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선거 호남 제외 전패 '먹구름'출마 후보군 집단 반발 '내홍 조짐'

복수 후보 난립 가능성… 야권표 분산 선거 필패 불 보듯
"선거 지면 새정치도 없다"… '무공천 철회' 주장 잇달아
당지도부 약속 뒤엎을땐 거센 후폭풍 '무공천 원칙' 고수
김·안 vs 문재인 신경전도 시작… 신당 지지율도 추락세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6ㆍ4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 및 의회 정당 공천 폐지 방침을 놓고 심각한 내홍 조짐을 보이고 있다. 통합신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기초선거에서 공천을 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하자 당내 출마 후보군이 집단적으로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무공천 방침에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통합신당이 공천을 하지 않을 경우 기초단체장과 기초의회 선거에서 기호1번은 새누리당이 가져가지만 신당 몫의 기호2번은 공란으로 비워진다. 의석 수에 따라 기호3번과 4번은 각각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이 가져가게 되면서 통합신당 측 인사들은 다른 무소속 후보와 함께 5번 이상의 기호를 받게 된다.

따라서 유권자 입장에서는 누가 통합신당 출신 후보인지 분간하기 어렵고, 당내에서 교통정리가 되지 않는 탓에 복수로 후보들이 나설 가능성이 커진다. 게다가 무소속 후보가 통합신당의 안철수 의원이나 친노 문재인 의원의 측근 임을 내세워 선거운동을 할 경우 딱히 이를 막을 방법도 없다.

다시 말해 여당 후보는 기호1번 새누리당으로 정해지지만 다수의 야당 후보들이 우후죽순 나서면서 표를 나눠가질 공산이 크기 때문에 호남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야당이 기초선거에서 전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 민주당 이부영 상임고문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초선거 무공천이란 대의명분에 집착하기보다 대국(大局)을 봐야 한다"라면서 "대선 공약을 파기한 새누리당은 유리하게 전개되는 선거 판세에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반면 2번 기호가 사라지게 된 민주당은 난립하는 무소속 후보들 속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다"고 무공천 백지화를 촉구했다.

통합신당이 당초 약속대로 무공천 방침을 고수한다면 6ㆍ4 지방선거 전패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지만 약속을 뒤엎을 경우엔 만만치 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공천 폐지를 선언하며 약속을 지키는 것이 새정치란 논리를 앞세워 야당 통합을 강조했는데 이제 와서 슬그머니 공천에 나선다면 거센 역풍을 맞게 되는 것은 물론 신당 창당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딜레마 속에 일단 통합신당 양측 지도부는 기초공천 무공천 원칙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새누리당은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헌신짝 버리듯하며 거짓말 정치와 낡은 정치, 구태정치를 하고 있지만, 우리는 국민 뜻을 받들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재천 의원도 기자간담회에서 "당내에 이견과 반론이 있지만 민주당의 일관된 입장은 정치적 약속(무공천)을 실천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새정치의 출발이고 신뢰정치의 근본"이라고 전했다.

무공천 고수를 강조하는 안철수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무공천에 따른) 현장에서의 어려움은 잘 알고 있다"면서도 "서로 어려움을 나눠서 짊어지고 가기로 이미 약속했던 사안이다. 신당 창당 합의 정신에 입각한 중요 사안"이라고 무공천 방침을 철회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지도부의 원칙 고수에 밑으로부터 제기되는 파열음이 갈수록 커지는 형국이다.

당 내부에서 무공천 철회 주장 커져

지난달 20일 국회 귀빈식당에서'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촉구 정치권·시민사회 공동기자회견'에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참석했다.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20일 자신의 트위터에 "나는 기초단체 정당공천을 줄기차게 주창해왔다"며 "법이 있고 타당은 공천하는데 우리만 폐지하면 후보 난립 등 혼란으로 패배하고 조직도 와해될 것이다. 선거에 지면 새 정치가 무슨 소용이 있을지…"라고 말했다.

같은 당 이원욱 의원도 "당이 내각제를 공약으로 하고 선거를 했는데 헌법 개정을 못해서 대통령제가 계속 유지된다면 대선 후보도 내지 말라는 것이냐"며 "풍찬노숙하며 당을 지켜온 당원들에게 '출마하려면 탈당하라'고 하는 것이 새정치냐"라고 따졌다.

