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친박-비박 '불협화음'증폭… 박근혜정부 국정운영 걸림돌 넘을까

2014년 새해부터 여권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박근혜정부 2년차가 시작되는 요즘 당ㆍ청 관계는 여전히 껄끄럽고 당내 주류(친박)-비주류(비박) 간 힘겨루기는 점차 노골화 하는 양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사에서 밝힌 국정운영에 대해 새누리당 일부에서 토를 다는가 하면, 당 안팎에선 6월 지방선거와 전당대회를 앞두고 계파 간 이해 충돌이 표면화하고 있다. 차기 당권을 놓고 각 진영이 세불리기와 상대 공격에 나서고 잠룡들은 저마다의 대권행보를 가속화하면서 여권의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박근혜정부를 뒷받침할 당의 동력이 떨어지는 데다 야권과의 대결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해 여권 전체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청와대와 당내 주류(친박)-비주류(비박) 간 불협화음이 어떤 폭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정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무대'의 거침없는 행보

친박 핵심인 최경환 원내대표(왼쪽), 홍문종 사무총장(중앙), 윤상현 수석부대표가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박근혜정부 출범 후 여권이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한 데는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의 행보도 적잖은 영향을 줬다.

김 의원이 일찍부터 '당권' 행보에 나서 세불리기를 하면서 청와대와 간극이 생겼고, 당 안팎에서도 이런저런 충돌이 빚어지고 있는 것. 김 의원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과도한(?) 발언으로 청와대를 자극하고, 당내 친박(친박근혜)계를 건드린 것도 여권의 불화를 촉발했다는 평가다.

최근 김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논란에 대해 언급하고 느닷없이 철도파업 해결사로 나서면서 청와대와는 '물 건너간' 관계가 됐다는 말이 나온다.

김 의원은 8일 부산ㆍ경남지역 민방인 KNN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의 불통 논란과 관련, "야당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박 대통령도)무언가 대화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틀린 얘기를 하더라도 들어주는 모습이 우리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이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공개석상에서 청와대를 비판한 것은 처음이어서 여권에선 불만이 터져나왔다. 더구나 박 대통령이 6일 취임 후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불통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힌 터였다.

작년 9월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 주최로 열린 공권력 확립 토론회에서 김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불통 논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소통의 의미가 단순한 기계적 만남이라든지, 또는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주장이라도 적당히 수용하거나 타협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비정상적인 관행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소통이 안돼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면서 "부족한 점은 있지만 국민과 다양한 방식으로 그동안 소통해 왔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김 의원의 발언에 분을 삭혀야 했고, 친박계는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미지로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행태"라고 비난했다.

이에 앞서 김 의원이 철도파업 해결사로 나선 것도 여권의 도마 위에 올랐다. 김 의원은 작년 말 민주당 박기춘 의원과 함께 철도노조 위원장 등을 만나 최장기 철도파업을 매듭지었다. 그러나 청와대와 당 일각에선 김 의원의 행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여론이 점차 노조에게 부정적인 쪽으로 바뀌고 있어 정부에 유리한 상황이었는데 김 의원이 노조에게 출구를 마련해준 꼴이 됐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새누리당 친박계 한 중진은 "불법 파업을 일삼는 강성 노조에 본보기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는데 김 의원이 자기 정치를 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움직였다"고 비판했다.

여권에서는 김 의원의 거침없는 행보가 '당권'과 관련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김 의원이 작년 대선을 전후해 친이(친이명박)계, 중도 진영 의원들의 접촉을 넓혀 온 것이나 '근현대 역사교실' 이라는 연구모임을 결성해 세불리기에 나선 것 등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정몽준 의원
청와대는 김 의원이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가 되면 박근혜정부와 각을 세울 수 있다고 판단한다. 당 위상을 높이기 위해 당ㆍ청 관계를 재설정하고, 차기 총선의 공천권을 거머쥘 경우 아예 청와대를 외면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친이계를 비롯한 일부 의원들이 김 의원을 추종하거나 행보에 동조하면서 청와대와 당, 당내 친박과 비박 간 갈등이 상존하는 상황이다.

