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 바닥나 매출성장세 제자리걸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반짝 성장세를 보이던 한국기업들의 경영실적이 최근 2년 반 동안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사진은 평소와 달리 곳곳이 비어 있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자동차 선적부두. 주간한국 자료사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회생 불가능으로 접어든 것일까?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영실적이 최근 2년 반 동안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IMF외환위기 후 5년이 지난 시점에 호실적으로 보이며 위기를 극복했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처음부터 그래왔던 것은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지 2년 만인 2010년에는 성장률과 수익률 모두 위기 전 수준을 회복(매출액 증가율 6.2%→17.2%, 당기순이익률 6.2%→6.8%)했지만 2011년부터 실적이 연속 하강곡선을 그려왔다. 2011년 각각 9.6%, 4.3% 수준이었던 매출액증가율, 당기순이익률은 올해 상반기 0.0%, 3.9%로 급락했다. 올해 상반기 한국기업의 매출성장세가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점은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성표 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위기 후 5년, 한국기업경영의 현주소' 보고서를 통해 "과거와는 달리 이번 위기에 대해서는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한국기업의 현주소를 명확히 파악해 새로운 좌표를 설정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착시효과 사라지니 실적↓

김성표 연구원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국, 미국, 일본기업 모두 경영실적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으나 우리나라 기업들은 실적 하락폭이 적었다. 미ㆍ일기업이 역성장한 가운데 유독 한국기업들만 2%대의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수익성의 경우 일본기업을 넘어섰으며 미국기업과의 격차는 대폭 줄여나갔다. IMF외환위기 등 과거의 위기극복 경험과 수익중심 경영을 통해 높아진 한국기업의 위기 면역력과 환율효과 등이 금융위기의 충격을 완화시켜준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한국기업의 '체력'이 급격히 소진되기 시작했다. 성장률이 급락하는 가운데 영업이익률도 2012년부터 일본기업에 역전된 것이다. 한국경제의 실적을 견인해왔던 고성과기업 수가 감소하고, 금융시장의 작은 충격에도 버티기 어려운 채무상환능력 취약 기업이 급증한 것이 대표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위기 속에서도 한국 업종 대표기업의 경쟁력이 글로벌 경쟁사에 비해 개선되었으나 앞으로도 지속될지는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수출에 주력하고 있는 한국 대표기업들의 경우 글로벌 경쟁사에 비해 위기 이후 성장성, 수익성, 안정성, 효율성 등 4대 성과지표 모두 선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 또한 2013년 상반기 매출증가율이 4.5%로 하락하고 있어 향후 전망은 불투명하다.

위기 극복하려 노력 중

한국기업들도 질적으로 변모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성표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5년간 한국기업의 리더십, 사업구조, 경영관리 방식 등 경영의 질적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고 주목했다.

우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한국기업은 리더십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강조해왔다. 글로벌기업보다 높았던 한국기업의 CEO 교체비율은 위기 이후 글로벌 평균에 근접하고 있으며 사외이사 비중 확대, 감사위원회 설치 등 의사결정구조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모습도 보인다.

기존 사업을 통합하고 제품군을 확장하는 등 사업구조의 변화도 꾀하고 있다. 물론 불투명한 경영환경 속에서 새로운 사업영역 발굴은 위축된 모습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 높은 성장세를 보였던 한국기업의 해외직접투자와 인수ㆍ합병도 위기 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기존 관련사업 통합과 제품군 확장을 통해 성장을 도모하는 점이 눈에 띈다. 분할보다는 합병이 주를 이루고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이며 외형성장, 기존 사업 강화 및 공통비용 절감 등의 시너지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경영방식도 수정하고 있는 모양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기업은 유동성 관리 속에서도 연구 개발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왔다. 또한, 매출성장이 정체되면서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성과주의를 강화하면서 감성적ㆍ정서적인 동기부여를 확대하고 있다. 그밖에 경기침체로 기업의 마케팅 효율화가 요구되는 가운데 IT 기술 발전으로 모바일, SNS 등 새로운 마케팅 채널의 활용이 증가했으며, 환경ㆍ사회ㆍ윤리경영 등과 관련해 기업시민정신의 실천이 주요 경영기능으로 부상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기업ㆍ정부ㆍ사회 힘 모아야

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찾아온 장기적인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 기업들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기업은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위기 속에서 충격을 최소화하며 현 상태를 충실히 유지하는 데 노력했고 어느 정도 효과도 거둔 것이 사실이나 그 이면에는 삼성, 현대차 등 대표기업들의 호실적과 환율효과도 적잖이 작용했다. 이에 지금이야말로 기업ㆍ정부ㆍ사회 모두가 현 위기의 심각성을 직시하고 신중한 '선택과 집중'으로 미래 성장 모멘텀 구축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IMF외환위기 당시에는 사업의 구조조정과 슬림화로 재무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사업 및 제품의 통합과 확장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또한, 미래 성장을 위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누적된 경영의 비효율 요인이 없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 IT 등 기술 발달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경영환경에서 새로운 경영방식으로 전환, 새로운 '게임의 룰'을 선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