이렇듯 지도부의 방침과는 달리 민주당 내부에서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백지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공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기초선거 무공천을 앞세워 통합에 나선 안철수 의원에게 화살이 돌아가고 있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기초단체장 무공천 결정으로 서울 현역 구청장 19명(전체 25명 중 민주당 소속)이 전멸하고 그 여파로 서울시장까지 놓치게 되면 안철수 의원 역시 정치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면서 "기초선거 무공천이 과연 안 의원이 얘기했던 새 정치인지 회의적"이라고 우회적으로 경고했다.

특히 친노 좌장인 문재인 의원은 "당원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라며 김한길ㆍ안철수 의원과 다른 견해를 폈다. 그러자 지도부 측에서는 기초선거 공약 폐지는 문 의원이 대선 때 공약했던 것이라고 맞받아치는 등 양측 신경전도 가열되는 분위기다.

어쨌든 당내에서 무공천 철회 주장이 커지자 신당의 정치개혁안을 논의하는 새정치비전위원회도 기초선거 무공천을 재검토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백승헌 새정치비전위원장은 19일 기자들과 만나 '기초선거 무공천 결정을 재검토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기초선거 공천 폐지 문제를 국민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론을 얘기한 것'이란 단서를 붙였지만, 이는 통합신당 핵심에서도 무공천에 따른 폐해를 적잖이 고민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민주당 지도부와 내부 이견이 노출되는 가운데 의원들의 무공천 철회 주장은 확산일로다. 이인영 의원은 "외국에서는 정당과 시민단체, 무소속의 차이를 없애는 쪽으로 새 정치를 하는데 국민이 정치를 불신한다고 해서 정당 공천을 폐지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며 "여야가 1대1 구도라면 모를까, 1(여당)대 다자(야당) 구도가 된다면 정당공천 폐지는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다. 좋을 게 없다"고 잘라말했다. 박영선 의원은 "(무공천 방침에 따른) 폐해가 아주 심각하다. 지역구에 가기 어려울 정도로 문제가 많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신학용 의원도 "지역은 난리다. 새 정치라는 약속 지키려다 다 망하게 생겼다. 국민이 약속 지키지 않는 새누리당에 벌칙을 주기를 기다릴 뿐이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초선거의 어려움이 광역단체장 선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김낙순 전 의원은 "서울의 기초 선거 출마 예상자가 400명이 된다. 그들이 이른바 보병들인데 박원순 시장 입장에서 보면 보병이 없이 선거를 치르라는 거다. 박 시장도 이기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기동민 서울시 정무부시장도 "싸움 자체가 안 된다. 당의 하부구조가 다 무너졌다. 총칼을 다 내놓고 선거 치르라는 거다. 어떻게 선거를 치러야 할지 너무 걱정스럽다" 고 우려했다.

이 같은 이견이 거듭되는 당내 상황을 문희상 의원이 한마디로 정리해 눈길을 끈다. 문 의원은 "어떻게 선거를 치러야 할지 난감하며 죽을 맛"이라면서도 "새정치로 인식되고 있으니 뒤집을 수도 없고 죽는 줄 알면서 끌려가야 하는 숙명"이라고 진단했다.

무공천 선거전 치를 아이디어 난무

수도권의 기초선거 공천 폐지에 대한 반발이 일자 당 내부에서는 공천 폐지라는 새정치 약속은 지키면서도 내천(내부적인 공천)을 하는 식으로 선거에 직접적 도움이 될만한 묘안 짜내기에 여념이 없다.

먼저 수도권은 통합신당 공천을 하되, 야당의 정치적 텃밭인 호남 지역에서는 공천을 하지 않는 선별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호남에서는 무공천을 하더라도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희박하니 시범적으로 이 지역부터 시작한다는 의미를 부여하자는 이야기다.

하지만 안철수 의원 측 송호창 의원은 "지역별로 차이를 두는 것은 더 웃기는 얘기 아닌가. 안철수 의원의 기초선거 공천 폐지는 선거 승리가 목적이나 유불리가 아니기 때문에 번복한다는 것도 안 된다"고 못박았다.