친박-비박 갈등 확산

박근혜정부 집권 2년차에 새누리당 친박-비박 간 대립의 심화는 여권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친이계를 비롯 비박 진영에서 청와대를 공격하거나 친박과 정면 충돌하는 경우들이다.

지난 8일 개헌론을 둘러싼 서청원 의원과 이재오 의원의 충돌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날 새누리당 최고위원ㆍ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이 의원은 "연초에 국민들 여론조사에서 75%가 개헌을 해야 된다고 응답했다"고 운을 뗀 뒤 "대다수 국민들의 의견에 따라가는 것이 소통이고 대다수 국민들의 의견과 반대하는 것이 불통"이라며 개헌론을 고리로 박 대통령을 정면 공격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에 서 의원은 "지금은 개헌보다는 국민이 먹고 사는 경제를 살리는데 우선 과제를 둬야 한다"고 말한 뒤 "이명박 정권 때도 국회에서 개헌특위를 만들었고, 이 의원은 그 때 정권의 2인자라고 할 정도로 힘이 있었는데도 추진을 못했다"고 꼬집었다.

이 의원은 다음날 트위터에 '작은 충성을 하는 것이 곧 큰 충성의 적이 된다'는 뜻의 "行小忠 則大忠之賊也"(행소충 즉대충지적야)라는 글귀를 남겨 논란을 불렀다. 중국 고서인 한비자에 나오는 이 글귀는 주군의 입맛에만 맞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부하를 경계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를 두고 당 안팎에서는 개헌론과 관련 박 대통령에게 충성경쟁을 하는 여권 인사들(친박)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서 의원이 새누리당 친박계 좌장이고 이 의원 또한 비주류 좌장이란 점에서 두 의원의 충돌은 당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친박에서 비박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의원들이 늘고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작년 12월 말 철도파업 정국에서 친박계 유승민 의원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은 잘못된 것"이라며 정부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해 파장을 일으켰다. 유 의원은 이전에도 정부 입장과는 다른 강성 주장을 펴 당 일각에선 '탈박'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박근혜 키즈'로 불리느 새누리당 초선 의원들도 기존 친박계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새해에는 당ㆍ청관계가 달라져야 한다"며 청와대 눈치를 살피는 친박 중진들을 압박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블랙홀' 가능성을 언급하며 정치권의 개헌 논의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힌 가운데 여권 중진인 7선의 서청원 의원과 5선의 이재오 의원이 8일 개헌 문제를 놓고 정면 충돌했다.
박근혜정부 초기 100명에 가까운 친박 의원들이 점차 분화되고, 숨죽이고 있던 친이계를 비롯, 비박 의원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당ㆍ청 관계뿐 아니라 당도 삐걱거리고 있다.

전당대회, 지방선거 고비

6월 지방선거와 새누리당 전당대회는 여권의 갈등을 더욱 부추길 전망이다. 두 빅 이벤트에 참여하는 주요 인사와 관련 의원들이 당권과 대권, 차기 총선과 직간접으로 연결되면서 계파 간 파워게임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6월 지방선거의 경우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 경기지사 출마를 권유받고 있는 김문수 경기지사, 남경필 의원 등 당사자뿐 아니라 계파마다 이해관계가 다르다.

친박계는 당을 위해 세 사람이 지방선거에 출마해야 한다면 공공연히 압박하고 있다. 여권 후보 중 경쟁력이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이지만 속내는 이들 비박 중진들이 당의 중심이 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반면 정 의원은 대권을 목표로 하는 입장에서 위험부담이 있는 서울시장 도전에 부정적이다. 김문수 지사 역시 대권을 목표로 한 만큼 당으로 복귀해 대권 준비를 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남 의원은 지방선거 출마보다 원내대표에 마음을 두고 있다.

