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vs 신동주 부회장
삼성, 롯데, 금호 등 주요 재벌가에 홍역처럼 번져

지난달 종영한 SBS 드라마 ‘황금의 제국’에서는 재계 순위 10위권인 성진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총수일가 간에 파워게임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그룹을 지배하던 총수가 병에 걸리자마자 장남은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한 야욕을 드러냈고 그룹 임원들에게 신뢰받던 조카 또한 후계자 싸움에 뛰어든다. 상대방의 비리를 폭로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등 가족 간의 치열한 암투 끝에 그룹의 경영권은 결국 선대총수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차녀에게 돌아가게 된다.

드라마 ‘황금의 제국’이 종영하고 성진그룹과 총수일가는 사라졌지만 그 여운은 앞으로도 오래갈 것 같다. 현실 속에서도 경영권과 유산 등을 둘러싼 재벌가의 소위 ‘형제의 난’이 수시로 일어나며 드라마 속의 성진그룹을 되새김하게 해주는 까닭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재벌가에서 집안싸움을 벌이는 일은 심심치 않게 발생해왔다. 삼성, 현대, 롯데, 한진, 두산, 한화, 금호 등 주요 재벌가의 형제들은 편을 갈라 다툼을 벌여왔고 일부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고 총수 한 사람에게 집중돼온 한국 재계의 특성상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후계후보들의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롯데가 형제들의 후계구도를 둘러싼 지분싸움, 25년 전 선대회장의 유산을 둘러싼 삼성가의 재산싸움, 경영권 갈등을 놓고 벌이는 금호가 형제들의 법정싸움 등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에 <주간한국>에서는 그동안 재계를 뜨겁게 달궈온 재벌가 ‘형제의 난’을 최근 사건들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효성그룹 조현상 부사장 vs 조현준 사장./연합뉴스
롯데그룹 새 주인은 누구?

요즘 재계의 가장 큰 관심거리 중 하나는 롯데가 형제간의 지분경쟁이다. 10여 년 만에 주요 계열사들의 주식을 사들이는 신동주 일본롯데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경영권을 놓고 ‘형제의 난’을 벌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분분한 것이다.

롯데가 형제들의 지분경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진 것은 올해 초부터였다. 형인 신동주 부회장이 지난 1월 롯데푸드 지분 2.96%를 매입한 것을 시작으로 2003년 이후 10년 만에 롯데그룹 계열사의 지분을 잇달아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동생인 신동빈 회장도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신 회장은 지난 1월 롯데푸드 지분 1.96%를 사들였고 5월에는 롯데케미칼 지분을 매입, 지분율을 0.3%로 늘렸다. 6월과 7월에는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음료 지분 6,500주, 7,580주를 사들였고 지난달 9~13일 사이에는 그동안 지분이 전혀 없었던 롯데손해보험 주식 100만주(1.49%)를 매입하며 눈길을 끌었다.

물론 두 사람이 매집한 지분이 계열사별로 채 1%도 되지 않는 상황이라 후계구도를 확 바꿀만한 수준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형제의 난’이 예고되는 것은 ‘비슷한’ 지분율을 지니고 있는 두 사람이 ‘최근 들어’ 경쟁적으로 지분을 매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그룹 전체의 지분을 놓고 볼 때, 신 회장 형제는 어느 한쪽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이자 순환출자구조의 중요 고리인 롯데쇼핑은 신 회장이 13.46%, 신 부회장이 13.4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신 회장의 지분이 0.01%p 많지만 이는 별로 의미가 없다. 신 부회장이 호텔롯데가 보유한 롯데쇼핑 9.58%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텔롯데는 일본롯데홀딩스가 19.2%의 지분을 갖고 있는데 신동주 부회장이 바로 일본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다.

부친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신동주-일본롯데, 신동빈-한국 롯데그룹’으로 잠정 결정했지만 지분 상으로는 누구도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의 롯데그룹이 일본롯데보다 10배 이상 큰 사업규모를 지니고 있다는 점과 맞물려 롯데가 형제들의 경영권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고령인 신 총괄회장이 세상을 떠나고 최근 사정기관들로부터 정조준 당하고 있는 롯데그룹의 총수인 신 회장의 거취에도 이상이 생길 경우 ‘형제의 난’은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범롯데가 형제간 불화는 유전?

