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제과 지분 확보 vs LIG손보 인수

롯데가의 형제들이 부친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눈도장을 찍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형인 신동주 일본롯데 부회장은 롯데제과 지분 매입에 총력을 기울이며 정통성 찾기에 집중하고 있고 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LIG손해보험 인수전에 뛰어들어 취약했던 금융업을 도약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모양새다. 보유 지분율, 명분 등 모든 면에서 격차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라 최종 선택권을 지니고 있는 신 총괄회장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LIG손해보험 잡고 부친 인정 한 몸에

지난해 11월 구자원 LIG그룹 회장이 LIG손해보험 매각 의사를 밝힌 이후 인수전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든 곳은 롯데그룹이었다. 롯데그룹은 LIG손해보험 인수를 위해 M&A(인수ㆍ합병)팀을 구성하고 자문사를 선정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M&A 시장의 큰손으로 불리면서도 느긋하게 때를 기다리던 성향의 롯데그룹이 LIG손해보험 인수에 이렇게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에는 신동빈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롯데손해보험으로 수년째 적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롯데그룹이 LIG손해보험을 인수할 경우 대번에 업계2위로 뛰어오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사업적으로도 매력적인 매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LIG손해보험 인수에 대한 신 회장의 관심은 기이할 정도로 높다는 평이다. 단순히 사회생활 첫발을 노무라증권에서 내디뎠기에 금융업에 애착이 있다는 해석 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계를 훌쩍 뛰어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재계에서는 최근 몇 년간 가시화되고 있는 신동주 부회장과의 대권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신 회장의 의지가 이번 인수전을 통해 드러났다는 해석이 비중 있게 나오고 있다. 그룹의 숙원사업인 금융업에 큰 족적을 남기며 부친 신격호 회장의 최종 선택을 받으려 한다는 내용이다.

그룹 모태 회사에 집중해 정통성 확보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신동주 부회장의 롯데제과 사랑도 신동빈 회장의 LIG손해보험 인수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장자로서의 정통성을 찾고 부친의 인정을 받겠다는 신 부회장의 의지로 읽히는 것이다.

신 회장과 신 부회장은 지난해 초부터 계열사 지분 매입 경쟁을 펼쳐왔다. 그러나 그 양상은 사뭇 달랐다. 신 회장이 지난해 1월 롯데푸드를 시작으로 롯데케미칼,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롯데손해보험 주식을 사들인 데 반해 신 부회장은 롯데푸드를 제외하면 5달 연속으로 롯데제과 지분만을 늘리는 모습을 보여왔다. 신 회장의 지분 매입이 계열사 흡수합병 과정에서 발생한 상호출자구조 해소, 자기주식 처분 등 비교적 뚜렷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과 달리 롯데제과에만 매달리는 신 부회장의 의중은 미지수로 남아있었다.

물론 롯데제과는 '롯데제과→롯데쇼핑→롯데알미늄→롯데제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는 데다 식품 계열사인 롯데푸드와 롯데칠성음료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지배구조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서라면 오히려 순환출자구조의 핵심이 되는 롯데쇼핑의 지분을 인수하는 것이 더욱 유리하다는 점에서 신 부회장의 행동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 신 부회장이 롯데제과의 지분을 늘려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라는 얘기가 비중 있게 들린다. 제과사업이 롯데그룹의 모태이니만큼 정통성 확보를 위한 지름길이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제과사업은 롯데그룹이 한국에 진출할 당시부터 이어져온 사업으로 이에 대한 신격호 총괄회장의 애착도 크다고 알려져 있다.

눈도장 찍고 광윤사 물려받겠다

대권경쟁이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롯데가 형제들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데는 롯데그룹 특유의 지배구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 경영권의 경우 오래전부터 '일본 롯데=신동주, 한국 롯데=신동빈'이라는 암묵적인 구도가 형성돼있었다. 신동빈 회장 또한 몇 년 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은 내가, 일본은 형님이 경영하기로 오래 전부터 결정돼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교통정리가 끝났다고 단정하기에는 신동주, 신동빈 형제의 지분구조가 묘했던 것이 사실이다. 두 사람이 보유 중인 그룹 내 주요 계열사의 지분율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박빙이다. 경영권 확보에 가장 유의미한 롯데쇼핑에서 두 사람의 보유 지분율 격차가 0.01%밖에 나지 않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두 사람 중 누가 신격호 회장의 눈에 드는가가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재계 일각에서는 신 회장이 롯데그룹의 회장직을 맡은 이후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배력이 약해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드러난 보유 지분율이 미비한 데다 건강 또한 의심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일에 싸여있던 일본 롯데그룹의 지배구조가 최근 공개되며 이러한 해석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일 양국의 롯데그룹을 지배하는 최상위 회사는 일본 법인인 롯데홀딩스이다. 일본 롯데그룹 계열사들은 직접 지배하고, 한국 롯데그룹 계열사들은 호텔롯데를 통해 지배하는 구조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금융감독원의 요구로 롯데그룹이 공개한 바에 따르면 롯데홀딩스를 지배하는 회사가 존재하고 있었다. 소문만 무성했던 광윤사가 그 주인공이다.

1967년 자본금 2,000만엔으로 설립, 현재 직원이 3명에 불과한 광윤사는 롯데홀딩스의 주식 120만주(약 27.65%)를 보유하고 있다. '옥상옥' 구조로 한일 양국의 롯데그룹의 최정점에 위치한 광윤사를 차지할 경우 롯데그룹 전체의 지배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신 총괄회장은 광윤사의 '대표이사'로 자리하고 있다. 광윤사의 지분도 대부분 신 총괄회장의 것으로 추측된다. 롯데그룹 계열사 지분을 거의 갖고 있지 않은 신 총괄회장이지만 여전히 한일 롯데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신동주-신동빈 형제 중 신 총괄회장의 광윤사를 물려받는 사람이 최종 승자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 총괄회장이 차기 대권을 놓고 팽팽한 접전을 펼치고 있는 두 사람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된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