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 출두에 직원들 '한숨'홈플러스 미스터리 쇼퍼 구설수 "가뜩이나 스트레스 심한데…"진상고객+관리자까지 삼중고 직원들 불만 최고조에 달해 업계 과잉 경쟁이 불러온 기현상

홈플러스가 자사 직원들의 친절도를 점검하기 위해 파견하는‘미스터리 쇼퍼’가 구설을 낳고 있다. 사진은 홈플러스 매장 전경. 주간한국 자료사진
홈플러스 직원들의 애환이 깊어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건 이른바 '진상고객'이다. 일할 의욕은 바닥에 떨어진다. 이보다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건 '미스터리 쇼퍼'다. 손님을 가장해 직원들을 평가하는 미스터리 쇼퍼는 직원들에게 이미 공포의 대상이다.

직원들은 누가 날 감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여기에 미스터리 쇼퍼가 평가한 점수로 관리자들은 직원들을 닦달한다. 진상손님과 미스터리 쇼퍼, 관리자로부터 그야말로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진상 뺨치는 미스터리 쇼퍼

유통업계 종사자들의 가장 큰 고충은 이른바 '진상(진짜 밉상의 준말)' 고객에게서 발생한다. 말도 안 되는 요구는 기본. 정중한 답변에도 '책임자를 불러오라'고 막무가내로 소리칠 때의 난감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정도는 양반이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폭언이나 욕설이 오가는 경우도 다반사다. 심지어는 성희롱성 발언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그러나 직원들은 사과 외엔 달리 대응할 방법이 없다. 홈플러스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높은 이유다.

실제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의 '상품판매원ㆍ전화상담원의 감정노동 실태' 보고서를 보면 상품판매원의 10명 중 6명이 고객의 무리한 요구를 경험했고, 인격무시성 발언을 들은 비율도 42%에 달했다. 또 성희롱을 당한 경험도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가운데 직원들을 더욱 힘들 게 하는 건 바로 미스터리 쇼퍼의 존재다. 미스터리 쇼퍼는 고객으로 가장해 매장을 방문, 서비스를 평가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소위 '서비스업계의 암행어사'로 통한다. 많은 점포를 관리하기 위해 서비스 기업들이 자주 활용한다.

홈플러스는 2주에 한 번, 혹은 1달에 한 번 전국 매장에 미스터리 쇼퍼들을 보내 직원들의 친절도를 평가한다. 사실상 경영진이 직원들을 감시의 대상으로 판단한 결과다. 직원들로선 누가 미스터리 쇼퍼인지 분간해 낼 재간이 없다.

물론 미스터리 쇼퍼들이 평범한 손님을 연기하는 건 아니다. 미스터리 쇼퍼들의 근무 수칙은 '최대한 집요하고 진상스럽게'가 기본이다. 보통 고객처럼 행세해서는 직원들의 친절도를 평가하기 어렵다는 까닭에서다. 따라서 미스터리 쇼퍼들은 웬만한 진상고객 뺨친다고 한다.

평가 점수 낮으면 벌칙

미스터리 쇼퍼들의 주요 평가 항목은 ▦2분이내로 안내하기 ▦대기전 자세 ▦맞이인사 ▦동행안내 ▦끝인사 ▦농수산코너 상품 무게 총 구매가격 안내 ▦고객의 질문 ▦감성서비스 등으로 세분화 돼 있다.

평가 결과는 사내 게시판에 공개된다. 게시판에는 식품과 의류잡화, 서비스 등 섹션별 담당자와 해당 직원이 받은 점수가 명시돼 있다. 이 점수가 직원들의 업무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직원들은 한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점수가 공개되는 점도 부담이지만 점수가 벌칙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관리자들은 점수가 낮게 나온 직원들을 그야말로 들들 볶는다. 수십명을 세워 놓고 인사를 시키거나 휴일에 극기훈련처럼 등산을 소집하기도 한다는 전언이다.

삼중고에 스트레스 절정

결국 홈플러스 직원들은 욕설을 일삼는 진상고객과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미스터리 쇼퍼, 미스터리 점수로 직원들을 닦달하는 관리자들로부터 '삼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어디에 불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당연히 홈플러스 직원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암행어사 출두에 일하는 내내 회사가 필요로 하는 감정과 태도를 표현해야 한다. 그 강도가 일이 주는 일반적인 긴장과 스트레스보다 훨씬 세다는 게 홈플러스 직원들의 공통된 견해다.

홈플러스 직원들은 특히 미스터리 쇼퍼에 불만을 넘어 '포비아(공포증)'마저 느끼고 있다. 한 홈플러스 직원은 "언제 올지 모르는 본사의 미스터리 쇼퍼 때문에 하루하루 감시당하는 기분이 든다"며 "미스터리 쇼퍼 때문에 회사 다닐 맛이 안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견디다 못해 회사 문을 박차고 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홈플러스 직원은 "삼중고로 과중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다음날 출근 안 하는 식으로 그만두는 사람들도 상당수"라며 "장기 근속한 직원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스터리 쇼퍼의 존재가 오히려 판매에 방해가 된다는 말도 나온다. 한 홈플러스 직원은 "손님이 내 명찰을 쳐다보거나 진상을 부릴 때면 혹시 점검 나온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며 "그럴 때면 가슴이 벌렁거려 유연한 서비스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직원들은 미스터리 쇼퍼의 등장 배경을 업계의 경쟁으로 보고 있다. 한 홈플러스 직원은 "미스터리 쇼퍼는 홈플러스와 이마트, 롯데마트 등 이른바 유통 3사의 과잉경쟁이 낳은 결과"라며 "모니터링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미스터리 쇼퍼는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홈플러스 홍보실 관계자는 "정치권으로부터 미스터리 쇼퍼에 대한 문제 제기가 들어와 미스터리 점수 게시판의 세분화된 항목을 간소화해 공개하는 등 직원들의 심적 불편을 개선하기 위한 자구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송응철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