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이는 해운 계열사, 그룹 발목 잡고 수렁으로…

STX팬오션의 경영악화가 STX그룹의 해체로까지 이어졌다. 사진은 STX팬오션이 수주한 벌크선과 강덕수 STX그룹 회장. STX그룹 제공
STX팬오션 실패가 그룹 해체까지
글로벌 경제위기에 이은 업황 악화
현대상선, 한진해운도 유동성 위기
소속 해운 계열사 지원하던 현대·한진 그룹에도 위기론 커져

2014년 청마의 해가 밝았다. 지난 2013년은 재계에 참으로 잔혹했던 해였다. 정부의 경제민주화 바람에 글로벌 경기 침체, 업황 악화까지 두루 겹치며 웅진그룹, STX그룹, 동양그룹 등 규모가 작지 않은 그룹들의 몰락이 이어진 까닭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었던 곳은 STX그룹이었다. 샐러리맨 출신의 총수가 이끌며 한때 재계 12위까지 올라가는 영광을 누렸지만 결과적으로 지난해 그룹 해체라는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2014년에도 제2, 제3의 STX그룹이 될 기업들이 고개를 쳐들고 있다는 점이다. 몇 년째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그룹, 한진그룹이 그 주인공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세 그룹 모두 한때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해운 계열사들이 그룹의 발목을 잡고 늪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선박, 항만 등 주요 자산을 매각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애쓰고는 있지만 올해 업황마저 어두워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STX팬오션 실패로 그룹까지 와해

STX팬오션은 STX그룹의 명과 암을 가져온 주인공이다. STX그룹은 2004년 범양상선(현 STX팬오션)을 품으며 조선과 해운을 양 축으로 그룹 구조를 정비했고 때마침 찾아온 호황에 힘입어 크게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STX팬오션도 무서운 성장세를 보였다. STX그룹에 인수되기 전인 2003년 각각 1조9,771억원과 778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액, 당기순이익이 2008년에는 10조2,310억원, 6,790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주력사업인 벌크선뿐만 아니라 컨테이너선, 탱커선, LNG선 등 사업영역도 점차 확대됐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으로서는 STX팬오션이 M&A(인수ㆍ합병)로 굴러들어온 황금알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소속 해운 계열사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현대^한진그룹의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현대상선, 한진해운 컨테이너선과 현정은 현대그룹회장(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아래). 각 그룹 제공
그러나 영광의 순간은 길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까지 연달아 겪으며 해운시장이 급격히 냉각됐고 STX팬오션의 경영악화도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여기에는 리스크 관리를 하지 않고 호황에 젖어있던 강 회장의 판단착오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업황이 정점을 찍은 시점에서 오히려 선박을 더 발주하고 비싼 가격에 장기용선계약까지 맺었던 것이다. 잘 나갈 때 끌어모은 자금을 STX다롄 준공, 아커야즈(현 STX유럽) 인수 등에 모두 써버리고 채무보증까지 선 것도 STX팬오션 실패의 주요 원인이었다.

STX팬오션을 필두로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되고 그 여파가 조선업까지 밀려오게 되자 강 회장은 결국 매각을 결심했다. 그러나 STX팬오션 지분을 매각해 조선업 중심으로 그룹 사업구조를 재편하려 했던 강 회장의 결단도 실패로 돌아갔다. 공개매각으로 전환하기까지 했는데도 인수를 희망하는 곳이 없었던 까닭이다. 한때 산업은행이 STX팬오션 인수 검토를 위한 예비실사에 착수하며 매각에 청신호가 켜지기도 했지만 결국 '인수 불가' 판정이 나왔고 STX팬오션은 법정관리행을 택하게 됐다.

STX팬오션 매각이 실패로 돌아가며 매각대금으로 그룹을 재편하려던 강 회장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고 결국 STX그룹도 해체 수순을 밟아야만 했다. STX팬오션의 실패가 한때 재계 12위까지 올라갔던 STX그룹의 몰락을 가속화한 셈이다.

