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질 주인 없어 연일 '잡음'?

최근 임직원 납품비리로 구설수에 휘말렸던 대우조선해양이 이번에는 공정위의 철퇴를 맞아 주목된다. 사진은 서울시 다동에 위치한 대우조선해양 본사사옥. 주간한국 자료사진
대우조선해양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임직원 수십명이 가세한 납품비리의 책임을 지고 고위 임원 60여 명이 일괄사표를 제출한 것이 엊그제인데 이번에는 하도급법 위반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로부터 역대 최대 과징금을 맞았다. 일각에서는 비리와 갑질의 박물관으로 떠오른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주인 없는 회사'의 한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역대 최대 과징금

공정위는 89개 수급사업자에게 선박블록조립 등에 대한 임가공을 제조 위탁하면서 생산성 향상을 명목으로 부당하게 단가를 인하했다는 혐의로 대우조선해양에 267억원의 과징금을 지난달 30일 부과했다. 하도급법 위반으로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또한 부당하게 깎은 단가 인하액 436억원도 해당 업체들에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2008~2009년 89개 수급사업자들에게 임가공을 위탁하면서 하도급 대금 계산시 시수(작업 투입 시간) 항목을 일방적으로 축소해 결정ㆍ적용하는 방식으로 하도급 대금을 깎았다.

조선업계에서 임가공 위탁 시 하도급 대금은 일반적으로 시수와 임률(시간당 임금)을 곱해 계산하게 된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시수에 실제 작업 투입 시간보다 적은 목표 작업 투입 시간(목표시수)을 적용했다. 그러나 목표시수에 설계, 경험, 계측, 작업장 환경 등 생산성 관련 제반 사항이 이미 반영돼 있음에도 이에 생산성 향상률을 추가 적용하는 방식으로 하도급 대금을 낮게 결정했다.

예를 들어 작업시수가 5,000시간이라면 여기에 임률 2만원을 곱한 1억원을 지급해야 하지만 생산성 향상률 6%를 감안, 시수 4,700을 적용하면 하도급대금은 9,400만원으로 600만원 줄어들게 된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런 방법으로 2년간에 걸쳐 89개 수급사업자에게 총 436억원의 하도급 대금을 줄여 지급했다. 업체당 평균 4억9,000원을 덜 지급한 것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 측은 "생산성 향상률을 중복 적용함으로써 적정 가격보다 낮은 단가로 하도급 대금을 지급하는 것은 부당하게 단가를 인하한 행위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또한, 공정위는 "그 과정에서 대우조선해양이 수급사업자들과 사전에 전혀 합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ㆍ적용하는 등 절차상의 문제도 크다"고 지적했다.

대우조선해양 측은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에 대해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시수 산정 시 생산성 향상 효과를 이중으로 적용하지 않았고 협력사와 관련 사안에 대해 합의도 했다"며 "임률 단가는 꾸준히 인상해왔는데 시수 축소 부분만 문제 삼아 결론 내린 것은 부당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책임질 윗선 없어

사상 최대의 과징금을 물어야 하는 대우조선해양이지만 정작 더욱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현 상황에 대해 책임지고 대처할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무에서 부사장에 이르는 대우조선해양의 윗선 대부분은 지난달 불거진 납품비리 사태의 책임을 지고 일괄사표를 제출했다. 물론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있긴 하지만 반복된 실정으로 타격을 받아 현 사태를 온전히 수습할 만큼 건재하지 못한 상황이다.

홍기택 산업은행장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 임원 60여 명의 일괄사표 제출시점은 지난 24일에서 25일 사이로 추정된다. 고 사장은 납품비리 사태와의 관련성 등을 따져 해당 임원들의 사표를 선별 수리할 예정이다. 대우조선해양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임원들 처리와 더불어 고 사장 자신의 이후 행보도 함께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대우조선해양은 임직원들이 수십억원대 금품을 챙기다 검찰에 무더기 적발, 사회적으로 커다란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울산지검 특별수사부는 대우조선해양 납품비리 사건 수사를 통해 17명을 구속 기소하고 13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등 대우조선해양과 협력업체 관계자 총 30명을 기소했다고 지난달 15일 밝혔다. 구속 기소 대상은 대우조선해양 상무이사를 비롯해 임원급 4명, 차·부장급 6명, 대리 1명 등 전ㆍ현직 직원 11명이다. 임원급 2명과 부장급 1명 등 3명은 불구속 기소한 상태이고 나머지 12명의 임직원에 대해서는 징계 통보를 했다.

적발된 대우조선해양 임직원들은 납품업체에 덕트, 가스파이프 등의 납품 편의 제공을 대가로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이 협력업체로부터 뜯어낸 금품은 지난 2008년부터 올해 2월까지 어림잡아 35억원을 훌쩍 넘는다. 아들의 수능시험과 관련해 순금 행운의 열쇠를 사달라고 하고, 아내가 텔레비전에서 본 김연아 선수의 목걸이를 갖고 싶어 한다고 요구하는 등 유형도 다양하다. 직원들의 사무실에서는 협력업체 대표로부터 받은 신용카드와 업체가 개통해 준 휴대전화 등이 적발되기도 했다.

주인 없는 회사의 한계?

흥미로운 것은 대우조선해양이 비리와 갑질의 복마전으로 불리게 된 것이 최근 벌어진 일 때문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당 강기정 의원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에는 2009년 이후 매년 협력업체 금품수수 등 비리사건이 발생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대우조선해양이 이처럼 재계의 문제아로 꼽히게 된 원인은 간단하다. 오랫동안 '주인 없는 회사'로 있던 까닭에 대우조선해양을 책임지고 이끌어갈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1999년 대우그룹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당시 대우중공업의 조선 부문이 떨어져나와 2000년 출범한 대우조선해양은 현재 주인이 없는 상태다. 31.5%의 지분을 보유, 최대주주를 맡고 있는 산업은행이 지난 2008년부터 끊임없이 매각을 시도해왔지만 결국 흐지부지됐다. 여타 공공기관처럼 수시로 감사 당하는 형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민간기업들처럼 믿음직한 구심점도 없어 말 그대로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운영되다 보니 비리가 적발돼도 발본색원이 불가능하다. 비리 직원 당사자에 대해서는 해고처리를 하고 있지만 정작 관리책임을 져야 할 임원들에게는 임원면직이나 권고사직 등 솜방망이 처분으로 일관, 근본적인 대책 마련 의지가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주인 없는 것을 이용해 배를 불리려는 낙하산만 수시로 내려앉고 있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강 의원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에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오동섭 전 한나라당 국장, 함영태 전 한나라당 부대변인 등 박근혜정부 유력 실세들이 사외이사와 고문 등으로 대거 영입돼 논란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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