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으로 서민 부담 가중될 듯… 정부도 책임져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2008~2012년 부채 증가분 중 절반 이상이 국민임대주택 공급 등 정책 수행 과정에서 발생했다. 사진은 오산 청호지구 국민임대주택. LH 제공
요새처럼 공공기관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때가 또 있었을까. 한쪽에서는 민영화를 막겠다는 코레일 직원들이 역대 최대 규모의 파업을 진행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원전지원금을 빼돌렸다. 한국전력공사는 송전탑 건설을 위해 밀양 주민들과 대치하고 있고 한국수자원공사는 4대강 살리기 시공사들과 법정 분쟁을 벌이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문제시됐던 낙하산 논란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공공기관에 대한 비판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정부가 칼을 빼 들었다. 늘어나는 부채와 방만경영을 더 이상 참을 수 없기에 나온 특단의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정부의 실천의지이다. 일견 강도 높은 대책들로 보이지만 따져보면 역대 정권들이 내세운 공공기관 개혁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이에 <주간한국>에서는 문제가 된 공공기관들의 부실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허실을 살펴봤다.

강도 높은 공공기관 개혁 실시

"파티는 끝났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14일 공공기관장 20여 명을 불러 가진 조찬간담회에서 던진 화두다. 현 부총리는 "민간기업이었더라면 감원의 칼바람이 몇 차례 불고 사업구조조정이 수차례 있었어야 했을 것"이라며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 공공기관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현 부총리의 말은 한 달 후 정부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이하 정상화 대책)을 내놓으며 현실로 다가왔다. 11일 현 부총리 주재로 열린 제15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는 지난 5년간 공공기관 부채 증가를 주도했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전력공사 등 12개사와 과도한 복지혜택 등 방만경영이 문제로 지적된 한국마사회, 인천공항공사 등 20개사를 중점관리대상으로 지정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겸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들 32개 공공기관은 정상화 계획을 주무부처와 협의해 내년 1월까지 내놓아야 한다. 정부는 2014년 3분기 말 중간평가를 실시해 사업축소, 자산매각, 복지감축 등 개선작업이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해당 기관장을 임기와 상관없이 해임할 방침이다.

부실 공공기관들은 부채 감축을 위해 현재 진행 중인 모든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정부는 요금조정, 재정투입, 제도개선 등 정책적인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정부는 이 같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현재 220%인 공공기관 부채비율을 2017년에는 200% 수준으로 낮출 계획이다.

또한, 정부는 매년 실시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 항목에 과도한 보수ㆍ복리후생 조정 노력과 성과가 담긴 '보수 및 복리후생 관리' 평가지표를 신설하고 방만경영 평가 비중을 100점 만점에 현행 8점에서 12점으로 높이기로 했다. 기관장, 상임이사, 비상임이사 등 임원 보수는 최대한 삭감하고 내년 3분기 말 중간평가에서 미진한 실적을 냈을 경우 임금인상 동결도 추진할 계획이다.

돈 벌어 이자도 못 내는 기관 속출

그렇다면 공공기관들의 재정 부실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기에 기관장들의 해임 얘기까지 나오는 것일까.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기업채무를 대신 짊어지고 있는 수출입은행을 제외한 공공기관 295개사의 부채는 493조원으로 2008년(290조원) 대비 1.7배 늘었다. 국가채무가 446조원임을 감안할 때 결코 적지 않은 수준이다. 지자체가 관리하는 지방 공공기관의 부채까지 합치면 686개사의 총부채는 566조원으로 불어난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지난달 8일 '한국연례보고서'에서 공공기관 부채를 국가신용등급의 위험요소로 지적하기도 했다.

이번에 부실 공공기관으로 지적된 한국전력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수자원공사 등 12개사의 부채는 412조원이다. 이들이 전체 공공기관 부채의 90.8%를 차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토지주택공사(138조1,221억원)와 한국전력공사(95조886억원)의 부채는 12개사의 절반을 상회하고 있다.

부실 공공기관으로 지적된 12개사의 경우 공공기관이라는 지위가 사라진다면 바로 부실기업으로 떨어질 정도로 경영상태가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순자산 대비 부채비율이 466%에 달하고 한국가스공사도 385%의 부채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코레일과 한국전력공사는 각각 244%, 186%의 부채비율로 뒤를 이었다.

한국전력은 연간이자로 나가는 비용이 2조3,443억원에 달하는데도 지난해 3조780억원의 적자를 낼 정도로 경영상태가 좋지 않다. 그밖에 지난해 적자를 기록한 예금보험공사, 코레일, 한국석유공사, 대한석탄공사, 한국철도시설공단, 한국광물자원공사는 물론이고 한국도로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수자원공사 등도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다.

물론 해당 공공기관들의 부채 원인을 부실경영에만 돌릴 수는 없다. 이들이 과도한 빚을 지게 된 가장 큰 이유 과거 정부의 국책사업에 있는 까닭이다. 실제로 감사원에 따르면 이들 공공기관에서 증가한 금융부채 가운데 30%가량은 국책사업 수행에 따른 것이며, 나머지 15%는 정부의 공공요금 통제에서 비롯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한국수자원공사는 정부가 내놓은 정상화 대책에 발끈하는 모양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의 경우 2008~2012년 늘어난 부채 중 절반이 넘는 70조원 가량이 공공임대주택 공급 등 정책 수행 과정에서 생긴 빚이고 한국수자원공사 또한 4대강살리기 사업과 아라뱃길 사업 때문에 얻은 부채가 많은 까닭이다.

