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원세훈-이씨 모두 서울시청 인연… 이씨, 국정원 인사권 쥐고 황당 인사

이명박-원세훈-이씨 모두 서울시청 출신 권력자들

국정원 인사권 쥐고 황당한 인사전횡 어떻게 했나

국정원이 지난 정권 때 핵심실세로 분류됐던 내부 인사들에 대해 대대적인 인사조치를 감행해 주목을 끌었다. 정치ㆍ대선개입의혹 파문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는 상황에 국정원이 이 같은 움직임을 보이자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국정원은 MB 정권 당시 국정원 핵심으로 알려진 3급 직원 이모씨를 파면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국정원은 조만간 추가 인사 조치를 단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주변을 비롯해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최근 인사조치를 두고 “ 수사와 관련된 조치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나온다. 댓글작업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이들을 인사조치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 야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 일부에서 “국정원이 댓글 사건 등 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축소하려는 모종의 조치일 수도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국정원 정치ㆍ대선 개입의혹과 관련, “몸통은 원 전 원장이 아니라 이씨”라는 소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국정원이 이번에 이씨를 파면하면서 이씨의 향후 행보에 사정기관과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친이계와 친박계 내부에서 “이씨가 국정원에서 수행한 업무내용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경우 큰 파장이 일 수도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 열리나

원 전 원장 재임 시 최측근 인사로 분류됐던 이씨를 국정원이 인사전횡 등을 이유로 파면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여러 분석과 전망이 나돌고 있다.

국정원 소식통에 따르면 국정원은 최근 인사위원회를 개최해 이씨를 “직원들로부터 각종 인사 청탁을 받고 부당하게 인사권을 행사했다”는 명목으로 파면했다. 또 국정원은 이씨의 부당한 인사를 돕거나 이씨에게 인사청탁을 한 직원 5∼6명에 대해서도 각각 중징계와 경징계 처분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올해 3월 취임 이후 장호중 감찰실장을 팀장으로 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내부 제보 내용 등을 바탕으로 6개월 이상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인 끝에 이씨의 인사 비리를 사실로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본인에게 청탁을 한 가까운 직원들을 요직에 배치하고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지방이나 한직으로 발령을 낸 사실 등이 확인됐다. 이씨는 자신의 상관인 1∼2급 직원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형태로 인사권을 휘두른 것으로 전해져 “원 전 원장이 아닌 이씨가 국정원 핵심실세”라는 세간의 소문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국정원은 원 전 원장이 서울시 공무원으로 근무할 때부터 이씨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온의 사이라는 점을 파악하고 올해 초쯤 조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이씨가 원 전 원장 뿐 아니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이러한 인사전횡의 실체를 밝혀낸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점은 이 같은 인사 비리가 원 전 원장의 별도 지시 없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씨가 원장의 고유권한인 인사권을 어떻게 행사할 수 있었는지 그 배경에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이씨는 2009년 2월 원 전 원장이 취임할 당시 5급이었으나 이후 원 전 원장의 신임을 얻어 4년 만에 3급으로 고속 승진을 했다. 복수의 국정원 소식통들에 따르면 이씨는 원 전 원장의 배후에서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했다. 그는 국정원 내 모든 인사권에 개입했으며 이외에 국정원 핵심 업무의 주요 결재권한도 일부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이 내부 실세였던 이씨를 파면하면서 이와 관련된 여러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최근 “이씨가 MB정권 비리의 핵심”이라는 말과 함께 “검찰이 이씨를 여러 비리 의혹으로 수사할 수도 있다“는 추측도 제기된다.

국정원 내부 동향에 밝은 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씨에 대한 국정원 자체 조사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진행됐다. 이씨에 대한 조사는 국정원 내부에서도 높은 보안사항으로 처리됐으며 그에 대한 징계처리 문제를 놓고도 국정원 내부적으로 많은 논의와 검토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씨는 MB정부 시절 국정원의 인사권을 틀어쥐고 대통령과 독대하는 등 국정원의 청와대와 정치권 관련 업무에도 깊숙이 개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초반 국정원의 자체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때 이씨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국정원 소식통들 사이에서는 당시 이씨가 “언젠가부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고 연락도 닿지 않는다”는 말이 돌았다. 실제로 국정원 직원들 사이에서조차 이씨에 대한 문제는 함부로 입 밖에 꺼내서는 안 되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일부에서는 “국정원 댓글 사건을 비롯해 정치 대선 개입의 핵심이 원 전 원장이 아니라 이씨일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그가 국정원 최고 핵심이었기 때문에 해당 사건에 직접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X파일 존재?

국정원 주변에서는 이씨가 MB정부 시절 생산된 극비 X파일을 관리하고 있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이 같은 소문은 나름의 근거가 있다. 전직 국정원 직원 L씨의 증언에 따르면 이씨는 인사권을 쥐고 국정원 내 호남인맥 축출에 앞장섰으며, 역대 국정원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부서를 신설해 자신이 부서를 총괄했다고 한다. 또 복수의 국정원 전ㆍ현직 직원들이 전하는 말을 들어보면 원 전 원장은 사실상 결제만하는 바지 원장에 가까웠으며, 이씨가 국정원 실무를 총괄하는 사실상 실무 총책이었다. 대통령 보고도 원 전 원장이 아니라 이씨가 했다는 말도 있다.

