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실패 용퇴, 회생 위한 승부수?오너 책임론 거세지며 "사재 출연하더라도 회사 잃는다"판단채권단 주도 조기 정상화 가능성도

서울 중구 회현동에 위치한 대한전선 사옥 전경. 주간한국 자료사진
대한전선 오너인 설윤석 사장의 경영권 포기에 대해 그룹 주변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최근 웅진ㆍSTXㆍ동양 등 대그룹들이 유동성 악화로 줄줄이 무너지면서 오너들의 책임과 처벌에 대한 여론이 거센데다 경기침체로 채권단 관리 대상인 대한전선이 언제 회생할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한전선 오너가가 주위의 압박에 못 이겨 사재 출연 등의 희생을 하더라도 결국 회사가 살아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 눈물을 머금고 발을 뺄 수밖에 없는 지경으로 몰렸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대한전선은 사옥과 계열사 등을 팔아 빚을 갚아왔지만 여전히 1조3,000억원의 채무가 남아 있는데다 확실한 회생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설 사장이 채권단의 사재 출연 요구 등 압박에 대응해 승부수를 던졌다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무분별한 투자로 악화

설 사장은 연세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지난 2004년 선친인 설원량 회장이 급작스레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자 대한전선에 과장으로 입사하면서 경영에 입문했다. 이후 2008년 상무보, 2009년 전무, 2010년 부사장, 2012년 사장직을 맡았다. 하지만 설 회장의 최측근이던 임모 전문경영인 시절에 이뤄진 인수합병(M&A) 등 무분별한 투자와 경기침체에 따른 실적악화로 재무구조는 급격하게 악화됐다.

설윤석 대한전선 전 사장
결국 2009년 하나은행 등 주채권단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게 됐고 이후 비주력 계열사 및 자산매각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진행해왔다. 2010년에는 SK건설 부회장을 지낸 손관호씨를 회장으로 영입하고 전선 전문가인 강희전씨를 사장으로 내세우는 등 손-강 투톱 체제를 가동해 기회를 노렸다. 특히 설 사장 본인도 2011년 부회장에서 직급을 낮춰 대표이사 사장 자리를 맡아 책임경영의 자세를 보이는 등 구조조정 최전방에서 고군분투해왔다.

하지만 설 사장은 지속된 경기침체에 따라 영업이익이 축소되고 비영업용 자산을 매각할수록 손실규모가 커지는 등 경영악화가 깊어지자 모든 책임을 지고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지난해 대한전선은 66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적자로 전환했고 5,78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올 예상 매출액은 2조5,000억원으로 지난해와 비슷하다. 부채규모는 1조6,000억원에서 1조3,000억원으로 줄었지만 웬만한 자산매각은 이뤄진 터라 뾰족한 해결방안을 찾기 쉽지 않은 모습이다.

설 사장은 "선대부터 50여년간 일궈온 회사를 포기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며 "제가 떠나더라도 임직원 여러분께서는 마음을 다잡고 지금까지 보여준 역량과 능력을 다시 한번 발휘해줄 것"을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설 사장이 최근 일련의 기업 유동성 악화와 관련한 오너들의 책임론에 부담을 느껴 스스로 경영권을 포기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대한전선은 최근 올해 자본금이 완전 잠식에 따른 상장폐지를 면하기 위해서 채권단과 구조조정 방안을 두고 협의해왔다. 채권단으로부터 경영권 승계를 위한 오너의 사재 출연 등의 요구에 직면하면서 설 사장은 돈도 잃고 회사도 잃을 수도 있다는 판단하에 경영권을 포기하는 선택을 했다는 분석이다. 지난 4일 설 사장은 채권단 관계자를 만나는 자리에서 경영권 포기 의사를 밝힌 것으로 파악됐다.

그룹 안팎 당혹한 모습

설 사장의 갑작스러운 경영권 포기 선언에 그룹 안팎은 상당히 당혹해 하는 모습이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이제까지 논의된 구조조정 방안은 대체로 설 사장의 경영권을 승계하는 방향이었다"며 "갑작스러운 경영권 포기 선언에 채권단도 당황했다"고 말했다. 그는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데 대주주로서 역할도 중요하다는 이유에서 채권단이 만류했지만 설 사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전했다.

대한전선의 한 관계자 또한 "설 사장의 갑작스러운 경영권 포기가 당혹스럽다"면서도 "하지만 설 사장의 경영권 포기 결단으로 회사는 채권단의 주도로 더욱 빨리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조기에 정상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너인 설 사장이 경영권을 포기하고 자진해서 물러나지만 대한전선은 현행 전문경영인에 의해 그대로 운영된다.

한편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대한전선 주가는 설 사장의 경영권 포기를 반기는 모습이 역력했다. 선친의 뒤를 이어 대한전선 경영을 맡은 설 사장이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는 평가와 함께 경영권 교체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대한전선은 이날 오전 중에는 전거래일과 큰 변화 없이 주가흐름이 유지됐다. 하지만 설 사장의 경영권 포기 소식이 알려진 오후2시 이후 급등세로 돌변했다. 한때 전거래일보다 8.41%나 올랐지만 장 막판 상승세가 꺾이면서 4.70% 상승한 2,675원에 거래를 마쳤다.



홍준석기자 jsho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