그밖에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시설과 운영의 분리라는 정부의 철도산업정책의 영향으로 17조원의 부채를 짊어지게 됐고 코레일 또한 용산개발 사업부지 매각금 2조7,000억원을 대손충당금으로 설정한 것과 해당 사업 무산에 따른 7조2,000억원의 땅값을 자본계정에서 덜어내는 등의 영향이 크게 미쳤다는 지적이다. MB정부때 해외자원개발사업에 쏟아부은 43조원 중 상당 부분을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공기관이 떠안은 것도 눈에 띈다.

'신의 직장' 맞네

부실로 고민하고 있는 공공기관들이 있는가 하면 독점적 시장지위를 만끽하며 돈 잔치를 벌이는 곳도 있다. 방만경영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20개사가 그 주인공이다.

정부는 정상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직원 복지와 관련된 방만경영 실태를 8가지로 유형화해 공개했다. 교육비ㆍ의료비 과다지원, 경조금 지원, 과다한 특별휴가와 퇴직금, 느슨한 복무행태, 고용세습, 경영ㆍ인사권 침해 등이었다.

교육비 및 의료비 과다지원을 살펴보면 인천공항공사는 직원의 대학생 자녀에 대해 반기 150만원 이내의 교육비를 지원하고 한국보훈복지공단은 입학 축하금 100만원을 지급한다. 한국석유공사의 경우 자사고와 특목고 자녀에 대한 수업료를 전액 지원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의 경우 직원의 직계존비속, 배우자와 그 부모가 의료원을 이용하면 본인부담금의 60%를 깎아줬고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의 경우 이들에 대한 건강검진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경조금과 퇴직금 액수도 만만치 않다. 한국전력공사에서는 산재보험상의 유족보상금 이외에 1억5,000만원을 추가로 지원해주고 있고 한국거래소는 회사 창립일과 근로자의 날에 직원들에게 70만원씩 지급한다. 신용보증기금에서는 업무상 부상 및 순직 시 각각 퇴직금의 50%, 100%를 추가 지급하고 한국전력공사에서는 공상퇴직 및 순직 직원 유가족에게 10년간 매년 120만원 및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고용세습 문제도 지적됐다. 강원랜드의 경우 직무 외 사망, 정년퇴직 시에도 자녀를 특별채용하고 한국농어촌공사와 한국환경공단에서는 순직ㆍ공상자의 부양가족을 직원으로 받아준다.

방만경영 공공기관들이 책정한 복리후생비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한국거래소, 한국수출입은행, 한국투자공사, 코스콤 등 금융관련 공공기관들의 경우 금융업계가 구조조정 한파를 벌이고 있는 와중에도 자신들끼리 돈 잔치를 벌이고 있어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직원 1명당 복리후생비(2010~2012년 기준)로 한 해에 평균 1,489만원을 지급했다. 코스콤과 한국예탁결제원도 각각 1,213만원, 968만원의 복리후생비를 제공했다. 이는 방만경영 공공기관들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이들에는 여타 공공기관에는 없는 '경로효친비'라는 항목이 존재한다. 한국예탁결제원과 한국거래소, 코스콤은 설날 등 명절에 효도에 쓰라며 지급하는 경로효친비로 각각 597만원, 580만원, 516만원을 지급했다. 이쯤 되면 공공기관들을 '신의 직장'이라 부르는 것이 충분히 이해될 정도다.

정부 책임은 어디에?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정상화 대책은 지난 7월 발표된 '공공기관 합리화 정책'(이하 합리화 정책)보다 현실적이고 공공기관들의 사회적 책임을 보다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낙하산 관행이나 민영화 문제 등 정부가 직접 책임져야 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우선 합리화 정책을 발표할 당시 정부는 공공기관장 및 감사의 전문성 자격요건 및 공공기관 임원추천위원회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제도개선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5개월 만에 발표한 정상화 대책에는 낙하산 관행 근절에 대한 내용이 쏙 빠져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집권 초기 MB정권 낙하산 출신 공공기관장들을 물갈이할 때는 잘 써먹었던 내용이었지만 정작 현 정권 낙하산을 내려보낼 때가 되니 부담스러워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김석기 한국공항공사 사장,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 이상무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이규택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 박보환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등 올해 임명된 신임 기관장들은 박근혜 정권 낙하산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해당 기관 노동조합과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방만경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을 변경해야 하는데 낙하산 기관장들의 경우 노조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해결이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민영화 문제가 빠진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코레일의 수서발 KTX 운영 자회사 설립을 놓고 전국철도노조가 9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착수, 최대 쟁점으로 부각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ㆍ연맹 또한 연대 방침을 밝힌 터라 해당 사건은 점점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 과정에서 민영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정부 정책적으로 쌓인 부채를 해당 공공기관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정상화 방안은 결국 효율성 강화와 민영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공공부문 민영화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영화 문제가 빠진 정상화 대책이 반쪽임을 보여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상화 대책이 결국 물가 인상으로 튈 가능성이 큰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공공부문의 특성상 적자구조가 될 수밖에 없는 데다 부채 규모가 워낙 크고 증가 속도도 빨라 공공기관의 자구노력 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경영 정상화를 위해 공공기관들이 요금인상을 추진할 경우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정상화 대책 발표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전력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도로공사 등은 대책 마련을 위해 임대주택 보증금 및 월 임대료, 전기 및 수도요금, 고속도로 통행료 인상안을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