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파장' 대응 잘못으로 화 키워반말·욕설 녹취록 여론 뭇매… 사과 발언 구체성·진정성 결여사생활 사찰 의혹도 제기… 제2의 남양유업 될까 전전 긍긍

손영철 아모레퍼시픽 사장이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회를 대상으로 한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이학영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가 대리점주에게 대리점 운영을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내용을 담은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지난 5월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폭언 사건에서 비롯된 '갑을 논란'의 불씨가 화장품업계로 옮겨 붙은 셈이다.

아모레퍼시픽은 녹취록 공개 이후 고개를 숙였지만 진정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으며 화를 키웠다. 다음날엔 회사 책임자가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건조한 답변으로 일관하다 혼쭐이 났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대리점주들을 사찰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아모레퍼시픽은 그야말로 '그로기' 상태다.

막말 녹취록에 화들짝

막말파문은 지난 13일 공개된 녹취록에서 촉발됐다. 아모레퍼시픽 피해대리점협의회가 밝힌 녹취록에는 2007년 아모레퍼시픽 부산지역 영업팀장이 대리점주 문모씨에게 대리점 영업 포기를 강요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녹취록에는 반말과 욕설이 포함됐다.

이 녹취파일에서 문제의 영업팀장은 대리점주에게 "사장님 철밥통이요? 공무원이요? 능력이 안 되고 성장하지 못하면 가야지 어째 하려고. 공무원도 아니잖아요?"라고 대리점 포기를 종용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해당 영업팀장은 "이 XX야! 니 잘한 게 뭐 있노? 10년 동안 뭐 하는 거야? 마 그만두자"라면서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거듭 영업권을 포기하라는 듯한 언급도 했다. 아모레퍼시픽이 부인해 오던 '대리점 쪼개기(강탈)'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이는 비단 문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피해대리점협의회는 본사가 방문 판매원이나 카운셀러들을 빼가는 식으로 대리점 쪼개기를 하거나 폐업을 조장한 일이 빈번했다고 주장했다. 반납된 대리점 운영권은 본사나 지점에서 퇴직하는 직원들에게 돌아갔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 측의 입장은 달랐다. 아모레퍼시픽은 언론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녹취록에 공개된 내용이 일부 대리점주들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일축하며 녹음파일의 진위 여부나 구체적인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았음을 밝혔다.

어설픈 사과가 화 키워

아모레퍼시픽 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사방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화들짝 놀란 아모레퍼시픽은 녹취록 공개 다음날인 지난 14일 "본사 직원이 특약점 경영자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한 일로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아모레퍼시픽은 "해당 사안은 수년 전에 발생해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데 다소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직원의 부적절한 언행에 책임을 통감하며 이른 시일 내에 진상을 파악해 피해를 입으신 분께 진심 어린 사과와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모레퍼시픽의 사과는 오히려 화를 키웠다. 구체적으로 피해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사과를 하겠다고 정한 게 아니라고 밝혀 진정성이 결여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남양유업이 사태 초기 홈페이지에 어설픈 사과문을 게재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일이 오버랩되는 대목이다.

여기에 지난 15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손영철 아모레퍼시픽 사장의 태도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손 사장은 국감장에서 "합법적인 일이었다", "돌아가서 조사하겠다"는 등 무성의한 답변만 반복했다.

보다 못한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아모레가 공정위보다 상위기관이냐"며 "이런 식이면 결국 서경배 회장을 부를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위를 낮춰 대표이사를 불렀는데, 손 사장의 태도에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마저 부아가 치민 것이다.

사생활 사찰 의혹도 제기

이렇게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지난 16일 대리점주들의 사생활을 사찰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아모레퍼시픽은 그로기 상태가 됐다. 이런 의혹은 대리점주 20여명의 계약해지 사유를 정리한 아모레퍼시픽 감사실의 내부보고서가 공개되면서 불거졌다.

해당 보고서에는 대리점주들의 출퇴근 동선에서부터 이기적이라는 평가를 비롯해 불륜이나 가정불화가 있다는 내용도 적시돼 있다. 또 '아침부터 온라인 게임을 한다'거나 '경영자질이 부족하다', '방문판매원과 소통이 없다'는 등의 내용도 있다.

이런 정보는 본사가 대리점 방문판매원 등을 개별적으로 접촉해 수집하는 등 사실상 뒷조사를 통해 확보했다는 게 대리점주들의 주장이다. 대리점주들의 사생활 정보를 수집한 뒤 불리한 정보를 빌미로 대리점 계약을 해지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상황은 심각하다. 자칫 '회장님'까지 국감에 참석해야 할 판이다. 실제로 이언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종합국감 때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을 반드시 증인으로 출석시켜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연히 아모레퍼시픽은 좌불안석이다. 막말파문과 갑질로 남양유업이 점유율과 기업 이미지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전례가 있어 더욱 그렇다. 그러다 보니 아모레퍼시픽을 바라보는 재계의 시선에도 우려가 가득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남양유업 사태 이후 '갑을 논란'이 재계의 최대 이슈로 부각돼 대기업들은 일제히 몸을 낮추고 눈치를 살피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갑을 논란에 휘말릴 경우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송응철기자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