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영토전쟁' 터지나검찰 2007년 대화록 훼손 발표북한, 대화록 원본 쥐고 있어 노무현 전대통령 NLL발언 문제삼을 수도대남 압박용 NLL침범행위 나설 가능성 높아

"한국 정부는 북한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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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발표도 그렇고, 정치권은 국익보다 당리당략을 앞세우고. 앞으로 남북관계가 어려ㅏ행될 수도 있어요."

지난 4일 베이징의 북한 소식통은 이른 아침부터 느닷없이 국내 정치상황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

누구보다 남북이 함께 발전하기를 바라는 소식통은 검찰의 '노무현-김정일 대화록' 수사 발표와 이를 둘러싼 여야 정치권의 공방이 자칫 북한이 '도발' 할 수 있는 빌미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에 따르면 검찰이나 정치권이 국내 보관중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의 부재, 또는 손상을 스스로 드러냄으로써 북한이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즉 대화록의 오리지널 원본이 북한에 있는 만큼 그들이 우리정부의 약점을 노리고 공격해 올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다시말해 2007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대화록을 북한이 사실과 다르게 이용하더라도 그 원본이 부재한 우리 정부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2007년 대화록이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2일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이날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지 않았으며, 노무현정부 청와대의 전자문서관리시스템인 이지원(e-知園)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등록됐다가 삭제된 흔적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또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운영하던 '봉하 이지원'에는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하지 않은 별도의 회의록이 저장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은 검찰 발표 내용을 노 전 대통령 측에서 이른바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은폐하고자 원본 대화록을 고의로 폐기한 결정적 증거로 해석했다. 반바면 노 전 대통령 측과 민주당은 "초안을 삭제했을뿐, 오히려 대화록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라며 반박했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NLL(북방한계선) 내용을 포함한 대화록은 노 전 대통령이 이지원 시스템을 복사해 관리했던 '봉하이지원'에서 발견해 복구한 초본과 수정본, 국정원의 생성·보관본 등 3건이다.

그런데 이 3건 모두 오리지널 원본과는 차이가 있다. 즉 대화록 일부가 삭제됐거나 수정되는 등 변형이 된 것이다. 검찰은 바로 이 부분을 부각해 이와 관련된 인사들을 조사할 예정이고 정치권은 이달말 보궐선거 및 국정 주도권을 잡기위한 정쟁에 한창이다.

그러나 대화록 원본의 실종은 남북관계 상황에 따라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다.

그간 대화록을 둘러싼 논쟁은 대화록 실종의 원인(당사자)과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여부에 집중됐다. 그리고 이들 두 사안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대화록 원본이 훼손된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 내용이 남아 있는 것은 이보다 더 중요한 사항이 사라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앞서 베이징의 소식통은 그 사라진 대화록 원본의 핵심이 비정상적인 남북정상과 관련 있다고 전해왔다. 사실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의 전제가 되는 2차 남북정상회담은 퇴임 4개월을 앞둔 노 전 대통령과 성사된 것으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베이징의 소식통과 미국 정보 관계자는 2차 정상회담이 실현된 것은 2000년 6월 1차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과의 '비밀약속'에 근거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즉, 당시 김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남한의 대규모 대북지원이라는 '밀약'을 했지만 이는 김 전 대통령 임기내 이뤄지지 않았고, 노 전 대통령이 바로 이 카드를 꺼내면서 극적으로 정상회담이 성사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도 '밀약'에 대해 구두약속만 했을 뿐 실현에 대해선 담보하지 못했고, 이를 대신해 NLL과 남북평화수역 등에 대해 김 위원장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국내외 북한 정보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김 위원장은 '밀약'이 무산된 것에 크게 충격을 받았고 더 이상 노 전 대통령과의 대화도 그만두려 했으나 노 전 대통령이 NLL 문제 등을 심도있게 얘기해 대화가 이어졌다고 한다. 이들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회담에서 NLL에 대해 다소 무리수를 두었다는 전언이다. 즉 'NLL 포기'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는 2차 정상회담 이후 그해 11월 말 열린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간접적으로 나타났다.

당시 우리측 김장수 국방장관(현 국가안보실장)이 NLL을 기준으로 남북 양측에 같은 면적으로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자고 하자 북측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은 NLL과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경계선 사이, 즉 NLL 이남에 공동어로 구역과 평화수역을 설정하자고 했다.

이어 김일철 부장은 김장수 장관이 NLL 고수 입장을 밝히자 남북 정상 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면서 "노 대통령에게 전화해보라"고 했다. 다시말해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NLL에 대해 우리 정부 인식과는 다른 대화를 나눴다는 것을 암시했다. 또 2012년 9월 북한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이 "NLL을 존중한다는 박근혜 후보의 떠벌림이나 주장은 남북공동합의의 경위와 내용 조차 모르는 무지의 표현"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근거해 북한을 상대하면서 이전 정부와는 다른 남북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검찰 수사 발표에서 2차 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이 남한에 부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북한에 '하나의 기회'를 준 꼴이 됐다. 북한은 그들이 쥐고 있는 대화록 원본을 앞세워, 또는 노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시의 발언을 문제삼아 남한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즉 NLL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북한 선박을 서해 NLL로 보낼 수 있다. 자칫 서해교전의 재발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정치권 대화록 논란이 남북 영토전쟁의 불씨로 크게 번질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