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소문, 발 없어도 천리 가네각종 '카더라 통신' 모인 사설정보지도 '정식간행물'SNS 만나며 폭발력 자랑 정보지와 찌라시는 달라 애꿎은 피해자만 늘어나

영화‘찌라시’는 열혈매니저 김강우(우곤 역)가 찌라시의 근원을 쫓기 위해 사설정보지 업자 정재영(박사장 역)을 만나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렸다. 영화사 수박 제공
정상을 눈앞에 둔 여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연예계가 발칵 뒤집힌다. 오랜 무명생활 끝에 빛을 보기 시작한 여배우가 갑작스레 자살한 이유를 놓고 온갖 억측이 쏟아진다. 증권가 찌라시를 필두로 '국회의원과 불륜 관계였다', '유명 영화감독에게 성상납을 요구 받았다'등 각종'카더라 통신'이 인터넷을 도배한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순 없지만 누구나 접해봤을 법한 은밀한 소문. 이 소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다룬 영화 '위험한 소문: 찌라시'의 개봉을 계기로 찌라시의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은밀한 정보' 만드는 ?

시중에 유통되는 찌라시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출판 등록까지 마치고 정기간행물로 제작된 사설정보지와 일정한 양식도 없이 인터넷과 SNS에서 토막글로 도는 '증권가 찌라시'다.

일본말 '지라시(흩뿌리다)'에서 유래한 찌라시는 광고용 전단을 의미한다. 1980년대 여의도 증권가에서 주식 종목 분석을 위해 각 기업 주변의 소문을 수집하면서 시작됐다. 증권 관계자들이 모여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식으로 '알짜 정보'를 취합했고, 이를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 보고서 형태로 정리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자 사정기관과 국회 보좌관, 대기업 정보팀, 기자 등 다양한 직군에서 찌라시에 관심을 보였다. 기업 소식에 치우쳐 있던 정보의 범위가 넓어졌고, 정계•재계•관계를 아우르는 '뒷얘기'가 상품성을 인정받았다.

각 분야의 '선수'들이 참여한 정보모임은 까다로운 가입 절차를 거쳐 소수 인원으로 꾸려졌다. '월요모임' '화요모임' 등 정보모임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러 모임을 거쳐 다듬어진 낱장의 찌라시를 보고서 형태로 만들어 유통하는 중간업자가 생겼고 사설정보지 형태를 갖췄다.

한 증권 관계자는 "각 업계에서 선수로 불리는 정보맨들이 여의도 단란주점이나 고급 룸살롱 등에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모임을 가졌다"면서 "각자 풀어놓은 정보를 가지고 A급, B급, C급 등으로 등급을 매기고 그 자리에서 정보지 형태로 문서를 만들었다"고 귀띔했다.

정보지와 찌라시 구분해야

보통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꼴로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사설정보지는 20~3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로 만들어진다. 정치, 기업, 검찰, 경찰 동향을 정보보고 형태로 다루는데, 곁가지로 연예계 소식을 얹는 경우도 있다. 주로 신문사를 퇴직한 전직 기자들이 소규모 언론사 형태로 운영한다. '마크맨'이 정보맨과 접촉해 정보를 물어오면, 이를 정리하고 예측을 덧붙인다. 만들어진 파일에는 암호가 걸려 있고, 유료구독 신청을 한 독자나 기관만 볼 수 있다. 구독료는 한 달에 30만~50만원 선이다.

사설정보지는 온갖 비밀 폭로의 진앙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처음 읽은 사람이라면 기대와 다른 내용에 실망할 수 있다. 연예인은 물론 정치인, 재벌들의 뒷얘기가 가득할 거라고 짐작했겠지만, 정계 재계 관계의 동향을 정리한 수준에 머물기 때문이다. 사설정보지는 첫머리에 "명예훼손을 야기할 수 있는 대외비 내용"이라고 경고하지만, 이미 뉴스를 통해 검증된 사실에 '트렌드 분석'이라는 이름으로 예측을 덧붙인 게 대부분이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찌라시는 정보지와는 성격이 다르다. 인터넷 메신저와 SNS가 발달하면서 정보지는 토막글로 떠돌아 다니게 됐다. 이 과정에서 유포자들이 살을 덧붙이게 되고 정보지에 '카더라 통신'이 덧붙여지면서 '루머 양산소'가 됐다. 아예 정보지를 빙자해 거짓 소문만 담은 찌라시가 돌기도 한다. 정보지는 누가 제작했는지 추적할 수 있지만, 찌라시의 경우 제작자도 유포자도 찾기 어렵다. 'X파일 사건' '최진실 사건' 등 찌라시에서 근거 없는 내용이 도화선이 된 대형 사건이 연달아 터지자 정부는 '찌라시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폭발력' 활용하는 검은손

찌라시는 인터넷 메신저와 SNS가 발달하면서 폭발적인 파급력을 갖게 됐다. 정보와 소문이 교묘하게 섞여 사실 여부를 파악하기도 전에 불특정 다수에게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발 없는 말이 천리가 아니라 만리를 달려 나갔고, 애꿎은 피해자가 '사실이 아니다'를 외쳐야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찌라시가 비밀 폭로의 생산 공장이자 대량 유통처가 되면서 이를 악용하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경쟁관계에 있는 상대의 약점을 폭로하는 통로로 찌라시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찌라시가 출처도 없고 내용에 책임을 지는 경우도 드물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기업인뿐 아니라 정치인도 찌라시를 '폭로전 대피소'로 활용하기도 한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찌라시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존재를 알게 됐다고 진술했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한 혐의를 받았던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도 폭로의 근거로 찌라시를 들었다.



김지현기자 hyun1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