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신뢰로 오너가 뒷주머니 채우다 탈나… 대수술 불가피동양ㆍ효성 수사 과정서 금융사 사금고화 적나라재계에 이미 만연한 현상… 금산분리 강화 불가피해정치권 중심으로 논의 중 지배ㆍ승계에 변화 예상

고객 신뢰로 오너가 뒷배 채우다 탈나…대수술 불가피

‘대기업 금융계열사=총수 사금고’. 이는 재계에선 이미 정론으로 통하는 공식이다. 그동안 그룹 계열사를 밀어주고 당겨주는 핵심 역할을 해온 때문이다. 고객들이 맡긴 돈을 마치 오너 일가의 개인 금고인양 이용한 셈이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동양그룹 사태가 그 전형적인 사례다. 회사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고객들이 동양증권에 보내준 신뢰는 부실한 그룹 계열사 수혈에 동원됐다. 기업을 사유물로 여긴 오너의 오판은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이런 후진적 경영행태에 대한 해결책으로 금산분리 강화가 사실상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많다. 국회는 물론 학계와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금산분리 강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서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도 이와 관련한 의지를 보인 바 있어 더욱 그렇다.

수사 과정서 사금고화 적발

재벌기업이 금융 계열사를 사금고화 한다는 비판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금산분리 강화의 필요성이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 동양그룹과 효성그룹의 수사 과정에서 총수가 금융 계열사를 동원해 뒷배를 챙긴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다.

먼저 동양그룹은 부적격 등급인 계열사 회사채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팔 길이 없자 동양증권을 이용해 그룹의 부실위험을 잘 모르는 개인 고객들에게 대거 팔아치웠다. 동양증권이 개인투자자에게 조달한 금액은 1조3,000억원을 넘고 피해 고객만 4만명 이상이다.

여기에 계열 대부업체인 동양파이낸셜대부까지 동원해 부실 계열사를 ‘지원사격’ 하기도 했다. 자본잠식 상태의 부실 계열사가 시중에서 돈을 빌리기 어렵게 되자 당국의 감독 사각지대에 있는 동양파이낸셜대부를 이용해 낮음 금리의 대출을 받았다.

효성그룹 총수 일가 역시 효성캐피탈을 금고로 이용해왔다. 대출을 쓰고 몇 달 뒤 갚는 패턴을 반복했다. 현재 대주주의 특수관계인 등에 대한 대출 잔액은 70억원 수준이지만 10년 동안 이런 패턴이 1,000회 이상 반복되면서 쌓인 누적 규모는 1조원을 넘어선다.

효성그룹 회장 일가는 또 효성캐피탈로부터 회사 자금관리 임원들 명의로 수십억원대의 차명대출을 받기도 했다. 해당 자금은 회장 일가의 특수관계인에 흘러들어갔다.

이뿐만이 아니다. 효성캐피탈은 15개 계열사들에 358회에 걸쳐 모두 8,049억원을 빌려줬다. 노틸러스효성(4,455억원)과 효성건설(1,151억원), 효성토요타(844억원), 갤럭시아커뮤니케이션즈(288억원), 신동진(247억원) 등에 대출을 해줬다.

사정기관의 수사 과정에서 금융계열사가 오너일가의 사금고로 사용된 일이 밝혀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태광그룹 수사 당시 보험 계열사들이 회장 일가가 소유한 회사의 골프장 짓기에 총동원된 게 대표적인 사례다.

태광그룹의 보험 계열사인 흥국생명은 동림관광개발이 강원 춘천시 남산면 일대에 짓고 있는 골프장의 회원권 10구좌를 220억원에 매입했다. 또 다른 보험 계열사인 흥국화재도 이 골프장의 회원권 12구좌를 총 312억원에 사들였다.

이밖에 과거 성원그룹 계열사이던 대한종금은 그룹내 다른 계열사에 신용공여한도를 5,471억원이나 초과하는 부당대출을 했다. 또 현대생명은 현대그룹 위장 계열사이던 옛 한국생명 시절 기아자동차 경영권 방어를 위해 기아차 주식 588억원 어치를 매집하기도 했다.

재계에 만연한 현상

동양종금처럼 총수가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발행을 위한 사금고로 소속 증권사를 이용하는 건 재계에 만연한 현상이다. 이상직 민주당 의원이 최근 내놓은 ‘30대 대기업집단 소속 증권사의 계열회사 회사채ㆍCP 발행 현황’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자료에 따르면 30대 대기업집단 소속 증권사 8개사 중 6개사가 동양증권처럼 계열사의 회사채와 CP를 발행하고 있다. 이들 증권사가 발행한 회사채는 474건에 41조1,016억원, CP는 1,233건 11조6,626억원이었다.

먼저 삼성증권은 11조원대의 삼성카드 CP를 발행했다. 또 현대차그룹의 HMC투자증권은 14조6,166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현대차, 기아차, 현대제철,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현대건설 등 그룹 계열사 전체가 HMC투자증권을 자신들의 회사채 발행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이외에 SK증권은 7조2,500억원의 회사채와 1,688억원의 계열사 CP를 발행했고, 동부증권은 3조3,700억원의 회사채와 2,233억원의 계열사 CP를 각각 발행했다. 동부증권은 특히 투자부적격 등급인 ‘BBB-’의 회사채도 발행하고 있었다.