더욱 흥미로운 것은 경영권 또는 재산을 둘러싼 롯데가의 형제싸움이 선대 때부터 계속돼왔다는 점이다. 주로 신 총괄회장이 형제들과 맺은 불미스러운 사건에 기인한 싸움들이었다.

신 총괄회장과 동생인 신춘호 농심 회장 간의 불화설은 유명하다. 일본롯데에서 이사 직함을 갖고 있던 신춘호 회장이 신 총괄회장에게 한국에 돌아가 라면사업을 하겠다고 도와달라고 했지만 “일본과 한국은 사정이 다르니 그만두라”는 반대에 부딪히며 두 사람의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결국 신춘호 회장은 ‘롯데’의 이름을 쓰지 말라는 신 총괄회장과 충돌,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며 분가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이후 롯데-농심 간 라면, 생수 전쟁으로 이어지며 그 골이 깊어졌다.

신 총괄회장은 현재 롯데제과가 위치한 서울 양평동 부지를 두고 신준호 푸르밀 회장과 충돌하기도 했다. 양평동 부지로 법정다툼을 벌이던 두 사람의 관계는 신준호 회장이 롯데우유를 갖고 그룹에서 분가하며 최악으로 치달았다. 신 총괄회장은 신준호 회장에게도 ‘롯데’ 브랜드를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했고 신 회장은 사명을 푸르밀로 바꾸며 선을 그었다.

신 총괄회장이 일찍부터 장ㆍ차남에게 각각 일본롯데, 한국롯데그룹을 넘겨준 것은 그 자신이 형제들과 겪은 갈등을 자식들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 총괄회장의 전철을 밟은 것일까. 자녀들 또한 ‘형제의 난’을 예고하며 신 총괄회장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형제끼리 눈도 안 마주쳐

금호가 ‘형제의 난’은 2000년 중반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분란이다. 본래 금호가는 국내 재벌가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형제경영의 전통을 이어왔다. 장남인 고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을 거쳐 차남인 고 박정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삼남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까지 그룹의 총수직이 이어져왔고 형제들이 가구별로 10.1%씩의 지분을 동일하게 보유, 가족회의를 통해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등 보기 드문 우애를 자랑했다.

사이좋던 금호가 형제간의 갈등은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두 회사를 인수한 직후 금융위기로 경영난을 겪으며 대한통운을 되팔아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자 형제간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박찬구 회장이 아들인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아들 박준경 금호석유화학 상무와 함께 지분을 사들이면서 보유지분을 18.47%까지 높였고 박삼구 회장도 이에 대응해 지분 매집 경쟁을 벌이게 됐다

두 사람의 지분 매집으로 형제들이 똑같은 지분을 나눠 갖던 전통이 깨지면서 그룹 경영권을 둘러싸고 ‘형제의 난’이 일어나게 됐다. 결국 박삼구 회장은 2009년 이사회를 열어 박찬구 회장을 해임하고 본인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에 이른다. 이듬해 채권단의 중재로 이듬해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로, 박삼구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으로 각각 경영에 복귀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금호가 ‘형제의 난’은 1년 만에 다시 발발했다. 박찬구 회장이 비자금 조성, 내부자거래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던 중 사기 및 자본시장법 위반 등으로 박삼구 회장을 고발한 것이다. 집안싸움이 법정에까지 오르게 된 것을 우려한 박삼구 회장은 당시 보유 중이던 금호석유화학 지분(10.45%)을 전량 매각하며 싸움에 종지부를 찍으려 했다.

그러나 최근 금호석유화학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금호산업 기업어음(CP)을 출자전환하는 산업은행의 정상화 방안에 대해 “상호출자금지 예외조항에 해당하는지 검토해달라”고 질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자금 지원에 찬물을 끼얹은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금호가 형제간의 팽팽한 긴장감은 지금도 여전한 상태다. 두 사람은 최근 고 박성용 명예회장의 부인 마거릿 클라크 여사의 장례식장에서 만났지만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아 관계회복의 요원함을 보여줬다.

