에 대해 민주당에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한 달 넘게 장외투쟁 중인 민주당을 압박해 원내로 회군토록 하려는 데 있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에서 입법과 예산안의 원활한 처리에 야당의 협조가 필요한 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가운데)와 박원석 정책위의장(오른쪽), 서기호 의원이 5일 국회 정론관에서 '국가정보원 전면개혁 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또한 장기적으로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하고 있다. 특히 10월 재보선은 여야 간 장기 대치의 분수령으로 '이석기 사건'에 대한 민심이 반영되는 선거이다. 때문에 새누리당은 '이석기 사건'으로 촉발된 공안정국을 활용해 야권의 '정권 심판'공세를 약화시키고 선거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겠다는 복안이다. 당의 핵심 관계자는 "야권에서 종북 의원이 내란음모를 꾀한 사건인 만큼 새누리당에 유리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1차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장에 친박(친 박근혜)계인 홍문종 사무총장을 임명하는 등 재보선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위기의 민주당 해법은 무엇?

'야당'의 존재감이 없다는 여론의 질타에 천막당사까지 설치하며 결연한 의지를 보여 왔던 민주당은 '이석기 사건'으로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됐다.

여권에 맞서 '국정원 사건'의 선봉에서 투쟁하던 민주당은 촛불집회의 힘까지 받으며 기세등등하게 나가던 차에 '이석기 사건'으로 급격히 동력을 잃었다.

안철수 의원이 5일 오후 인천시 남동구 인천YWCA에서 인천시민 대토론회 '인천, 새정치' 만나다'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은 이 의원의 '내란음모'와 국정원의 정치 개입 불법은 별개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지만 메아리는 희미하다. 민주당 스스로 촛불집회에서 발을 빼고, 진보당과의 거리두기에 나서면서 다시 '존재감'이 위협받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티가 '이석기 사건'의 파문이 일던 8월 마지막주(8월 26~30일)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1주일 전 대비 2.1%p 상승한 61.4%를 기록했다.

정당지지율에서는 새누리당이 48.5%로 전주대비 0.6%p 상승한 반면 민주당은 1.1%p 하락한 26.0%에 그쳤다. 양당 격차는 22.5%p를 기록했다. 통합진보당도 전주보다 0.3% 하락한 2.2%를, 정의당도 0.2% 떨어진 1.6%의 지지율을 기록했고, 무당파는 1.6%p 상승한 19.9%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주도한 '통 큰'행보는 '주홍글씨'의 부메랑으로 돌아와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새누리당으로부터는 원내 복귀를, 야권에서는 더 강한 투쟁을 요구하고 있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5일 "민주당은 원내외 병행투쟁이라는 '양다리 정치'를 끝내고 민생 현안이 산적한 국회를 정책투쟁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원내 복귀를 압박했다. '이석기 사건'으로 장외투쟁에 제동이 걸린 것을 기화로 정국 주도권을 쥐고 가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민주당은 원내외 병행투쟁을 고수하면서 '이석기 사건'으로 여권에 쏠린 흐름을 국정원 개혁 국면으로 되돌리겠다는 입장이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많은 국민은 새누리당의 정치공세가 국정원 개혁 회피용 음모이고 책동이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민주당의 최대 고민은 정국 방향의 분수령이 될 10월 재보선이다.

현재 재보선이 확정된 지역은 새누리당 고희선 의원이 별세한 경기 화성갑과 무소속 김형태 전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한 포항남-울릉 2곳이다.

새누리당 안덕수(인천 서구ㆍ강화을)ㆍ이재영(경기 평택을)ㆍ성완종(충남 서산ㆍ태안)ㆍ심학봉(경북 구미갑) 의원 지역과 민주당 최원식(인천 계양을)ㆍ 신정용(경기 수원을)ㆍ이상직(전북 전주ㆍ완산을) 지역 등 8곳은 9월 30일까지 대법원 판결이 내려져야 재보선이 치러진다.

민주당은 전북 지역 외에 수도권 4곳에 기대를 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에 열세이거나 박빙승부가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이석기 사건'은 민주당에 치명적이다. 안규백 재보선 기획단장은 "대통령 임기 초반인데다 공안정국이 형성돼 있어 분위기가 야권에 우호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안철수 본격 행보, 신당 창당 주력

'이석기 사건'의 또 다른 수혜자는 안철수 의원이다. 여야가 정국 이슈를 선점하면서 대중의 관심권에서 다소 멀어졌던 무소속 안 의원은 이번 사건으로 야권이 공격을 받으면서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10월 재보선과 신당 창당에 속도를 낼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안 의원은 지난 5월 22일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을 창립하고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를 이사장으로 영입하면서 유력 대선주자 때에 버금가는 기대를 한껏 모았다.

그러나 정치 경험 부족에 따른 미숙한 행보와 국가 현안들에 제 목소리를 못 내면서 '거품론'마저 일었다. 전현직 정치인들은 선뜻 안 의원에 다가서지 못했고 기존 정당을 고수했다.

그러던 8월 22일 최장집 교수가 '내일'의 이사장직을 사임하면서 안 의원은 결정적 위기를 맞았다. 10월 재보선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다진 후 내년 초 신당 창당과 6월 지방선거를 거쳐 새로운 대중정당을 창당한다는 밑그림도 흔들렸다.

그런 와중에 '이석기 사건'은 기존 정당과는 다른 새 정당을 모색해온 안 의원에게 힘을 실어줬다.

안 의원은 지난 1일과 5일 부산과 인천을 방문한 데 이어 8일에는 수원을 방문하는 등 최근 지방 민생행보의 보폭을 부쩍 넓히고 있다.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지지세 확산을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신당'에 대한 지지율은 새누리당에는 뒤지나 민주당보다 5~10%가량 앞서 있다. 특히 수도권괴 호남에서 민주당보다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것은 고무적이다.

안 의원은 최근 야권연대에 대해 선을 긋고 독자 후보를 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야권, 특히 민주당과의 치열한 승부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10월 재보선은 안 의원의 향후 정치력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 이미 전현직 의원 몇 명이 '안철수 간판'을 달고 10월 재보선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이석기 사건'이 불러온 안 의원의 또 다른 행보가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받고 있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