현재 STX팬오션은 STX그룹과 결별한 상태다. 지난해 8월 강 회장이 경영권을 내려놓은 이후 경영 정상화 작업에 가일층 속도를 낸 STX팬오션은 그해 10월 사명에서 STX를 빼는 정관변경안을 포함시킨 회생계획안을 제출, 인가받으며 본격적으로 제 살길을 찾고 있다. STX팬오션을 떼어낸 STX그룹 또한 ㈜STX를 중심으로 하는 무역상사 형태의 미니그룹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늪에 빠진 현대상선

국내 2위, 세계 20위권의 해운사인 현대상선의 상황은 STX그룹의 해체를 몰고 온 2012년 말 당시의 STX팬오션보다 오히려 심각하다. 2012년 말 기준 개별 재무제표 STX팬오션의 부채비율은 257%에 불과했다. 74% 수준이었던 2005년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상승했지만 해운업계 전체를 놓고 봐도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다.

반면, 현대상선의 2012년 말 부채비율은 799%에 달했다. 매출이 STX팬오션보다 1.5배 정도 많았던(7조7,138억원, 4조9,195억원) 데 비해 영업손실 차이는 2.6배(-5,198억원, -1,964억원)를 훌쩍 넘었다. 지난해에도 현대상선의 재무안정성은 더욱 악화, 3분기 기준 부채비율이 1,215%까지 치솟았다.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와 기업어음(CP)도 8,200억원에 이르는 데다 선박금융 등의 차입금까지 더하면 총 1조5,000억원 규모임을 감안할 때, 재무구조 개선은 요원해 보인다. 2015년에도 만기 도래하는 부채가 8,000억원이 넘는다. STX팬오션의 벌크선 사업과 달리 현대상선이 주력으로 하는 컨테이너선 사업의 경우 한동안 업황 회복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대해 현대상선 측은 "2013년 지속적인 해운업 불황 속에서도 수익성 강화를 통해 2012년에 비해 적자폭을 대폭 축소했다"며 "지난해 3분기에는 컨테이너 사업에서 서비스 재편 및 원가절감 활동을 벌이며 51억원의 흑자를 내는 등 반등을 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룹까지 영향 미쳐

문제는 현대상선이 그룹 순환출자구조의 핵심으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으로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계열사라는 점이다. 현대상선은 '현대글로벌→현대로지스틱스→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글로벌'로 이어지는 현대그룹의 순환출자구조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업황이 나아지기만을 기다릴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그룹의 중심을 잡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 주식을 기초 자산으로 맺은 파생상품의 평가손실이 점차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엘리베이터는 매년 300억~4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음에도 2011년과 2012년 각각 1,376억원, 41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현대상선 문제를 놓고 2대 주주인 쉰들러와 분쟁을 벌이고 있는 까닭에 올해 1분기 예정된 2,175억원의 유상증자도 불확실한 데다 지난달 30일에는 신용등급이 BBB+로 한 계단 내려가기까지 했다. 지난해 11월 A에서 A-로 떨어진 지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에 현대그룹 측은 3조3,000억원 규모의 고강도 자구계획을 내놓은 상태다. 현대증권을 비롯한 금융 3사를 매각하고 반얀트리 호텔 등 국내외 부동산은 물론 각종 유가증권과 항만, 선박까지 매물로 내놓은 것이다. 아울러 유상증자와 기업공개까지 하겠다고 나섰다. 현대그룹으로서는 유동성 확보를 위한 모든 패를 다 내놓은 셈이다.

채권단 측에서는 현 회장이 현대증권을 내놓은 것에 더욱 주목하는 모양새다. 현대증권은 현대건설과 함께 현대그룹 적통의 양대 기반 중 하나로 현 회장이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계열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회장은 결국 현대상선을 살리기 위해 현대증권을 내려놓는 결단을 내렸다.

