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동생 '사이서' 사기죄' 공방최씨 부인 고급빌라 신축사업에 인순이 돈 50억 빌리면서 발단법원, 최성수 부인에 사기혐의 인정… 부인, '대물변제'등 내세우며 항소

왼쪽부터 인순이, 최성수
가수 인순이(57)와 후배 가수 최성수(54)의 부인 박모(52)씨가 치열한 소송전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서로를 언니, 동생이라고 부를 만큼 막역한 사이였던 두 사람이 이제 대형로펌을 앞세워 법정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는 것.

박씨의 건축 사업에 인순이가 투자하면서 불거진 이번 소송은 검찰이 박씨의 사기죄 등에 무혐의 처분한 데 대해 인순이의 항고로 유죄 판결이 내려졌고, 이에 박씨가 항소할 뜻을 밝히면서 법정 공방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두 유명가수가 얽힌 사건의 전말을 추적했다.

사건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순이와 박씨는 한 의상디자이너의 소개로 만난 후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박씨는 노래 '풀잎사랑'으로 유명한 최성수와 1997년 재혼한 사업가다. 박씨는 서글서글한 외모와 특유의 적극성을 앞세워 친화력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성수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내가 장동건의 어머니께 '언니'라고 부를 만큼 친분이 좋다"고 자랑할 정도다. 인순이와 박씨 역시 사사로운 고민이나 경제적 어려움을 털어놓는 '언니, 동생' 사이가 됐다.

두 사람의 인연에 금이 간 건 '돈'이 얽히면서다. 당시 박씨는 건축 시행사 (주)미소인의 대표로 고급빌라 '마크힐스' 신축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시공은 오리온그룹의 계열사인 '메가마크 건설'이 맡았고, 한강 조망권이 확보된 고급 빌라단지라는 점에서 기대가 큰 사업이었다.

재판 기록 등에 따르면 인순이는 2006년 3월부터 2007년 11월 서울 청담동 마크힐스 신축 사업자금과 리조트 건축허가 경비 명목 등으로 4차례에 걸쳐 23억원을 박씨에게 빌려줬다. 박씨는 "빌라사업 자금 5억원을 빌려주면 1년 후 원금을 상환하고 2년 후 이자로 5억원을 주겠다" "리조트 건축허가 경비 4억원을 빌려주면 리조트 2채를 담보로 제공하겠다"라며 인순이에게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인순이는 이후에도 마크힐스 공동 지분 투자 등을 명목으로 총 50억원에 달하는 돈을 빌려줬다.

박씨는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주도한 서울 흑석동 마크힐스의 경우 장동건ㆍ고소영 부부, 현빈, 이민호 등 톱스타들이 사는 고급빌라단지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강남권을 벗어난 고급 빌라단지는 예상보다 분양 실적이 좋지 않았고, 이 무렵부터 박씨와 오리온그룹과의 관계도 틀어졌다.

2009년 거액의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인순이가 초조해하자 박씨는 빌린 돈의 일부를 갚고 앤디 워홀의 '재키(Jackie)'와 '플라워(Flower)'를 주기로 했다. '재키'는 1964년 작품으로 31억5,000만원을 호가하고 '플라워'는 보관상태가 좋지 않아 2억5,000만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돈 대신 그림을 받기로 합의한 인순이는 K옥션에 작품 판매를 위탁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인순이가 투자 실패 대가로 받기로 한 워홀 작품이 오리온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에 연루돼 그림 소유권을 두고 법정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박씨는 '플라워'가 자신의 것이라며 조경민 전 오리온그룹 사장에게 소송을 걸었다. 박씨는 수 차례 이사를 다니다 그림이 손상될 것을 우려해 미술에 조예가 있는 조 전 사장에게 그림 보관을 의뢰했다고 주장했고, 조 전 사장은 빌려준 돈에 대한 담보로 그림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소송은 박씨가 이겼다. 박씨는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에게도 소송을 제기했다. 조 전 사장이 홍 대표에게 ‘플라워’를 맡겼다고 주장한 때문이다.

박씨가 낸 소송 과정을 지켜보던 인순이는 2011년 11월 서울중앙지검에 박씨를 '사기죄'로 고소했다. 2012년 5월, 검찰은 박씨가 인순이에게 빌린 돈을 그림으로 대신 갚는 '대물변제'를 했다는 점을 들어 무혐의 처분했다. 인순이는 즉각 항고했고, 검찰은 재수사 결과 박씨가 '재키'를 담보로 인순이 몰래 18억원을 대출 받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해 11월 박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6부(부장판사 유상재)는 인순이로부터 수십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된 박씨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신뢰를 이용해 23억원에 달하는 돈을 차용금 명목으로 받아 챙기고 대물변제로 준 그림도 동의 없이 담보로 사용했다"면서 "피해자가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만큼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씨는 즉각 항소할 뜻을 밝히며 크게 반발했다. 이미 인순이에게 준 그림으로 보상했다는 얘기다. 박씨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바른은 "2009년 8월 16일 인순이에게 '재키'를 전달 해 대물변제를 완료했다. '재키'를 담보로 대출받은 건 인순이가 충분히 인지하고 동의하여 이뤄진 것이므로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인순이의 소속사 블루스카이 측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옳지 않다. 이번 소송은 인순이의 개인적인 일이므로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며 말을 아꼈다.

법원이 인순이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뭘까. 첫째는 박씨가 인순이에게 돈을 갚을 능력이 없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청파의 이재만 변호사는 "차용사기죄는 차용 당시 변제능력 여부로 유무죄가 가려진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박씨가 능력이 없는데도 돈을 빌렸지만, 앤디 워홀 그림으로 대물변제한 점을 인정해 비교적 가벼운 집행유예형을 선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둘째는 박씨가 앤디 워홀의 '재키'로 18억원을 대출 받을 때 인순이가 동의가 없었다고 봤다. 이 변호사는 "재판부는 박씨가 동의 없이 담보로 사용한 점은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해 횡령죄를 적용했다"면서 "박씨가 판결을 뒤집으려면 인순이의 동의를 받고 대출을 받았다는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