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눈감은 사람 누구인가?사상최대 사기 대출 사정기관 내부 공모 정황 포착KT ENS 김모 부장과 납품업체의 공모만으로는 불가능피해은행 중 저축은행 많아 배후 세력 존재설 증폭

KT의 자회사인 KT ENS 직원이 금융권에서 받은 거액의 대출금을 가로채 잠적하는 희대의 사기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의문과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사정당국은 내외부 공모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 공모자 추적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6일 금융권에 따르면 KT ENS의 자금 담당자 직원이 회사 협력업체 3~4곳이 만든 특수목적법인(SPC)에 나간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외담대) 가운데 3,000여억원을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SPC는 협력업체들이 통신장비를 KT ENS에 납품하면서 발행된 세금계산서를 바탕으로 외상매출채권이 발생했는데 이를 현금화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는 발주업체와 납품업체 간의 정상적인 거래로 2009년께부터 이어져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금융권 일각에선 잠적한 KT ENS 직원이 이들 납품업체와 공모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납품업체들이 설립한 SPC 앞으로 나간 대출금을 발주업체 직원이 가져갔기 때문이다. 다만, SPC의 외담대에는 다른 금융회사들의 신용보강(보증)이 이뤄졌기 때문에 이들 은행은 자금 회수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모 여부 확인이 최우선

이번 사기 대출 사건에 KT 자회사의 다른 직원과 금융회사 전ㆍ현직 직원 등이 깊숙이 연루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소 수백 차례 반복된 것으로 알려진 이번 사건이 이들의 조직적 범행으로 드러날 경우 파장은 더 커질 전망이다.

금융권에서는 KT ENS와 협력업체의 수상한 자금 흐름, 은행의 업무 절차 등을 고려하면 KT ENS 내부의 다른 조력자와 여신 실무에 해박한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금융시스템의 허점을 정확히 노렸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13개 금융회사에 대한 대출 만기를 정확히 지켜 내부통제의 감시망을 피하고, 다른 은행송금으로 보내오는 대출 원리금 입금 계좌를 조회할 수 없다는 여신심사 시스템의 허점을 찔렀다.

피해 규모가 1,624억원으로 가장 큰 하나은행의 경우 2009년 이후 월평균 3차례씩 매출채권 확인서를 꾸며 제출하는 수법으로 사기대출이 이뤄졌다. 하나은행에만 수십 차례, 13개 금융회사에 수백 차례 제출된 매출채권확인서에는 품목, 매출일자, 대금지급일자 등의 내용이 담기고 KT ENS의 법인인감이 도용됐다.

이 확인서를 바탕으로 협력업체 NS 쏘울 등의 유동화전문회사(SPC) 신탁 계좌에 매출대금이 입금된 이번 거래는 '포괄승인(같은 종류의 모든 거래를 승인)'이 아니라 대출에 매번 승인을 받는 절차를 밟았다고 하나은행은 밝혔다.

사정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허위매출에 대한 '돌려막기' 대출금이 분명하지만 매월 돌아오는 원리금 상환기일을 꼬박꼬박 지켰다. 원리금 입금이 늦어지면 은행은 대출 기업(KT ENS)의 자금담당 부서에 곧바로 확인하기 때문에 범행이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연체가 발생하면 KT ENS가 동양스타ㆍ은하수 등 SPC에 입금해야 하는 원리금을 협력업체들이 대출금으로 대신 갚아주는 '대환대출'이 은행에 적발될 수 있는 만큼, 구속된 김모씨 외에 KT ENS, 또는 외부 제 3자의 도움이 작용했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사정당국은 하나은행이 관리하는 SPC 신탁 계좌에 'KT ENS' 명의로 입금된 은행이 모두 타행이라는 점에서 금융권 조력자가 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내부 감사 목적으로 의심 계좌를 조회할 수 있는 자행(自行) 입금과 달리, 타행 입금은 계좌 조회가 불가능하다.

금융감독원도 이번 사건이 김씨와 납품업체의 공모만으로는 성사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은행이나 저축은행 전ㆍ현직 직원의 가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검사에 착수한 상태다.

배후에 다른 세력 있나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에 연루된 저축은행이 늘어나면서 관련 대출도 4,000억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KT ENS 직원이 연루된 희대의 사기 대출사건이 금융사ㆍKT 간 책임공방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시중은행들은 KT와 KT ENS가 이번 사건의 연결고리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또 김씨의 범행과 관련,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김씨가 얻은 이익이 뚜렷하지 않다. 대출 사기를 벌인 동기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또 거액을 가로챘음에도 해외 도피가 아닌 경찰 자진출두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업계에서는 최초로 대출받은 금액은 어디에 사용됐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실마리를 해결해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석채 전 KT 회장의 비자금 조성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3,000억원이나 되는 거액의 사기 대출 과정에서 행위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일사분란하고 관련 서류가 모두 정교하게 위조되는 등 일련의 행위가 직원 1명이 전부 했다고 하기에는 의문점이 많다.

무엇보다 이석채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황창규 신임회장의 인사 쇄신으로 사퇴한 김성만 전 KT ENS 대표이사는 서유열 사장과 같은 '영포 라인'으로 이 전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김 전 대표이사는 네트워크부문장 시절 무궁화 위성 헐값 매각 논란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석채 전 회장 검찰 조사 때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바 있어 의혹을 키우고 있다.

의문은 또 있다. KT ENS에 따르면 김씨는 구매 업무와는 상관없는 영업 직원이다. 현재 대기 발령 상태로 인재개발팀에 소속 돼 있다. 일각에서는 김 씨가 명예퇴직 대상이었으나 회사에서 퇴직을 시키지 못해 대기 발령을 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일고 있다.

KT 주변에서는 앞으로도 이러한 KT의 여러 비리가 더 불거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동안 전임 회장과 낙하산 임원들이 벌인 비리들이 속속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한편 업계에서는 은행들은 허위서류라 해도 관련 서류가 있지만 다른 피해 저축은행들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말도 들린다. 저축은행은 BS와 OSBㆍ현대 등 10여 곳이 800억원의 대출잔액이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관련 서류가 없다는 것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은행직원들이 금품을 받고 눈감아 준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