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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범죄, 누가 왜 저지르는가

'은둔형 외톨이' 사회 불만 폭발
범죄 가해자 48명 중 정규직은 단 1명뿐
현실에 대한 불만 커, 대인기피는 공통 현상… 치료 상담 교육 '절실'
# 지난 2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압구정역의 한 제과점에서 '묻지마 인질극'이 벌어졌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김모(57)씨가 칼 두 자루를 들고 40대 여성을 위협하며 3시간 경찰과 대치를 벌였다. 동네 주민인 김민주(28ㆍ여)씨는 사건이 벌어진 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내가 그 시간에 빵을 사러 갔다면 붙잡힐 수 있을 텐데 얼마나 끔찍한 일이냐"고 불안을 호소하면서 "출퇴근길이 걱정돼 가스총과 최루 스프레이 등 호신용품을 새로 샀다"고 말했다.

#'묻지마 범죄'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지난 3일 오전 제주시 삼도동 한 골목길에선 중학생 A(13)양이 입학식에 가던 중 40대로 추정되는 남성에게 흉기에 찔렸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경찰 조사 결과 부모의 판단착오에서 비롯된 해프닝으로 밝혀졌다. A양이 아버지에게 길을 가다 넘어져 무엇인가에 배를 찔렸다고 얘기한 것을 부모가 '묻지마 범죄'로 오인한 것이다.

시민들의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뉴스를 통해 흉악 범죄 소식을 들어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좀처럼 실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출근길을 두려워하고, 가족의 안전을 염려해야 하는 '불안시대'가 왔다. 원한을 사지 않아도 아무나 대상이 될 수 있는 '묻지마 범죄'가 많아지면서 공포가 커지고 있다.

우리사회에 처음으로 '묻지마 범죄'의 공포를 안긴 건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중년 남성이 출근길에 나선 지하철 승객을 상대로 불을 질러 192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뚜렷한 동기는 없었지만, 삐뚤어진 마음을 가진 건 확실했다. 지적장애를 앓던 남성은 한 승객이 지하철 안에서 라이터를 켰다 껐다 하는 위험한 행위를 지적하자 홧김에 불을 질렀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묻지마 범죄' 소식은 더 잔인해졌다. 고시원에 불을 지른 뒤 이웃 주민을 흉기로 살해한 정모씨는 "세상이 나를 무시한다"는 말만 남겼다. 여의도 한복판에서 전 직장 동료를 칼로 찌른 김모씨는 "실직으로 인한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단지 이웃집에서 들린 행복한 웃음소리가 싫어 부부를 살해하기도 했다.

누가 왜 저지르는가

형사정책연구원의 윤정숙 부연구위원팀이 최근 발표한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와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는 우리 사회를 '묻지마 범죄 취약 지대'라고 진단했다. 범죄자 대부분이 정신질환을 앓거나 사회에 부적응한 사람들로 이들에 대한 치료와 상담, 교육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윤 부연구위원팀이 2012년 국내에서 발생한 묻지마 범죄 47건을 분석해 범죄자를 현실 불만형, 만성 분노형, 정신 장애형으로 나눴다. 전체 범죄자 48명 중 만성 분노형은 22명(45.8%), 정신 장애형은 18명(37.5%), 현실 불만형은 8명(16.7%)로 나타났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만성 분노형 범죄자는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의도를 곡해한다는 특징을 지녔다. 특별한 이유 없이 재미로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범죄자가 주폭이나 상습 폭력범인 경우 여기에 해당한다.

정신 장애형 범죄자들은 신체 및 정신 병력이 있고, 정신과 치료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범행 당시 신체 건강이 양호하지 못하며, 망상이나 환각에 사로잡혀있는 경우도 있다.

현실 불만형 범죄자들은 주로 사회에 불만이 있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묻지마 범죄를 저질렀다. 범행 당시 우울한 기분을 느끼며 사회에 대한 막연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가 폭발한다.

세 유형의 범죄자들의 특성을 살펴 보았다. 범죄 가해자의 평균연령은 약 39세로 30대와 40대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가장 나이가 어린 가해자는 18세, 가장 나이가 많은 가해자는 68세였다. 가해자 성별은 1명을 제외하곤 모두 남성이었다.

가해자들은 범행 당시 직업이 없는 경우가 36명(75.0%)이나 됐다. 직업이 있더라도 그 직업이 비정규직 혹은 일용직인 가해자가 11명(22.95)이었다. 정규직이거나 자영업인 경우는 1명(2.1%) 뿐이었다.

소득도 형편없었다. 버는 돈이 없다고 대답한 사람이 무려 35명(72.9%)였다. 100만원 미만은 6명(12.5%), 100만원 이상 200 미만은 6명(12.5%)이다. 알 수 없는 경우도 1(2.1%)명 있었다.

범죄 유형별 대책 절실

묻지마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윤 연구위원은 유형별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 연구위원은 "현실 불만형을 위해선 직장 내 상담센터나 지역사회 의료기관의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면서 "은둔형 외톨이나 극단적 불만을 갖은 사람들을 발굴하고 치료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만성 분노형 범죄자는 고위험군 범죄자로 이들을 관리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정신장애형 묻지마 범죄자를 위해선 구금치료시설 확대와 퇴소 후 사후관리체계가 절실하다.

선진국의 시스템을 적극 활용할 필요성도 있다. 영국에서는 재범 위험이 있는 범죄자를 대상으로 공공보호안(MAPPA)로 우범자 관리를 하고 있다. 형사사법기관 및 의료, 사회 복지기관을 비롯한 다양한 관계기관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윤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지역사회 내 고위험군 대상자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정보 공유와 협조 체제를 구축 해야한다"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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