문제는 뼈를 깎는 자구계획에도 불구, 현대상선 몰락이 가져올 그룹의 위기가 쉽사리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대엘리베이터의 파생상품 손실이 이미 대규모로 불어난 데다 매물로 내놓은 현대증권도 주가하락에 따른 저가 매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확보하게 될 자금 규모가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까닭이다.

차라리 그룹의 지배구조를 재편해야만 하더라도 문제의 근원인 현대상선을 포기하는 편이 오히려 낫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 시장에서는 현대상선은 최근 벌크 전용선 사업부를 정리, 3,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하기로 한 것에 대해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데다 안정적 수입원인 벌크선 사업을 포기할 경우 현대상선의 부활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에 현대상선 측은 "이번 구조조정안은 벌크선 사업 전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 일부를 조정하는 것"이라며 "구조조정 이후에도 현대상선은 여전히 국내에서 벌크 사업의 경쟁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기의 한진해운 위해 그룹 나서

2008년부터 시작된 업황 악화는 국내 1위, 세계 7위 해운사인 한진해운마저 흔들고 있다. 한진해운의 상황도 STX팬오션, 현대상선보다 결코 낫지 않다. 한진해운홀딩스와 분할된 첫 해인 2009년 말 개별 재무제표 기준 316%에 불과했던 부채비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987%까지 올라갔다.

2011년과 2012년 각각 7,411억원, 7,008억원에 달하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실적 부진이 한진해운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올해 안에 갚아야 하는 차입금이 1조2,454억원에 이르는 것을 감안한다면 한진해운 스스로는 회생 가능성이 거의 없는 셈이다.

한진해운의 파산을 막기 위해 한진그룹의 주력 계열상인 대한항공이 나섰다. 지난해 10월 한진해운홀딩스가 보유한 한진해운 주식 38.08% 중 15.36%를 담보로 잡고 1,5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해준 대한항공은 추가로 1,0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하고 올해 1분기 중 실시될 유상증자에서도 4,000억원 범위에서 참여할 예정이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도 한진그룹의 적극적 지원에 화답하듯 3,000억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 지원에 합의한 상태다.

총 6,500억원 규모의 한진해운 지원을 위해 대한항공이 짊어진 부담도 적지 않았다. 자회사인 한진에너지가 보유한 에쓰오일 지분 3,000만주를 매각해 2조2,000억원을 마련하고 B747-400 등 구형 항공기 13대를 매각해 2,500억원을, 부동산과 투자자산을 팔아 추가로 1조400억원을 확보하기로 했다. 그중 에쓰오일 지분의 경우 매년 1,000억원에 달하는 배당금을 지급하는 캐시카우였다.

대한항공 위기로 내모나

사실 한진그룹이 한진해운을 도울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장의 의견이 분분했다. 한진해운이 한진그룹의 계열사로 분류되긴 하지만 사실상 독립경영체제를 유지해왔고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 또한 계열분리에 힘써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해운의 유동성 위기가 그룹 전체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결단이 대한항공을 위시한 한진그룹의 '한진해운 살리기'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부친인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수송보국 의지를 이어 종합물류그룹을 완성하려는 조 회장의 의지도 작용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한진해운을 돕기 위해 주도적으로 나선 대한항공의 상황도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3분기 개별 재무제표 기준 806%에 달한다. 화물과 여객사업 모두 매출이 떨어지며 2013년 3분기까지 33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실적이 추락하면서 신용등급도 지난해 11월 A에서 A-로 떨어졌다. 한마디로 '제 코가 석자'로 한진해운을 도울 여력이 안되는 상황인 것이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으로 한진그룹 자체가 휘청일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한동안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해운업계 분위기 상 한진해운도 앞으로 몇 번의 위기가 남았을지 모르는데 그때마다 그룹 전체가 물려 함께 늪에 빠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김현준기자 realpec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