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

국가정보원 전경. /연합뉴스
국정원 대공수사·정보 수집 능력은 타기관에 이관 어려운 소프트웨어
글로벌 시대 국내 정보활동 폐지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것
수사권 남용 제어 장치 충분… 국민·국익 위해 강한 국정원 돼야

국정원의 대선개입 댓글작업 의혹을 계기로 일파만파 확산된 정쟁이 무려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그간의 국론분열과 민생외면으로 국민들은 정치 혐오증과 무관심을 넘어 정치 무용론과 디지털 시대에 맞는 민주주의 재편 수준의 변혁을 열망하고 있다. 국민이 정치보다 빠르게 비전을 모색하는 시대라는 것을 정치인들은 뼈아프게 성찰해야 한다.

지난 12월12일 국정원은 국회 '국정원개혁특위'에 국정원 국내 정보관들의 정당ㆍ언론사ㆍ사회단체 등의 상시출입을 제한하고 정치 관여 행위에 대한 처벌은 강화하되 대공, 방첩ㆍ경제ㆍ해외정보, 사이버보안 등 고유 업무는 유지하기로 한 자체 개혁안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국정원의 국내 파트와 대공수사권을 폐지하고 다른 기관으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은 원천적으로 차단돼야 한다. 국정원뿐만 아니라 국가기관이 정치에 편향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과 직업공무원제도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정치에 관여하기 위한 정보 수집도 마찬가지로 불법행위를 조장하는 파렴치한 행위임이 명백하다.

그러나 제국주의 침탈과 한국전이라는 고난의 터널을 피 흘리며 극복하고 이룩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대공수사권은 왜 뺏으려 하는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검ㆍ경에 이관하려는 것은 축구를 잘하는 박지성에게서 축구공을 뺏고, 김연아를 빙판에서 그린 필드로 쫓아내는 것과 다름없다.

비록 역사의 변혁기에 중앙정보부와 안기부가 악용된 사례들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국정원이 50여년 이상 대공수사를 하면서 축적된 기법과 정보, 네트워크, 분석능력은 검ㆍ경에 이관되기 어려운 성질의 소프트웨어이다. 수사 성격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검ㆍ경의 수사는 개인적ㆍ사회적 법익 침해에 대한 사후 대처이지만 대공수사는 미래의 위해요소를 사전에 차단해야만 의미가 있다. 적극적 정보행위가 수반돼야 할만큼 체제유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휴민트와 시긴트 인프라 와해는 참여정부 시절에 이미 경험했던 아픈 역사적 진실이다. 검찰과 경찰의 본래 기능이 법집행과 치안유지임을 숙고할 필요도 있다. 국력을 합목적적으로 분산 사용해야 할 것이다. 북한 장성택의 실각 사실 확인은 국정원이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국내 정보수집활동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이석기의 RO 조직사건'을 적발할 수 있었을 것인가?

대한민국은 검찰 기소독점권이 법적으로 인정되는 국가이기도 하다. 국정원도 대공수사와 기소과정에서 검찰지휘를 받는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있다면 국정원의 수사권 남용 우려는 기우임을 알 수 있다.

국내정보 수집도 마찬가지이다. 작금은 통섭과 범 글로벌 시대이다. 지구 반대편의 사건들이 실시간으로 온라인에서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국내와 국외를 경계짓는 것은 더 이상 유의미하지 않다. 국내와 국외의 경계 구분이 문제가 아니라 정보사용자의 모럴이 문제다. 오히려 기관과 기관의 유기적 통합과 교감이 필요한 시대이다. 법률에 명시된 대정부 전복과 방첩 정보 수집을 우리 국토에서는 방임하고 외국에서만 하란 말인가? 미ㆍ일ㆍ중ㆍ러 등 한반도 주변 주요 국가들은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에도 우리의 수도 심장부에서 여전히 북핵ㆍ영토문제 및 첨단 산업기술 수집에 혈안이 돼 있는데 우리는 우리의 국토에서 수수방관하고 있어야 하는가? 단지, 정치 관여를 차단하기 위한 국내 정보활동 폐지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뿐이다.

방첩ㆍ경제ㆍ해외정보, 사이버보안 및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한 대응 활동은 차제에 대폭 강화하고 법적 근거를 구체화함으로써 권한부여와 통제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지금도 중소ㆍ벤처기업, 해외진출 기업 대부분은 산업기밀 보호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아 막대한 유무형의 국익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는 실정이며 국내 방첩활동 수요는 증대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아울러 국내 체류중인 외국 공관원ㆍ유학생ㆍ상사원ㆍ특파원ㆍ지자체 공무원 등을 활용한 외국 정부의 다방면에 걸친 스파이 행위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국내 방첩기능이 국정원 외에 전무한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특히 북한은 사이버심리전에 해마다 막대한 예산과 인원을 투입해 대남심리전을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대남 사이버심리전에 대응하기 위한 국정원의 사이버심리전 활동은 국가 정보기관으로서 당연히 수행해야 될 필수적 핵심 의무이다.

북한 사이버부대 해커 수천 명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 정예 요원들이다. 우리는 지난 3월 북한 해커들이 KBSㆍMBC 등 주요 방송국과 농협ㆍ신한은행 등 금융기관을 동시다발 공격, 5만7,000여대의 PC전산망을 마비시킨 사건을 기억한다. 미국은 사이버테러를 미래의 최고 위협으로 보고 육ㆍ해ㆍ공ㆍ우주에 이어 제5의 전장으로 규정하고 국방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국정원의 사이버대응센터가 국내 최초의 사이버테러 컨트롤 타워인 것으로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야당의 국정원 예산 투명성 보장 및 국회통제권 강화 주장은 세계 어느 정보기관에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주장이다. 정보기관은 은밀한 활동과 공작을 속성으로 한다. 이러한 정보기관의 예산을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것은 세계 정보전쟁에서 자신의 패를 모두 보여주고 정보전에 임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각국 정보기관은 사용예산만으로도 활동역량이 평가될 수 있다. 혹자는 국회정보위에서만 예산을 공개하면 된다고 하나 과거 국회의원들에 의해 각종 기밀이 언론에 누설된 경우를 보면 리스크가 따른다.

국정원의 산출물은 무형의 가치가 많다. 환가성이 어려운 영역도 많다. 따라서 예산 통제는 국정원 내의 강력한 자체 감사기능에 의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에 정보위의 디테일한 예산통제가 불가피하다면 국회의원들의 '비밀준수' 의무를 명문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헌법 1조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모든 국가기관은 국민을 위해서 존재한다. 국민의 안위와 국익보호를 위해서라면 국정원은 아무리 강해져도 지나치지 않다.

국정원은 경쟁력에서 세계 어느 정보기관에도 뒤지지 않는 강력한 정보기관으로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원하는 바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이번 '국정원 개혁특위'에서는 국정원이 정치권의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국정원의 수족을 자르는 것이 개혁이 아니라 국정원이 국민과 국익을 위해서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이 개혁이다.

/류광모 세계평화협력재단 평화전략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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