후보들에게 민주당의 상징인 파란색 옷을 입혀 사실상 야당 후보임을 알리자는 의견도 나왔다. 변재일 민주당 충북도당 위원장은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는 줄세우기식이 아니라, 진정한 인물중심의 정치를 추진하려던 것"이라며 "기초선거에 대한 정당 공천은 없을 것이며 출마자들에게 옷만 파란색을 입힐 것"이라고 말했다.

변 위원장은 무공천으로 어떻게 민주당 색깔을 입힐 것인지에 대해 "현재 민주당 당원이면서 후보로 정식 등록하기 전까지는 민주당의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선거운동을 펼칠 것이고 탈당 후 정식 후보가 된 후에는 상징적 의미에서 파란색 유니폼을 계속 입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무소속 후보들이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나오거나, 민주당 내 복수의 예비 후보들이 모두 나설 경우 딱히 이를 제지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게 고민이다.

이와 함께 무공천 보완책으로 안철수, 김한길 의원과 함께 찍은 사진을 게시하거나 국회의원들의 유세 지원을 통해 새정치민주연합의 후보임을 알린다는 고육책까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안들도 모두 무공천 원칙을 위배하는 편법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새정치를 한다면서 꼼수를 부린다"는 새누리당의 역공에 휘말릴 수도 있다.

민주당은 국민들이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이 없고, 민주당이 새 정치를 하려 한다는 인식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강래 전 의원은 "1991년 김대중 대통령이 단식까지 하며 기초선거에 정당공천을 밀어붙인 것이 정권교체를 위해서였다"며 "기초 자치단체 내에 정당의 뿌리가 튼튼히 자라야만 자치제가 착근하고 야당의 토대가 튼튼해 진다는 것이 DJ의 혜안이었다"고 언급했다.

무공천 고수하는 안철수의 셈법은?

여기서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를 앞세워 무공천 방침을 고수하는 진짜 이유가 무언지 궁금해진다. 물론 안 의원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새정치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실제 기초선거에서 대패할 경우 당장 야당의 정치 상황은 어려워져도 국민에게 안 의원은 약속을 지킨 정치인이란 이미지는 남게 된다. 또 차기 총선 등에서 여당의 독주를 제어하기 위한 국민적 견제심이나 동정 심리도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안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신의와 원칙 이미지를 국민 뇌리에 각인시켜 결국 집권에 성공한 사례를 벤치마킹 하고 있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녹록한 것은 아니다. 벌써부터 당 내부에서는 무공천 방침을 고수하는 안 의원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만약 민주당의 기초선거 무공천이 이뤄져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새누리당이 완승할 경우 안 의원은 그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더구나 박원순 시장 측도 밝혔듯이 기초선거의 어려움은 바로 광역단체장 선거로 직결된다. 기초선거 패배에 이어 광역단체장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새누리당에게 밀릴 경우 안 의원은 단순히 무공천에 대한 책임론을 떠나 상당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 같은 점을 새누리당도 파고들고 있다.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이번 무공천 논란은 민주당과 안 의원의 국민 기만극을 더욱 부각시켜주고 있다"면서 "이런 구태세력이야말로 철퇴의 대상임을 국민들이 잘 판단해 주실 것이라 믿는다"고 주장했다.

홍지만 원내 대변인도 "합당 명분이 기초선거 무공천이었는데 그것마저 뒤집고 다시 공천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신당이 무공천을 철회하려면 합당 무효선언부터 해야 한다"고 공세를 퍼부었다.

이에 따라 기초선거 무공천을 선도하고 있는 안 의원의 정치적 결단에 이목이 쏠린다. 원칙대로 무공천을 고수할 경우 선거 패배에 따른 책임론이 뒤따를 것이고, 원칙을 깨고 다시 정당 공천을 행사할 경우 본인 말을 스스로 뒤집는 식언가로 공격받을 게 분명하다.

이런 와중에 통합신당의 지지율은 추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 주목된다. 리얼미터의 3월 24일 조사에서는 바로 전 주에 비해 새누리당은 1.8%포인트 상승했고, 신당은 3.5%포인트 하락했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49.6%)과 통합신당인 새정치민주연합(34.8%)의 격차는 9.5%포인트에서 14.8%포인트로 커졌다. 지방선거를 앞둔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의 고민이 더욱 커지고 있다.



최세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