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 뒤에도 회사 쥐락펴락?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의 최근 행보가 숱한 뒷말을 낳고 있다. ‘지휘봉’을 내려놓기 전후로 회사 인력을 자신과 가족의 홍보에 활용한 일을 두고서다. 특히 이 회장이 회사 지분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재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이 회장이 홈플러스를 사유화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당연히 업계의 눈초리는 곱지 않다. 경기불황과 영업규제 등으로 실적이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 전직 CEO의 홍보에 적잖은 비용을 투자하는 게 과연 적절한 지를 두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전 CEO 홍보에 회사 동원

최근 국내 유통기자들이 미국 보스턴대학에 초청됐다. 보스턴 대학에서 지난 15일부터 20일까지 6일간 진행된 행사를 언론에 알리기 위해서다. 유통기자가 해외 대학에 초대받는 건 대단히 이례적인 일. 여기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보스턴대는 6월초부터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을 초빙교수 겸 계약임원 자격으로 100일 간 라운드테이블을 운영해왔다. 그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홈플러스가 기자들을 초청한 것이다. 갑작스런 초청에 기자들은 부랴부랴 짐을 꾸려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와 별도로 홈플러스는 보도자료를 통해 해당 행사에서 이 회장의 행보를 전달했다. 그의 공로를 치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기에 행사 이후 IBM 임원을 대상으로 강연회를 가진 사실을 전달하는 등 이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공개했다.

문제의 행사엔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 등 회사 인력이 상당수 동원됐다. 이 일로 도 사장은 ‘도피성 출국’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인체에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를 허위 판매한 이유로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돼 출석을 요구받은 상황에서 미국으로 떠난 때문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무수한 말들이 오갔다. 이 회장이 자신의 이름과 성과를 알리려는 욕심이 도를 넘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홈플러스가 전 CEO에 과잉충성한다는 비아냥도 있었다. 특히 이 회장이 개인 홍보에 회사를 동원된 게 처음이 아니라는 점은 논란을 키웠다.

부인 에세이 광고하기도

실제 이 회장의 퇴임을 한달 앞둔 지난 5월 홈플러스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회장이 보스턴대학에서 창조경영의 선두자로 이론정립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해당 프로젝트에 대해 홈플러스는 경영이론과 혁신시스템, 홈플러스의 성공사례 등에 대한 연구라고 설명했다.

당시 이 회장도 간담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재임시 질적으로는 1위를 했다고 자부하지만 양적으로는 선두가 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며 “이번 보스턴대 초청으로 홈플러스의 업적을 인정받은 것 같아 큰 위로가 된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 이 회장의 아내인 엄정희 한국 사이버대학 가족상담학과 교수가 에세이를 출간했다는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해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이 회장의 부인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엄 교수는 홈플러스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당시 홈플러스는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해 엄 교수의 에세이 출간 사실을 알리며 “CEO 직무인계를 앞둔 이 회장이나 엄 교수와 같이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중년층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지침서도 될 수 있다”며 “적극 검토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회사가 CEO 가족의 홍보를 대행하는 건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이 회장의 간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홈플러스는 해당 보도자료는 출판사에서 작성, 배포만 담당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 회장 막강한 영향력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세간에선 이 회장이 회사를 사유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회장은 지난 2월 현역은퇴를 선언한 데 이어 지난 6월 초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이 회장은 아직까지도 회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 이 회장은 명예직이긴 하나 여전히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으며, 홈플러스 e파란재단 이사장직도 계속 수행하고 있다. 테스코홈플러스 아카데미 회장 겸 석좌교수, 테스코그룹의 전략경영을 위한 경영자문 역할도 맡고 있다.

게다가 홈플러스 안팎에선 이 회장이 차기 CEO 인선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다. 이 회장은 자신과 가장 밀접한 사이인 도성환 대표를 CEO에 앉힌 것은 물론 전폭적으로 지지를 보냈다는 후문이다.

이런 상황에 재계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홈플러스 지분을 전혀 보유하지 못한 이 회장이 퇴임 이후에도 ‘막후 실세’로 자리잡고 있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홈플러스는 영국 테스코그룹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민주당 의원 등의 주장에 따르면 이 회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뇌물을 건네는 등 청탁의혹을 받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선 이번 이 회장의 미국행도 검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물론 아직 이 회장에 대한 혐의가 확정된 건 아니다. 하지만 향후 회사의 막대한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홈플러스를 보는 업계의 시각도 당연히 차갑다. 경기불황과 영업규제 등으로 실적이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 전직 CEO의 홍보에 비용을 들이는 게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이다. 홈플러스의 지난해 2분기(6~8월) 영업이익은 751억원에 그쳐 2011년보다 40%가량 급감했다

이와 관련해 홈플러스 관계자는 “이 회장 개인의 홍보가 아닌 홈플러스의 경영체계를 알리고 중장기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행사를 마련하게 됐다”며 “영국 테스코 본사에서도 승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hankooki.com



송응철기자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