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갯속 남북관계 '출구' 보인다北, 과감한 손 내밀기 '해빙' 물꼬… 南, 신남북관계로 '대박' 터트리나고위급회담 이산가족 상봉 '훈풍'… 朴정부 대북지원 카드 여럿 마련5·24조치 해제땐 남북교류 탄력… 미국 등 남북관계 변화 중요 역할

지난 12일 판문점 우리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당국간 고위급 접촉에서 우리측 수석대표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오른쪽))과 북측 수석대표 원동연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전체회의 시작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북한, 남측에 손 내밀다

북한의 변화가 놀라울 정도다.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처형 이후 "전쟁 불사"까지 운운하며 강경한 모습을 보이던 북한이 최근 태도를 돌변, 우리 정부와 관계개선을 하려는 안간힘이 역력하다.

남북 고위급 회담이나 이산가족 상봉 논의에서 보이는 북한의 태도가 대표적이다.

고위급 회담의 경우 북한은 8일 국방위원회가 청와대 국가안보실에 통지문을 보내 고위급 접촉을 제의한 데 이어 12일 접촉이 사실상 결렬로 끝났음에도 바로 다음날 다시 접촉을 우리 측에 제안했다. 또한 고위급 접촉 과정에서 기존 관례를 깨고 남측의 요구를 수용하는 데 적극성을 보였다. 남측의 공개회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회담 장소도 남북한 지역을 오가는 대신 판문점 남측 지역인 '평화의 집'을 수용했다. 북한이 고위급 접촉을 통해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려는 의지를 강하게 내보였다.

이산가족 상봉 논의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12일 고위급 접촉에서 한미합동군사연습을 이유로 연기 가능성을 흘렸지만 합의된 일정대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20~25일 예정된 남북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예정대로 될 것으로 본다"고 자신있게 밝힌 점도 주목된다. 류 장관은 13일 열린 국회 외교 통일위에서 이산가족상봉이 무산이나 연기될 가능성을 의원들이 지적하자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을 접견하며 악수하고 있다.
북측의 주장은 20일부터 시작되는 이산가족상봉은 예정대로 시작하더라도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겹치는 24~25일에는 상봉행사를 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이처럼 우리 정부와 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오는 데는 대내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처형 이후 불안정한 내부 정세를 관리하고 경제개발 및 외부 지원을 받는 데 남북관계 개선을 출발점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북한 내부의 '위기' 상황으로 인해 남측에 손을 내민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의 최대 현안인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외부 지원마저 중단되는 등 위기 상황이 지속되자 남측과 관계개선을 통해 해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북한은 장성택 처형 이후 경제 여러 곳에서 누수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감에 따라 그 돌파구를 남한에서 찾으려고 한다"고 전해왔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먹고 사는 문제'의 기본인 논농사와 관련, 절대 필요한 비닐 등을 중국으로부터 확보하지 못해 파종이 어려운데다 고질적인 식량 부족으로 인해 벌써 '춘궁기' 에 대한 염려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유일하게 의지해온 중국마저 장성택 처형으로 등을 돌리면서 6월을 고비로 김정은 정권이 위협받을 정도로 북한 주민의 불만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남북관계 개선에 미국 한몫

북한이 우리 정부에 적극적으로 나오는 데는 미국의 역할도 한몫했다. 국내외 정보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0일 북한을 방문한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가 북한에 미국의 메시지를 전했고 이후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문제에 정통한 미국 측 관계자는 "미국은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핵 문제를 포함한 동북아 질서의 변화와 이에 따른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북한에 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이 5일 로버트 킹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를 초청했다가 8일 전격 취소한 것은 그레그 전 대사의 방북 때문이다. 그는 그레그 전 대사의 방북이 언론이 보도한 북한에 억류 중인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씨 석방과는 무관하다고 하면서도 구체적인 방북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다만 북한이 고위급회담에 나서고 우리 정부의 입장을 대부분 수용하는 것이 한미 공조의 대북 플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일각에서는 북한핵 억제력이 실효성을 나타낼 경우 한국을 비롯한 미국 등의 대북 지원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측 정보 관계자는 "장성택 사건 이후 미국은 북한핵에 대해 상당한 정보를 확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북한의 핵위협이 어느 정도 해소된 만큼 미국은 북한을 정상국가화 하는 데 자신있게 나설 것이다"고 전망했다.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는 존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13일 방한한 것이나 오는 4월로 예정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도 그레그 전 대사의 방북과 연장선에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켈리 국무장관의 회담, 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정상회담 의제 중 핵심이 남북문제를 포함한 동북아질서 재편에 관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 정보관계자는 "국제관계에서 이미 아시아가 중심이 되고 있고, 특히 한반도는 최대 관심 지역"이라며 "오바마 대통령의 4월 아시아 순방도 그 때문인데 남북관계에도 커다란 변화가 올 것이다"고 전망했다.