효성캐피탈처럼 그룹 계열사에 자금줄 역할을 해준 경우도 적지 않다. 먼저 현대ㆍ기아차그룹의 현대캐피탈도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에 각각 3,000억원과 1,000억원의 신용공여한도를 제공했다. 또 이들 회사에 주식 매입비용으로 각각 365억원, 131억원을 대출하기도 했다.

롯데그룹 계열의 롯데캐피탈도 마찬가지다. 디시네마오브코리아(529억원)과 롯데상사(338억원), 현대정보기술(250억원), 롯데부여리조트(224억원), 롯데자산개발(200억원), 롯데브랑제리(158억원), 롯데닷컴재팬(111억원) 등에 대출을 내줬다.

두산그룹의 두산캐피탈 역시 두산중국융자조임유한공사, 케이원트윈스주식회사 등에 모두 581억원을 빌려줬다. 만일 자금수혈을 받은 기업에 부실이 발생할 경우 그 피해는 투자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된다.

금산분리에 재계 ‘덜덜’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금산분리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7월 국회에선 여야의 합의로 산업자본의 은행 보유지분 한도를 9%에서 4%로 축소시켜 은산분리는 어느 정도 이뤄졌다. 하지만 제2금융권과 산업자본 간의 분리는 아직 되지 않은 상태다.

당시 제2금융권을 계열사로 소유한 산업자본을 견제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그러나 여야가 이견을 보여 국회 본회의 처리가 미뤄졌다. 제2금융권 계열사는 비금융 계열사와 교차출자를 통한 복잡한 소유ㆍ지배구조를 갖고 있어 양자를 분리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에선 여야 구분 없이 금산분리 강화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상정돼 있는 금산분리 관련 개정안은 모두 3개다. 제2금융권 의결권 제한 강화와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 대주주의 적격성 심사 확대 등이다.

이 가운데 주요 논의 대상은 대주주 적격성 심사 확대다. 이는 금융회사 대주주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의결권 제한이나 주식 처분명령 등을 내릴 수 있는 제도다. 현재는 은행과 저축은행에만 적용되고 있다.

금융ㆍ보험사 보유주식의 의결권 제한을 강화하자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도 거론되고 있다. 기업집단의 금융계열사가 비금융 계열사 주식 의결권행사를 특수관계인과 합해 5%이내로 제한하자는 게 이 법안의 골자다.

마지막으로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도 논의되고 있다. 현재 일반지주회사는 금융 계열사 보유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허용해 금산융합 기업집단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자는 주장이다.

제2금융권에 대한 금산분리 강화 논의가 불거지면서 재계는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금산분리 강화가 현실화될 경우 기업의 지배구조나 승계구도에 큰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재계에서 금산분리 강화 논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다.

재계는 동양그룹 사태와 금산분리 입법과 무관하다고 맞서고 있다. 재계 이익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국회에 계류중인 관련 법안들이 통과되더라도 동양그룹 사태는 막을 수 없다”며 “이번 사태의 원인은 금융당국의 감독 소홀과 규제 미비”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경련은 “제 2의 동양사태를 막기 위해선 개인 투자자 보호 강화, 시장성 차입금 감독 강화, 금융사의 비금융사 지원 제한 등 기존의 제도적 장치에서 미비한 부분들을 보완한다면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재계의 입장과 무관하게 금산분리 강화는 추진되리란 시각이 많다. 정치권은 물론 금융당국도 금산분리 강화를 벼르고 있어서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도 “재벌총수가 금융 계열사를 사금고화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금산분리 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금산분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온 터라 더욱 그렇다. 특히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는 박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결국 어떻게든 금산분리 강화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효성그룹이나 동양그룹 사태에서 금융 계열사 사금고화에 대한 문제가 불거진 데다 대통령까지 의지를 내보인 터라 금산분리 강화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이 경우 그룹 계열사 구조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금산분리 강화 후폭풍 미칠 기업 어디?

삼성ㆍ롯데ㆍ한화가 금융계열사 보유수 1~3위

효성그룹과 동양그룹 사태가 불거진 이후 재계가 떨고 있다. 금융 계열사가 오너의 사금고로 이용됐다는 지적과 더불어 금산분리 강화 논의가 불거지고 있어서다. 금산분리 강화가 현실화될 경우 기업의 지배구조나 승계구도에 대변화가 불가피하다.

가장 떨고 있는 건 삼성이다. 모두 10개의 금융사를 보유하고 있어서다. 먼저 삼성그룹은 생보부동산신탁, 삼성벤처투자, 삼성생명보험, 삼성선물, 삼성증권, 삼성카드, 삼성자산운용, 삼성화재손해사정서비스, 삼성화재해상보험, 애니카자동차손해사정서비스 등이 있다.

롯데그룹도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그룹내에 롯데손해보험, 롯데카드, 롯데캐피탈, 마이비, 한페이시스, 부산하나로카드, 이비카드, 경기스마트카드, 인천스마트카드, 충남스마트카드 등 모두 10개의 금융사가 있어서다.

한화그룹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한화저축은행, 한화손해사정, 한화생명보험, 한화티엠에스, 한화인베스트먼트, 한화손해보험, 한화증권, 한화자산운용 등 8개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과 롯데, 한화가 차례로 금융사 보유수 1ㆍ2ㆍ3위를 차지한 셈이다.

이밖에 동부그룹이 동부상호저축은행, 동부생명보험, 동부자동차보험손해사정, 동부자산운용, 동부증권, 동부캐피탈, 동부화재해상보험 등 7개사를, 현대차그룹도 HMC투자증권,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 현대라이프생명보험 등 5개사를 보유하고 있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