부산시장의 경우 친박 핵심인 4선의 서병수 의원이 출마 의사를 밝힌 가운데 2선인 박민식 의원이 7일 출마를 공식화했다. 지역에서는 박민식-김무성 연대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전당대회는 친박-비박 간 다툼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당 대표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차기 총선의 공천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는 5월 임기가 만료되는 황우여 대표 자리를 놓고 당권 주자들은 벌써부터 양보 없는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친박계에서는 좌장격인 서청원 의원의 출마가 점쳐지는 가운데 최경환 원내대표를 비롯해 이완구ㆍ이인제 의원 등이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비박 진영에서는 5선의 김무성 의원이 일찌감치 당권 행보를 해온 가운데 지난달 20일 순천향대학교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는 "정당 민주주의를 위해 역할을 다하겠다"며 당권 도전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3선 도전을 접고 대권 행보의 전단계로 당권에 나설 것으로 전해진다.

당 넘버2인 원내대표를 놓고도 친박-비박 간 대결이 뜨겁다. 친박 쪽에서는 홍문종 사무총장, 이주영 의원이 거론되고 있고, 비박 진영에선 남경필 의원이 출마 의사를 밝힌 상태다. 당 일각에선 친박 원내대표의 출현을 막기 위해 남 의원과 김무성 의원이 손을 잡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협위원장을 놓고 주류와 비주류가 부딪히는 것도 6월 지방선거 및 전당대회와 관련이 깊다. 작년 12월 강동을 당협위원장을 두고 친박 핵심 홍문종 사무총장과 친이계인 김성태 서울시당위원장이 충돌한 것이나 최근 서울 중구 당협위원장을 둘러싸고 벌어진 친박과 비주류의 신경전이 대표적이다.

당시 홍 사무총장이 이종춘 전 한보그룹 사장을 강동을 당협위원장으로 낙점하려 하자 김성태 위원장을 비롯한 친이계 의원들은 "사당화" 운운하며 홍 총장을 공격했다. 김 위원장은 친 김무성계로 분류되는 인사다.

정진석 전 의원이 국회 사무총장을 맡으며 공석이 된 중구 당협위원장은 비주류인 나경원 전 의원과 친박 진영이 미는 지상욱 전 자유선진당 대변인이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주류와 비주류가 격돌하는 것은 당협위원장이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를 뽑을 때 선거권을 갖는 대의원을 지명할 수 있고, 지방선거에서 후보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생존' 문제, 양보 없는 전쟁

박근혜정부 2년차는 지난 1년을 거울삼아 본격적인 국정운영을 펼 때다. 당ㆍ청이 한 목소리를 내고 당의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 당ㆍ청관계나 당내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갈등' 요소가 잠재해 있는 데다 6ㆍ4지방선거와 전당대회와 맞물려 표면화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전대와 관련 당내 주류ㆍ비주류는 사안마다 예민하게 반응하며 격돌하는 양상이다.

전대에서 지도부가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차기 총선에서 공천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이계의 친박 인사들에 대한 '공천 학살'이,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반대로 친박 진영의 '친이계 죽이기'가 자행된 데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전대 결과에 정치적 생명이 걸린 만큼 주류-비주류는 양보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에게 박근혜정부의 국정은 차후 문제인 셈이다.

게다가 친박이나 비박 진영의 내분은 여권의 갈등을 심화시킨다.

친박의 경우 서청원 의원이 중심이 된 구박(舊朴)과 최경환 원내대표, 홍문종 사무총장,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등의 신박(新朴) 간에 당내 역학구도와 정치지형을 놓고 시각차가 있다.

구박 진영에서는 서 의원이 당 대표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신박 측에서는 최경환 원내대표를 앞세우고 있다. 서 의원은 7선의 원로인 만큼 국회의장이 어울린다는 주장이다. 전대에 앞서 신박-구박 간 당권 예선전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비주류의 경우 순수 친이계와 비박이 혼재돼 있다. 비박은 상황에 따라 친박과 또는 친이와 손을 잡을 수 있다. 그만큼 갈등의 소지가 크다.

여권이 복잡한 내외 관계를 극복하고 당ㆍ정ㆍ청이 하나 되는 행보를 이어갈지 주목된다.



박종진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