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30대 기업 중 2개사만 멀쩡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50년전 30대 건설기업 중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을 한번도 겪지 않았던 곳은 단 2개사에 불과했다. 사진은 이수건설 아파트 공사현장. 주간한국 자료사진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지게 마련이다. 이는 기업 또한 마찬가지다. 여타 생명체처럼 수명에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침을 거듭하면서 언젠가는 소멸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보통이다.

기업 중에서도 건설기업 수명은 더욱 들쭉날쭉하다. 건설업의 특성상 경기 기복이 심하고 제도 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 까닭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빠른 경제 성장과 도시화 과정에서 건설업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기업들의 흥망성쇠가 있었다. 실제로 CERIK(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시대별 건설기업의 경영 실패 특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962년의 도급 한도액 기준 30대 건설기업 중 법정관리나 워크아웃 등을 겪지 않은 업체는 대림산업과 삼부토건 2개사에 불과했다.

중소건설기업 실패 잦아

1950년대 이전은 대한민국 수립과 전후 복구사업, 건설업 제도의 정비 등으로 건설업계의 기복이 심한 가운데 초기의 성장기반이 마련된 시기였다. 해방 후 일제의 귀속재산으로 처리된 건설기업은 61개에 불과했으나 미군정청의 공사 발주 증가로 1948년에는 서울에만 3,000여개 건설기업이 생겨났다. 현대건설, 대림산업, 동아건설, 삼부토건 등이 모두 이때 설립됐다.

1960년대에는 경제개발계획에 따른 각종 개발사업의 추진 및 건설업법 도입에 이은 면허제도 변경으로 건설기업의 부침이 심했다. 건설공사의 규모 확대로 기업의 대형화가 이루어졌고 1960년대 후반에는 월남전 특수 등을 계기로 해외시장 진출을 모색하는 건설기업이 등장하기도 했다. 현대건설, 대림산업, 극동건설, 삼부토건 등이 상위그룹을 형성했으며 경남기업, 삼환기업, 신성건설, 풍림산업 등이 30위권으로 진입했다. 그러나 이 시기 경쟁력이 취약한 영세 중소기업들의 실패 사례가 자주 발생해 문제가 됐다.

1970년대에는 압축 성장을 견인하기 위한 연평균 10.8%를 웃도는 건설 투자 급증으로 건설기업의 대형화 및 해외 진출 본격화가 이뤄졌다. 현대건설, 대림산업, 동아건설 등 대기업은 여러 계열사를 가진 재벌 그룹으로 성장했고 일부 기업은 2세에게 승계되거나 전문 경영인으로 대체됐다. 이 시기 대우개발(대우건설), 협화실업(코오롱글로벌), 미륭건설(동부건설), 한신공영 등이 30위권에 새로 이름을 올렸다. 재벌 그룹이 형성, 그룹별로 자체 건설사를 신설하거나 중소 건설사를 인수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도 이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영세 및 중소 건설기업들의 경영 여건은 점점 더 불리하게 전개됐다. 1969년 경부고속도로 조기 완공 이후 정부 공사 발주 부진 등으로 나타난 경기 불황에 더해 정부의 계약제도 개선 및 건설면허 강화 등 제도적 요인까지 겹치면서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 업체들의 경영난은 가중됐다.

대기업도 속속 무너져

1980년대는 중동 지역의 오일달러 감소로 해외건설에 주력했던 업체들의 타격이 컸으나 GDP 성장률이 10%를 넘는 3저 호황으로 국내 시장은 견조한 성장세를 보인 시기이다. 건설 공사가 기획ㆍ개발ㆍ금융 기능이 요구되는 개발사업으로 확대됨에 따라 한양, 삼환기업 등 10위권 내의 비그룹 소속 건설사가 퇴조하는 대신 현대건설, 대우건설, 대림산업 등 그룹에 속한 건설사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한편, 1970년대 이후 해외시장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건설기업들의 경우 1980년대 말까지 성공과 실패의 양극단을 경험했다. 우리나라 건설기업들이 본격적으로 해외시장 진출에 나선 것은 1970년대 중반이었다. 중동시장을 주요 타깃으로 삼은 한국은 1981년에는 글로벌 2위의 건설 수출국으로 부상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1982~1983년을 정점으로 중동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수주 물량 감소와 더불어 해외건설기업의 부실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됐다. 중동 중심의 진출 지역 편중, 차입 의존도가 높은 취약한 재무구조, 단순 노동력에 주로 의존하는 낮은 기술 수준, 해외건설 계약 및 관리 관련 경영 능력 부족 등의 문제점이 위험한 수준까지 이른 것이다. 그 결과 1983년도에 해외건설면허 53개 기업 중 단 1건도 수주를 못한 업체가 20여 개사에 이르렀다. 중동발 해외건설업 부실로 인한 제1호 도산 업체는 신승기업이었으며 이후 1977~1988년 총 62개 업체가 실패를 경험했다.

1990년대는 건설업 면허 개방에 따른 업체수의 폭발적 증가, 주택 200만호 건설 그리고 후반에 닥친 외환위기로 제도 및 시장 양 측면에서 구조 변화가 본격화됐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경기 침체를 겪으며 사업 다각화 및 첨단 공법에 집중 투자한 기업들이 타격을 받았고 IMF 외환위기 이후 외부 자금 의존도가 높았던 다수의 대기업들이 도산하게 됐다.

IMF외환위기가 발발한 1998년, 건설 수주는 37.2%나 급감하고, 극도의 신용 경색이 뒤따르는 이례적인 상황에서 대규모 사업을 추진 중인 대기업을 중심으로 타격이 집중됐고 대우건설, 극동건설, 쌍용건설 등을 비롯한 다수의 대기업들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중견 업체 중에서는 아주토건, 공영토건, 삼풍건설, 라이프주택, 한일산업, 기산 등이 퇴출됐다.

2000년에 들어서며 외환위기의 여파가 진정됐다. 그러나 동아건설의 경우 외환위기의 충격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2000년 법정관리에 이어 2001년 파산 선고를 받고 그룹은 해체됐다. 부동의 1위였던 현대건설도 2001∼2006년까지 채권단 관리에 들어가면서 장기 독주체제가 흔들리고 삼성물산, 대우건설, GS건설, 대림산업, 포스코건설 등이 안정적으로 상위 그룹을 형성하게 됐다. 2000년대 중반에 주택ㆍ부동산 붐이 일자 건설기업 주도의 PF 개발사업이 확산됐지만 그에 의존하던 중견건설기업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고 줄도산해 충격을 줬다.

자만심 버리고 보수적 경영해야

지금까지 흘러온 역사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건설업은 대내외적 상황에 따라 흥망성쇠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건설기업을 이끄는 총수들이 기존 기업들의 경영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권오현ㆍ윤영선 연구원은 "기업의 실패는 경영자의 실책, 부적절한 전략, 불운 등 여러 요소가 겹쳐 나타난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하고 복합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선 기업의 실패는 경제적 위기 국면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경영자는 일상적 업무 수행에만 몰입하지 말고 거시적 관점에서 경기 변동 상황에 대해 항상 주목,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또한, 과거의 훌륭한 성과로부터 오는 자만심 또는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는 실패를 가져오는 최대 요인이라는 점을 재인식하고 과도한 욕심을 자제해야만 한다. 이와 더불어 동시 다발적으로 사업 분야를 성급하게 확대하는 것은 지양하고 부채를 줄이는 등 재무관리를 보수적으로 진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현준기자 real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