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 조폭' 지고 '기업형 조폭' 도래

검찰은 조직폭력배 1세대는 '정치깡패', 2세대는 '패밀리 조폭', 3세대는 '기업형 조폭'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국에 조폭이라는 개념이 생긴 건 조선시대부터다. 한양 뒷골목에는 '검계'와 '왈짜'라는 무리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서울 명동과 종로 일대에서 조선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먹들이 뭉치면서 '낭만 주먹'으로 유명세를 탔다. '장군의 아들' 김두한과 '시라소니' 이성순, '구마적' 고희경이 대표적이다.

1945년 광복을 맞으면서 '낭만 주먹'들은 힘을 앞세운 '정치깡패'의 길로 들어섰다. 김두한과 이성순 등도 정계 인사와 연계해 활동했으며, 이화룡과 이정재 등 '동대문 사단'이 정치세력과 손잡았다.

박정희정권은 '정치깡패'를 대대적으로 단속했다. 5ㆍ16 군사정변 직후에는 이정재를 비롯한 정치깡패들이 '우리는 깡패입니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서울 거리를 돌았고, 이정재는 범죄단체 수괴 혐의로 사형됐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김태촌의 '서방파', 조양은의 '양은이파', 이동재의 'OB파'로 대표되는 '3대 패밀리'가 모습을 갖췄다. 이들은 모두 호남에서 세를 키워 서울로 진출했다. 회칼, 방망이 등 도구를 사용한 보복 폭행이 일반화됐고, 유흥업소 관리, 성매매, 도박 및 고리대금, 청부살인 등 죄질이 안 좋은 범죄에 적극 가담했다.

'3대 패밀리' 체제가 공고화되면서 전두환정권은 '삼청교육대'로 조폭 청산에 나섰다. 검경을 동원한 대대적 단속에 나서면서 김태촌은 1986년 구속돼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노태우정권 역시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조폭 소탕 작전을 벌였다.

2000년대 들어 3대 패밀리 체제가 지고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했다. 3세대인 '기업형 조폭'이 등장한 시기다. 1990년대 이후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 편승해 건축 시행 업무나 아파트, 상가 분양에 진출한 조폭들은 이제 여러 개의 상장회사를 운영하며 합법을 가장한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