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먹거리' 포석, 장남에 힘실려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내 영향력이 강화될 전망이다. 삼성SDI 본사.
삼성SDI가 제일모직을 흡수합병, 매출 10조원의 거대 계열사로 거듭나며 세간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삼성그룹 측이 사업 시너지 효과를 위함이라고 합병 이유를 밝혔음에도 재계 관계자들은 이를 삼성가의 후계구도 재편과 관련지어 해석하는 모양새다. 이번 합병의 최대 수혜자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라는 얘기가 비중 있게 나오는 가운데 그 배경을 짚어봤다.

매출 10조원 회사 출범

삼성SDI가 제일모직을 흡수합병해 자산 15조원대의 거대 기업으로 거듭난다. 삼성SDI와 제일모직은 지난달 31일 이사회에서 합병을 결의, 글로벌 소재ㆍ에너지 토털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을 선언했다고 발표했다.

삼성SDI와 제일모직은 각각 1대0.4425482의 비율로 합병하며 삼성SDI가 신주를 발행해 제일모직의 주식과 교환하는 흡수합병 방식으로 진행된다. 합병회사의 사명은 삼성SDI로 결정됐다. 양사는 오는 5월30일 주주총회 승인을 거쳐 7월1일 합병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번 합병으로 삼성SDI는 자산 15조원, 시가총액 10조원, 직원 수 1만4,000명, 연 매출 9조5,000억원 규모의 거대 계열사로 거듭나게 됐다. 매출규모만을 놓고 보면 삼성전자(228조7,000억원), 삼성디스플레이(29조5,000억원), 삼성물산(28조4,000억원), 삼성중공업(14조8,000억원)에 이어 그룹 내 서열 5위로 올라서게 된 것이다. 삼성SDI 측은 "합병 시너지를 통해 2020년에는 연 매출 29조원 이상의 회사로 도약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제일모직 본사.
삼성 미래먹거리 책임진다

재계 전문가들은 부품 전문기업인 삼성SDI와 소재 전문기업인 제일모직의 합병이 작지 않은 규모의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 입을 모으고 있다.

그동안 재계에서는 신성장동력 육성 차원에서 양사의 합병 가능성을 제기해왔다. 양사 모두 현재 주목 중인 자동차 소재 및 디스플레이 사업과 연관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SDI가 최근 주력하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제일모직이 성공을 앞두고 있는 분리막 개발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자동차 경량화 소재인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분야까지 담당하고 있는 제일모직과의 합병은 갈수록 시장 규모가 커지는 친환경 자동차 부품ㆍ소재 시장에서 삼성SDI가 주도권을 쥘 수 있게 해줄 전망이다. 제일모직도 기존의 전자ㆍIT 시장에 집중됐던 합성수지를 자동차용 시장으로 확대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나아가 양사의 역량을 결합, 전기차 주행거리 향상 솔루션 등 차세대 먹거리 발굴도 가능해졌다.

양사의 합병은 삼성전자에만 의존하던 삼성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 변화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재계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에 대해 '정점을 찍고 내리막만 남은 상태'라고 지적하고 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포화로 더 이상 판매량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데다 반도체 사업에서도 과거만큼의 이득을 얻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010년 미래먹거리로 제시했던 5대 신수종사업(태양전지, LED, 2차전지, 의료기기, 바이오제약)도 상당 부분 위축됐다. 태양전지 사업에서는 서서히 철수하는 모양새고 LED와 의료기기, 바이오제약 사업에서도 뚜렷한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물인터넷과 3D프린터, 모바일헬스케어 등 새로운 사업을 제시하고 있지만 결과를 내기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다.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는 2차전지를 비롯, 미래먹거리 사업이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장남에 그룹 역량 집중되나

재계 일각에서는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이 결과적으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밀어주기 위함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의 자회사인 삼성SDI가 제일모직을 합병함에 따라 이재용 부회장의 관할 사업권이 더욱 넓어진 까닭이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이번 합병에 대해 '삼성그룹 3분할론'이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자 및 금융 부문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호텔ㆍ건설ㆍ중화학 부문을,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이 삼성에버랜드 패션 부문을 나눠 갖는 3세 구도가 굳어지는 계기로 작용하리라는 해석이다.

문제는 이 부회장에 배정된 몫이 갈수록 커지며 두 동생의 영역을 침범한다는데 있다. 본래 제일모직은 오롯이 이서현 사장의 몫으로 오랫동안 여겨져 왔다. 그러나 지난해 패션부문을 분할, 삼성에버랜드에 이관하면서 소재 사업만 남은 제일모직은 결과적으로 이서현 사장의 관할 밖이 됐다.

이번에 삼성전자 산하의 삼성SDI에 합병된 제일모직은 결국 이 부회장의 지배 하에 완전히 놓이게 됐다. '제일모직(소재)-삼성SDI, 삼성전기(부품)-삼성전자(완제품)'로 완성된 수직계열화를 이룬 이 부회장은 향후 대권승계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삼성그룹의 모태로 상징적 의미를 지닌 제일모직을 껴안은 이상, 후계자로서의 명분과 실리 모두를 취할 수 있게 됐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부진 사장도 제일모직을 빼앗긴 이서현 사장과 마찬가지로 자기 관할의 건설 부문 계열사들을 이 부회장에게 뺏길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최대주주가 각각 7.18%, 13.1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SDI, 제일모직인 이상, 이번 합병 이후 해당 계열사들에 미치는 이 부회장의 영향력이 지금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이부진 사장이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주식을 단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점도 이 같은 해석에 무게를 싣고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