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검찰 길들이기 시작됐나법무부 감찰카드로 압박검찰 인사태풍 예고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사퇴를 표명한 채동욱 검찰총장이 청사를 나서고 있다. 조영호기자
혼외아들 의혹에 휩싸인 채동욱 검찰총장이 결국 사의를 표명해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채 총장은 당초 "부끄럼 없다"며 의혹에 대한 언론보도에 정면대응 하면서 그 결과에 세간의 이목이 쏠렸으나 결국 사퇴로 마무리되는 국면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두 가지 시각이 나오고 있다. 하나는 고위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스캔들에 휘말린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정치적인 목적에서 사생활 문제를 들춰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채 총장의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채 총장 주변에서는 "채 총장은 끝까지 명예회복을 위해 진상을 밝힐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하지만 퇴진으로 사건이 봉합되는 분위기에서 진위여부를 가리기 위해 사건을 키우지는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퇴진 의사를 밝힌 것은 결국 사태를 조용히 마무리하기 위한 의사표명 아니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채 총장이 퇴진하더라도 의혹은 규명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채 총장 개인문제로 치부하기에는 검찰 전체 이미지에 심각한 상처를 남겼다는 주장이 대체로 공감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 내연녀로 지목된 임모씨가 직접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힌 뒤에도 채 총장에 대한 의혹의 시선은 거둬지지 않고 있다.

이에 검찰은 일련의 의혹 제기와 관련, 채 총장 개인을 넘어 국가 사정기관으로서의 검찰 신뢰도에 영향을 준다고 판단, 필요한 모든 조치를 신속히 진행해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검찰 방침에 대해 내부에서는 회의적인 분위기도 감지된다. 채 총장이 사태를 봉합하기 위해 사퇴 의사를 밝힌 상황에서 사건을 계속 끌고 갈 경우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정면돌파 생각 바뀌었나

검찰과 정치권 일부에서는 채 총장 혼외자식 의혹제기를 곱지 않는 시선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원세훈 국정원장 수사와 관련해 청와대와 뜻이 맞지 않은 것을 두고 채 총장을 경질할 것이란 말이 적지 않게 나돌았다. 공공연히 청와대가 채 총장에 불만이 많지만 국정원 대선개입의혹 수사를 두고 검찰과의 갈등이 조장되면 안 되기 때문에 냉가슴을 앓고 있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이번 채 총장 혼외자식 의혹제기를 의도적인 정치적 음해공작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다.

채 총장은 '혼의아들 의혹'을 제기한 조선일보가 정정보도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언론중재위원회 조정 및 중재 절차를 뛰어넘어 곧바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채 총장이 언론중재위 조정 절차를 건너뛰고 바로 소송에 착수한 것은 무분별한 의혹 제기와 확대 재생산이 도를 넘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의혹이 무분별하게 증폭되는 상황에서 가장 조속한 해결 방법은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 총장은 이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변호사를 선임, 조선일보 측과 협의토록 해 의혹을 조기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갈 예정이다. 또 검찰은 채 총장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가 관련 보도를 이어가고 이에 편승한 악의적 루머가 퍼지면서 채 총장과 검찰 조직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검찰은 채 총장과 별도로 조직 차원에서 정정보도 청구와 함께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의혹 제기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검찰 전체의 사기와 수사 중인 사안 등에 실제 지장을 초래하는 부분이 있다"면서 "개인적 문제와 검찰 전체의 문제를 분리해서 대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서 흐르는 이 같은 강경기류가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법무부가 '혼외 아들' 논란이 제기된 채 총장에 대해 지난 13일 전격 감찰에 착수하면서 검찰 내부 분위기는 한풀 꺾이는 느낌이다. 감찰을 통해 진상을 파악한 뒤 결과에 따라 대응을 해도 늦지 않다는 의견이 점점 늘고 있다.

법무부는 최근 채 총장을 둘러싼 '혼외 아들' 논란이 불거진 것과 관련해 "국가의 중요한 사정기관의 책임자에 관한 도덕성 논란이 지속되는 것은 검찰의 명예와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감찰 착수 배경을 설명했다.

법무부는 "더이상 논란을 방치할 수 없고 조속히 진상을 밝혀 논란을 종식시키고 검찰 조직의 안정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며 "장관은 당사자인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지 않는 독립된 감찰관으로 하여금 조속히 진상을 규명해 보고하도록 조치했다"라고 설명했다.

검찰 인사태풍 예고

또 채 총장은 소송과 별도로 진실 규명을 위한 유전자 검사도 조속히 실시하기로 하고 방법을 검토 중이다. 이에 따라 사실 여부는 유전자 검사 결과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채 총장은 이날 대검찰청 대변인을 통해 "지난 9일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를 청구했으나 유감스럽게도 오늘까지 정정보도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조속한 의혹 해소를 위해 언론중재위원회 조정 및 중재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바로 법원에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채 총장은 향후 법적 절차를 대리할 변호사로 법무법인 동인의 신상규 변호사 등 2명을 선임했다.

광주고검장 출신인 신 변호사는 현재 대검 사건평정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당초 채 총장과 막역한 사이인 법무법인 도연의 이재순 변호사가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지낸 경력 등이 또 다른 정치적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신 변호사 등이 최종 선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채 총장은 변호사를 통해 임씨를 설득해 유전자 검사를 받거나, 정정보도 청구소송 과정에서 재판부에 요청해 검사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임씨를 상대로 친생자관계존부 확인 소송을 낼 수도 있지만 가능성이 낮다는 게 검찰 내부 의견이다.

이와 함께 채 총장이 사퇴 의사를 밝힘에 따라 이번 사태의 배후로 청와대와 국정원이 지목되고 있다. 검찰 총장의 은밀한 사생활을 들춰낼 수 있는 통로는 측근이나 내부자 제보 또는 정보기관의 정밀 조사 등으로 좁혀진다. 제보는 추가 사실확인 작업이 필요한 사항이고 제보자 추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높지 않다. 따라서 정보기관의 별도 조사가 유력하다. 검찰 안팎에서는 국정원이 이번 사건의 배후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혼외자식 의혹이 보도된 직후 이번 사태와 관련해 공직기강팀 등에서 뒷수습에 나섰다는 소문이 들린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뒷조사-언론보도-청와대 뒷수습으로 이어지는 수순은 마치 치밀한 각본인 듯한 냄새가 난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아울러 채 총장의 사퇴로 검찰에 인사태풍이 예고되고 있다. 새로운 총장이 임명되면 그에 따른 후속조치로 검찰 고위급 인사 등 전반적으로 검찰 새판짜기 작업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야권 일각에서는 "향후 국정원 수사를 여권이 원하는 대로 끌고 감과 동시에 각종 수사로 야권을 압박하기 위한 것 아니냐"라며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편 이번 채 총장 사건을 보는 여론의 시선도 곱지 않다. 의혹을 최초 보도한 조선일보를 제외한 타 언론들은 "무분별한 사생활 들추기는 정치적 음해공작과 연결돼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엇보다 시기적으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 이석기 의원 사건에 이어 채 총장 사건이 터지는 것은 여러 면에서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