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사의 뒤에 가려진 비리 의혹 수사 본격화… 로비·비자금 타깃

이석채 전 KT 회장
KT와 포스코에 대한 사정기관의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검찰 주변에서는 수사가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KT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에 대한 여러 비리 혐의에 대한 정황을 잡고 수사를 확대할지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치권은 "이석채 회장과 연결된 MB정부의 비리가 불거질 경우 정치권에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수사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KT 비리 수사 어디까지

검찰에 따르면 배임ㆍ횡령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이 전 회장은 이르면 이달 말께 검찰에 소환조사를 받게 될 예정이다.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양호산 부장검사)는 연내에 KT 관련 수사를 마무리 짓겠다는 목표로 이 전 회장의 소환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으로 최근 알려졌다.

검찰은 이 전 회장에 대해 재직 시 39곳을 헐값에 매각한 혐의와 'OIC랭귀지비주얼'을 계열사로 편입하면서 주식을 비싸게 산 혐의, '사이버 MBA'를 고가에 인수한 혐의, 스크린광고 사업체인 '스마트애드몰'에 과다 투자한 혐의 등을 수사 중이다.

KT 사옥
검찰 관계자는 "수사는 고발 사건과 관련된 의혹들을 중심으로 진행 중"이라며 "그 과정에서 추가로 드러난 몇 가지 점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수사는 이미 상당부분 진척을 보이고 있어 이 전 회장에 대한 혐의 일부에 대해서는 기소가 가능할 전망이다.

검찰은 아직 공식적으로는 이 전 회장에 대한 조사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수사가 이미 상당부분 진행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르면 이달 말께 이 전 회장을 불러 조사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배임ㆍ횡령 혐의 입증을 위해 금융감독원 등에서 제공받은 은행 계좌 거래내역 등을 확인하면서 의심스러운 자금 유출입이나 금전 거래 등도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 회장에 대한 구속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말도 검찰 주변에서 나온다. 검찰은 최근 KT를 둘러싼 의혹에 연루된 관련자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소명 부족 등을 이유로 법원에서 기각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ㆍ관계 로비의혹 밝혀질까

정준양 포스코 회장
이 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검찰은 개인 비리를 넘어 정관계 로비로 수사를 확대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이 전 회장의 구속 여부와 시기는 수사와 별도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가 정치적으로 흐를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정치권 출신인 KT 임원이 이명박 정부 시절 방송통신업계 고위 관료에게 수십만달러에 달하는 뇌물을 건넨 정황을 잡고 최근 소환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KT 대관업무 담당 임원들이 현 정부에 줄이 닿는 인사와 접촉, 정권 실세에게 로비를 시도했다는 첩보도 입수해 사실 여부를 파악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검찰은 최근 여당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정치권 대관업무를 담당했던 A상무를 지난주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A상무를 상대로 전 정부 시절 방송통신업계 고위 관료 B씨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A상무는 이 전 회장 재임 기간 KT에서 급속한 승진을 하거나 임원 자리에 오른 이른바 '올레 KT' 중 한 명인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올레 KT'란 기존 KT임원들과 이 전 회장이 승진시키거나 채용한 임원들을 구분하는 사내 용어로 A씨는 이 '올레 KT' 중에서도 핵심으로 지목되고 있다.

또 이 소식통은 "A씨는 국회를 담당하면서 당시 전 정부의 실세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B씨에게 수십만달러 안팎의 로비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전하면서 "A상무가 여당 출신 의원 보좌관이었던 점으로 미뤄 이 전 회장 취임 후 '문어발 확장'이 로비가 없다면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와 검찰의 시각"이라고 말했다.

포스코 사옥
이뿐만 아니라 검찰은 미국에 체류 중인 KT 커스터머 부문장 서 모 사장이 현 정부 핵심 인사에게 로비를 시도했다는 첩보도 입수하고 소환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사장은 박근혜정부의 핵심 인사와 접촉해 KT에 대한 각종 이권과 이 전 회장의 임기 만료 등을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최근 미국에 머물고 있는 서 사장의 미국 현지 전화 번호를 입수해 귀국해 검찰에 출두할 것을 통보했다.

검찰은 이 전 회장의 비자금 용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내용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사장은 MB정부 당시 실세였던 영포라인 인사들과 가까웠으며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 사찰 자료를 폐기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대포폰을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에게 만들어줬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검찰은 KT엠하우스가 C벤처기업과의 거래관계에서 수십억 원의 미수금이 발생, 거래를 중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 실세 D의원이 압력을 행사해 KT가 20억원가량 투자를 하도록 했다는 의혹도 조사하고 있다.