30년 전의 불씨가 법정 싸움으로

지난해 2월 재계 1위 삼성그룹을 긴장하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장남인 이맹희씨가 동생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삼성생명 주식을 비롯한 선대회장의 차명재산을 돌려달라는 내용의 재산상속분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본격적인 법정싸움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부터이지만 그 불씨는 1970년대를 전후로 하는 삼성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지펴졌다. 이 선대회장이 삼남 이 회장을 그룹 후계자로 낙점하자 장ㆍ차남인 이씨와 고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이 반기를 들며 갈등이 불거진 것이다. 두 사람은 1987년 이 선대회장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후 권토중래를 노렸지만 결국 실패, 이씨는 해외에서 야인으로 떠돌아야 했고 새한미디어를 세워 분가한 이창희 회장 역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형제간의 갈등은 이씨의 아들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포함된 ‘숙질간 갈등’으로 확산됐다. 이 선대회장이 삼성가의 장손인 이재현 회장 몫으로 남겨놓은 제일제당의 계열분리 과정에서 분쟁이 일어난 것이다.

결국 이재현 회장은 제일제당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하는데 성공했지만 부친인 이씨는 여전히 동생 이건희 회장과의 법정싸움을 끝내지 않고 있다. 4조원대의 유산을 놓고 벌인 ‘세기의 소송’ 1심 재판은 이건희 회장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씨는 이에 불복, 2차전을 이어가고 있는 상태다. 재계 1위 그룹의 낯뜨거운 ‘형제의 난’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삼형제간 미묘한 기류 흘러

본래 효성가는 장자상속 원칙이 지켜지던 곳이었다. 고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도 그룹을 장남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에게 물려주고 동생들에게는 알짜 사업을 넘겨주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조 회장이 “향후 경영권은 능력 있는 자식에게 물려주겠다”고 선언한 이후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특히 세 아들의 경영능력과 실적이 엇비슷해 효성가의 적통을 이을 진정한 후계자가 누구일지 세간의 높아지던 상황이었다.

삼각 균형을 맞춰가며 서서히 진행되던 삼형제간 경영권 다툼은 지난해 차남 조현문 변호사가 경영 일선에서 손을 떼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장남 조현준 ㈜효성 사장과 삼남 조현상 ㈜효성 부사장이 치열한 지분 매집 경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조 사장은 지난 8월 효성 지분을 장내 매입하며 지분율을 9.14%로 높였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조 부사장(8.76%)보다 1.29%p가량 낮았던 조 사장의 지분율은 다시 동생을 추월하며 2대주주로 올라섰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후계다툼에서 한발 물러서 있던 차남 조 변호사도 묘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조 변호사는 ▦현재 효성그룹 4개 계열사 회계장부 열람 가처분신청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와 신동진의 이사 사임 등기절차 소송 ▦두미종합개발 주주총회 결의 무효 확인과 명의개서 이행 청구소송 등 효성그룹과 관련한 3개의 소송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싸움을 시작한 조 변호사의 전방위적 소송이 또 다른 ‘형제의 난’을 가져올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관련기사> 형제의 난? 우리에겐 먼 얘기!

‘피보다 진한 것이 돈’이라는 말이 재계에서는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존재한다. LG화재를 시작으로 아워홈, LS, GS 등 수차례 이어진 계열분리 과정에서도 지금까지 재산싸움 한 번 난 적이 없는 범LG가가 그 주인공이다. 엄격한 유교적 가풍이 ‘화합의 LG’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정부의 ‘5대 그룹 생명보험사 진출 금지’ 정책에 맞물려 계열분리한 LG화재, 유통ㆍ서비스 분야에 관심이 많은 구자학 회장의 뜻에 따라 분가한 아워홈, LG그룹의 창업공신인 구태회ㆍ평회ㆍ두회씨의 몫을 떼어준 LS그룹, 구씨와 허씨 간의 오랜 동업을 청산하며 떨어져 나온 GS그룹 등 범LG가의 분가는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의 재산을 나눠가지면서도 조용하고 평화롭게 이어졌다는 평을 듣는다.

지난해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미수연 모임은 ‘화합의 범LG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자리였다. 이날 장남인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비롯해 이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삼남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사남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 등 자녀들과 구자학 아워홈 회장,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 등 동생들이 모두 참석했다.

그밖에 구자원 LIG그룹 회장, 구자철 예스코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구자은 LS전선 회장 등 구 명예회장의 사촌들과 허창수 GS그룹 회장, 허동수 GS칼텍스 회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형제간 불화로 가족의 큰 행사에도 아예 참가하지 않거나 모인 자리에서 눈도 마주치지 않는 여타 재벌가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