이씨는 박주원 전 안산시장에 대한 검찰 수사를 사실상 배후 조종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검찰 수사에도 개입해 박 전 시장의 검찰구속을 뒤에서 지원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박 전 시장은 검찰 수사로 옥살이를 하다 결국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됐지만 아직 당시 수사 배후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김영삼 정권 당시 국정원 내 핵심부서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리 수집 업무를 하던 한 국정원 직원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비밀파일을 들고 지방으로 잠적했다가 정권이 바뀌자 슬그머니 복귀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는 K라는 가명을 썼으나 실명은 Y씨였다. 그의 주변인들로부터 확보한 증언에 따르면 관련 내용은 대부분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 내부에서는 이씨 등에 대한 중징계를 조직 내에서 ‘원세훈 잔재’ 청산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남재준 원장 취임 이후 시도된 내부 개혁 작업이 본격적으로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정원에서 조만간 대규모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 “이씨에 대한 검찰수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어 국정원이 이씨에게 미리 면죄부를 준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정원 직원이 아닌 일반인 신분이 되면 직원으로 근무하던 때와는 많은 것이 바뀐다. 우선 현직이 아니기 때문에 현 국정원 내부 정보에 접근할 수가 없다. 또 국정원직원법에 의거, 재직 중 취득한 정보는 발설할 수가 없다. 이런 점들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야권에서는 “이씨가 더 이상 국정원 핵심이 아닌 일반인 신분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검찰 수사 대상에서 비켜갈 수도 있다는 노림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에 재직하면서 많은 비리에 연루됐음에도 검찰조사 한 번 없이 파면이라는 조치만 받고 끝난다면 이는 사실상 면죄부나 다름없다”며 “만약 국정원이 이씨에게 전 정권 비리와 관련, 면죄부를 줄 생각이 아니라면 이씨에 대해서는 파면할 게 아니라 검찰에 고발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정원의 이씨 파면이 검찰 수사를 피하게 해주고 지난 정권 비리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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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수상한 행보

검찰 주변과 야권 일각에서는 검찰의 국정원 수사를 두고 “유인책에 말려 실체를 못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몇 가지 정황이 석연치 않아서다.

예컨대 국정원 정치개입과 관련해 대선 전에는 경찰이 ‘없다’고 했다가 대선 후에 특별한 이유 없이 ‘있다’고 말을 바꾼 것, 원 전 원장이 자리에서 내려오자마자 보란 듯이 해외로 출국하려 했다는 점 등은 쉽게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말하자면 애초 원 전 원장의 행동은 이씨를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시키려는 ‘시선 끌기’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원 전 원장에 세간의 이목이 쏠린 사이 이씨가 MB정부의 비밀문건 등을 파기 또는 소각하거나 다른 곳으로 빼돌릴 수 있는 시간을 벌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정권이 바뀐 직후 원 전 원장의 출국시도는 국정원 내부에서도 여러 말이 무성하다. 국정원 여직원 사건으로 파장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 원 전 원장은 보란 듯이 해외출국을 시도하다 출국금지조치에 막혀 주저앉았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원 전 원장이 시선 끌기를 시도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대선개입 수사가 국정원 내부로 옮겨 붙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인 것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해 이명박 정부 시절 비밀 기록물을 둘러싼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다.

사정기관의 한 소식통은 “MB정부는 들어서자마자 노무현 정부가 청와대 비밀기록물을 빼돌렸다고 주장하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시작했다”며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다른 모습이다. 이명박 정부를 승계한 박근혜 정부는 이전 정부의 문건이 파기된 사실을 확인했으면서도 이를 특별히 문제 삼지 않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비밀기록’을 단 한 건도 남기지 않고 모두 폐기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인 적 있다.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은 지난 3월 7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MB정부가 비밀기록을 단 한 건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 지정기록물 자체도 이전 정부에 비해서 30% 줄었다는 보도가 있었다”며 “만약 폐기했다면 이는 엄중한 사안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 최고위원이 참고한 해당 보도내용을 살펴보면 MB정부의 대통령 기록물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과 비교해 8분의 1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밝혀졌다.

이때 드러난 내용을 들여다보면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측은 MB정권 청와대 대통령실과 대통령 자문위원회 등에서 지난 4년간 통보한 기록물 생산건수는 총 82만5,701건으로 밝혀졌다. 연평균 20만6,425건의 자료를 생산한 셈이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5년간 총 825만3,715건, 연평균 165만743건의 기록을 남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참여정부의 기록물을 문제 삼았던 MB정부 기록물이 참여정부에 비해 8분의 1 수준(12.5%)에 불과했다.

민주통합당의 2012년 국정감사 정책자료집에 따르면, 대통령실이 직접 생산한 기록량을 비교했을 때도 현저한 차이가 나타났다. MB정부 대통령실은 지난 4년간 54만1,527건의 기록물(‘위민 시스템’을 통한 전자기록 18만5,570건, 종이기록 9,422건)을 생산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 비서실은 5년간 204만449건이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