이밖에도 검찰은 이 전 회장의 비자금 조성 및 로비 의혹들을 조사하기 위해 최근 이 전 회장 측근들의 금융 관련 자료들도 확보해 돈이 전달된 시기와 방법, 환전 및 송금기록 등을 추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회장은 ▦KT 소유 부동산을 헐값에 매각하고 높은 임대료를 지급해 회사에 869억원대 손실을 입힌 혐의 ▦지하철광고사업 '스마트몰'사업을 불리한 계약 조건 아래 추진해 60억원대 손실을 입힌 혐의 ▦콘텐츠 업체 사이버 MBA 인수와 자회사 KT OIC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137억원대 손실을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2월부터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를 진행해 왔으며 3차례의 압수수색을 통해 검증해야 할 자료가 많아 수사를 11월 중 마무리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포착한 비자금 조성 의혹과 정관계 로비 정황 등을 연말까지 진행해 KT 관련 수사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으로 알려졌다.

포스코 수사 이제 시작

은 지난 15일 이영선 포스코 이사회 의장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정ㆍ재계에서는 정 회장이 이석채 전 회장과 함께 사퇴 압력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흘러나왔다.

정 회장은 지난 6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 수행 당시 시진핑 국가 주석이 주최한 국빈 만찬에 초청받지 못하면서 사퇴설이 본격화했다. 당시 이 전 회장도 초청을 받지 못했다. 이들은 8월에 열린 박 대통령의 10대그룹 총수 간담회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결국 정 회장은 이 의장에게 CEO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내년 3월 14일 열릴 정기주주총회에서 새 CEO를 선임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 회장은 "사의 배경에 외압이나 외풍은 없었다"면서 "글로벌 무한경쟁 속에서 업종의 한계를 극복하고 미래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임기 1년을 앞두고 스스로 물러나기로 결심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정 전 회장의 사임과 관련해 사정기관의 움직임이 본격화된 게 주된 이유인 것으로 보고 있다.

포스코에 대한 사정기관의 움직임은 지난 9월 본격화됐다. 국세청은 지난 9월3일 포스코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포스코 측은 "정기 세무조사"라고 해명했지만 정 회장을 겨냥한 조사라는 말이 정재계에 파다했다. 포스코는 2000년에 민영화 이후 5년 주기로 정기 세무조사를 받아왔으나 이번 조사는 3년 만에 나온 세무조사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국세청은 경북 포항 본사와 전남 광양제철소, 서울 강남 대치동 포스코센터 등 3곳에 대한 세무조사를 개시, 회계장부 등을 확보해 조사 중이다.

정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2009년에 포스코 회장 자리에 오른 뒤 3년의 임기를 마치고 지난해 2월 재선임됐다. 임기는 2015년 2월까지였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그가 MB맨이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퇴진설이 업계에 나돌았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정 회장의 개인비리는 크게 불거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 회장이 현 정권 핵심인물들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포스코의 비리에 대해서는 수사가 계속 진행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선 세무조사에서 포스코가 무사하기 힘들다는 말이 무성하다.

포스코 측은 "국세청으로부터 정기 세무조사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세무조사의 방향을 보면 단순 세무조사라고 보기에는 여러 면에서 석연치 않다. 포스코는 민영화 이후 2005년과 2010년에 2차례 세무조사를 받았다.

정치권과 검찰 주변에서는 정 회장이 검찰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자리를 내놓은 것 아니냐는 말도 들린다. 세무조사와 별도로 검찰수사도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정 회장이 이 움직임을 감지하고 사임을 결심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실제로 검찰은 포스코의 해외 사업과 더불어 4대강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포스코의 입찰담합비리 의혹과 하청업체 리베이트 의혹과 관련된 첩보를 입수하고 정 회장의 비리 혐의를 수사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 소식통은 "정 회장의 사퇴로 검찰이 포스코의 여러 비리 의혹 수사 계획을 모두 덮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민주당이 4대강 비리를 핵심사안으로 보고 있는 만큼 포스코에 대한 일부 수사는 그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1975년 포항제철에 입사한 정 회장은 EU사무소장과 광양제철소장, 포스코건설 사장을 거쳐 포스코 회장이 됐다. 지난달에는 임기 2년의 세계철강협회장에 선임됐다.

한편 현재 국세청은 포스코에 20~30여 명의 대규모 조사인력을 투입 조사를 진행 중이다. 회계장부 등 세무 관련 자료는 물론 포스코의 일부 본부장 등 임원급으로부터도 자료를 제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정 회장이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포스코 이사회는 CEO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차기 CEO 선임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CEO후보추천위원회에는 포스코 사내 이사가 배제되고 전원 사외이사로만 구성된다. 현재 포스코 사외 이사는 이 이사장을 비롯해 한준호 삼천리 회장, 이창희 서울대 교수, 제임스 비모스키 두산 부회장, 신재철 전 LG CNS 사장, 이명우 한양대 교수 등 6명이다.

2000년 포스코가 민영화된 이후 아직 포스코 외부 인사가 회장으로 선임된 적은 없다. 하지만 정ㆍ재계에서는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비롯해 진념 전 부총리, 김원길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도 후보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포스코 내부 인물로는 윤석만 전 포스코건설 회장을 비롯해 이동희 대우인터내셔널 부회장, 정동화 포스코건설 부회장, 김준식·박기홍 포스코 사장 등이 후보로 꼽힌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