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5N8형 AI 국내 첫 발병 오리서 닭까지 '초강력'정부 "무증상 감염 비감염"… 전문가들 "코웃음 칠 일"

사진=연합뉴스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전북 고창의 씨오리 농가에서 발생한 후 무서운 속도로 번지더니 며칠째 주춤하고 있다. 살처분한 닭ㆍ오리가 280만 마리에 육박할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남긴 가운데, 비상상황이 예상보다 빨리 종료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축산농가는 한숨 돌렸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AI 인체감염'에 대한 괴담이 확산되면서 공포가 휘몰아치고 있다.

한국도 더 이상 AI 인체감염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에는 "AI 인체감염이 확산되면 공기로도 전파된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철새가 AI를 몰고온다" 등의 괴담까지 떠돌 정도다. 이웃나라 중국에서 신종AI 사망자가 속출할 때도 안전을 자신했던 정부가 해명에 나섰지만, 논란은 진화되지 않고 있다.

이번 AI는 '더 강력한 놈'

AI는 2003년 이후 총 다섯 차례 국내 발병했다. 검출된 바이러스는 지난 4차례는 H5N1형, 이번엔 H5N8형으로 모두 고병원성이다. 두 바이러스는 혈청형은 다르지만 폐사율이 75%이상인 고병원성이라는 점에서 비슷하고 감염 증상도 큰 차이가 없다. WHO에 따르면 2003년 H5N1 바이러스가 출현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360명이 사망했다. 이번에 국내에서 문제가 된 H5N8형은 인체감염 사례는 없지만 전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다. 특히 오리뿐 아니라 닭까지 점염됐다는 점에서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H5N1형과 H5N8형은 어떻게 나누는 걸까. AI 바이러스는 H형 단백질과 N형 단백질로 구성된다. 고병원성 AI는 주로 H5ㆍH7형 단백질과 N1ㆍN2ㆍN8ㆍN9형 단백질의 조합으로 이뤄진다. 이번에 국내에 발생한 H5N8형의 경우 H5N1형과 'H5' 단백질 조합이 같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주로 직접적인 접촉이나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는데 H단백질은 폐를 통해 감염된다는 특징이 있다

정부 '인체감염' 논란 촉발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가 과거 AI발생 당시 살처분 작업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혈청검사에서 AI바이러스 항체를 확인했다는 소식은 '인체감염' 논란에 불을 붙였다. 질본은 2012년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Emerging Infectious Disease'에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2003~2004년 H5N1형이 유행했을 당시 가금류 살처분에 참여한 군인과 공무원 등 318명의 혈청을 검사하자 4명에게서 항체 양성반응이 나왔다. 2006~2007년 살처분에 참여자 가운데서도 H5N1형 AI 항체를 보유한 5명을 추가 확인했다. 항체가 있다는 건 면역계가 몸에 침입한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물질을 만들어 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AI 감염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9명 모두 감염 증상이 없어 '무증상 감염자'로 분류됐다.

논란이 일자 질본은 AI 항체양성반응이 AI 인체감염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질본 관계자는 "AI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투한 것은 바이러스 검출, 유전자검사 양성, 기준 항체보다 4배 이상의 항체생성 등 세 가지 기준 중 한 가지 이상 만족할 경우 AI 인체감염으로 규정한다"면서 "2003년 AI 항체양성 사례는 세 가지 기준 모두에 해당하지 않아 WHO도 우리나라를 인체감염 발생국가로 분류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무증상 비감염은 궤변"

서상희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는 질본의 대응을 '궤변'으로 일축했다. 서 교수는 "항체 양성반응은 보였지만 증상은 나타나지 않아 감염자가 없다는 것은 유전학 공부를 조금만 한 사람이면 코웃음을 칠 말"이라고 지적하면서 "질본이 논문에 직접 'H5N1 바이러스가 조류에서 사람으로 감염한 증거가 된다'고 적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서 교수는 "질본의 얘기처럼 WHO는 항체 양성반응 기준을 기준 항체보다 4배 이상 항체생성이 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질본이 작성한 논문은 그보다 더 많은 8배를 기준으로 삼아 총 9명이 양성반응을 보였다고 적었다. 만약 4배가 기준이 된다면 더 많은 항체 양성반응자가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질본의 대응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그는 "동물 실험을 하면서 논문처럼 항체가 8배 나오려면 동물이 상당히 끙끙 앓아야 한다. 당시 감염자들은 살처분에 나섰던 20대 젊은 군인이나 30, 40대 남성으로 면역학적으로 건강한 나이였다는 걸 감안해도, 증상이 없이 지나갔다는 건 의심스럽다. 논문에서 밝혔듯이 추가 역학조사에 적극적이지 않아서 모르고 넘어갔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신종AI와 혼동 '금물'

한편 중국은 신종 H7N9형 AI에 감염된 사람이 속출해 방역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지금까지 감염된 사람은 100명을 넘어서고 이 가운데 2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H7N9형은 가금류에서는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AI에 감염되면 38℃ 이상의 발열이 있으면서 기침, 숨가쁨, 호흡곤란 등 급성 호흡기 감염 증상을 보인다. 특히 H7N9형은 사람 간 접촉시 감염 의심 사례가 나오고 있어 조사 결과가 주목된다.

중국에서 유행하는 H7N9형과 국내에서 발생한 H5N1형은 다른 바이러스이므로, 혼돈하는 건 금물이다. 서 교수는 "중국서 유행하는 H7N9형은 H단백질에 많은 변화가 있어 사람 간 전파가 쉽도록 변종이 돼 있는 상태다. 특히 사람 간 공기로 전파가 가능하도록 유전자가 변이돼 있는 만큼, 국내 유입을 막기 위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지현기자 hyun1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