그는 남북관계 변화와 관련, 경제ㆍ사회ㆍ문화 등 전방위적으로 남북교류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朴정부, 남북관계 해법은

최근 남북 고위급회담,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고 순항이 예상되면서 그 '변화'의 폭과 깊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밝힌 "통일은 대박"이란 말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내 회의나 해외 순방에서도 이 말을 자주 쓰고, 나아가 "남북통일은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에도 '대박'이다"고 강조한다.

박 대통령이 '대박'이란 말을 쓴 배경과 그 내용은 무엇일까? 관계자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남북관계의 새로운 진입을 함축한다. 즉 남북이'통일(통합)'로 나아가는 데 진일보한 변화가 이뤄진다는 의미다.

한반도문제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앞으로 한국 정부가 주도권을 갖고 남북관계는 물론, 동북아문제도 풀어갈 것"이라며 "미국은 적극적으로 한국 입장을 지지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실제 북한이 내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남측을 거의 유일한 파트너로 여김에 따라 우리 정부도 자신있게 북한을 상대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그레그 전 대사의 방북, 켈리 국무장관과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은 미국의 한국 지지 입장을 보여준다.

박근혜정부는 지난 1년 국정운영의 상당 부분은 남북관계 개선에 집중됐다. 집권 초기 박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해외 순방을 많이 하면서 남북관계 발전의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주력했다. 국내 문제(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시비, 정상회담 대화록 기록 삭제 문제 등)에 과도하게 신경쓰기보다는 남북관계에 비중을 두면서 일관된 대북 원칙을 견지했다.

앞으로 박근혜정부의 과제는 '대박'이란 결실을 거두는 것이다. 그 일부 내용은 박 대통령이 언급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비전코리아 프로젝트'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등에 나타나 있다.

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3단계로 대북 인도적 지원→농업ㆍ조림 등 낮은 수준의 남북 경제협력→교통ㆍ통신 등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비전코리아 프로젝트 실현을 밝힌 바 있다.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궁극적으로 남북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건설하고 이를 통해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남북한과 아시아, 유럽으로 연결되는 유라시아 대륙을 단일경제권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것으로 물류ㆍ통상ㆍ에너지 등의 인프라 구축을 통해 하나의 대륙을 형성하고, 산업ㆍ기술ㆍ문화를 융합한 창조경제의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집권 2년차부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구체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 실천 방안과 관련해서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에 의뢰를 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위한 재원 등 '물적 토대'도 마련돼 있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 2000년대 초 장석중 (주)극동러시아개발 대표가 남북한을 축으로 러시아와 연계해 동북아를 공동 발전시킨다는 내용을 담은 '동북아그랜드플랜'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주간한국 제2121호, 2006년 5월 9일자, 2475호 2013년 5월 6일자)

그 핵심 내용은 남-북-러를 잇는 경연선(서울-연해주), 38선하(휴전선 접경지역-경연선), 간도선하(신의주-혜산-청진-경연선) 등 교통망을 축으로 남한에는 제2 개성공단에 해당하는 해외동포공단을 조성하고, 북한의 동북지역을 개발하는 한편, 극동러시아 연해주, 사할린, 쿠릴열도 등을 개발하는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발표한 DMZ 내 평화공원 조성, 동북아개발은행 출범, 한ㆍ러 양국이 합의한 '나진-하산 프로젝트' 등의 내용은 '동북아그랜드플랜'에 대부분 담겨 있다.

장성택 처형 이후 더욱 난마처럼 얽힌 남북관계는 고위급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에 이은 5ㆍ24 조치(대북 제재) 해제 등으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근혜정부의 대북 해법이 주목된다.



박종진기자 jjpas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