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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가족 비극, 사회가 짐 나눠야"

● 노익상 한국장애인부모회 회장 인터뷰
발달장애인 지원법 제정 확정… 발제련 등 시민단체와 부모가 앞장
장애 특성에 맞는 지원체계 구축 "엄마들이 원하는 건 진정한 배려"
"삭발한 모습도 잘 어울리지 않아요?" 지난달 30일, 한국리서치 대표 집무실에서 만난 노익상(67·사진) 한국장애인부모회 회장이 매끈해진 뒤통수를 매만지며 활짝 웃었다. 3주 전, 노 회장은 벚꽃이 흩날리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발달장애인과 부모 등 80여명과 함께 눈물의 삭발식을 치렀다. 2년간 국회에서 계류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하 발달장애인법)' 통과를 촉구하는 처절한 절규의 자리였다. 부모의 간절함이 전해진 걸까. 발달장애인법이 전격 통과되면서 노신사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거친 히말라야 산맥의 한 자락을 막 넘어선 기분이란다. 장애계의 오랜 숙원을 해결한 노 회장을 만나 그간의 사연을 들어보았다.

2012년 2월, 한국장애인부모회ㆍ전국장애인부모연대ㆍ한국자폐인사랑협회ㆍ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는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이하 발제련)'를 꾸리고 발달장애인과 가족을 위한 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발달장애인법은 김정록 새누리당 의원이 19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발의하면서 관심을 모은 지 2년 만인 지난달 29일 본회의에서 전격 통과됐다.

사실 발달장애 가족은 장애계에서도 소수다. 보건복지통계연부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우리나라에 등록된 발달장애인은 지적장애인이 17만3,257명, 자폐성장애인 1만6,906명 등 모두 19만163명으로 전체 장애인의 약 7.6%다. 하지만 20세 미만으로 눈을 돌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노 회장에 따르면 20세 미만 발달장애인은 전체 장애인의 65%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가정의 비율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노 회장은 발달장애아 가족의 비극은 '사회적 문제'라고 진단한다. 시각, 청각 장애를 앓고 있는 자녀는 다치면 '아프다', 식사 때면 '배고프다'고 자기 표현을 할 수 있지만 발달장애아들은 표현을 하지 못한다. 의사표현이 힘든 자녀를 둔 부모가 자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자녀에게 매달리다 보면 자연스레 생업이 뒤로 밀리고, 생계가 힘들어지니 자녀를 돌보는 일이 힘에 겨운 악순환이 반복된다. 노 회장은 "선천적 장애를 둔 부모는 죄책감에 시달리기 마련인데 발달장애 자녀를 돌보는 엄마들 중 상당수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서 "그러다가 자살로 이어지는 비극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 회장과 발제련, 그리고 발달장애아를 둔 부모들은 직접 발달장애인법 제정에 앞장섰다. 기존의 장애인 복지법은 '등급별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장애 특성에 맞는 맞춤 지원이 절실했다. 팔 다리가 아프거나 눈이 안 보이는 건 장애의 경중을 나눌 수 있다. 하지만 발달장애를 등급으로 나누긴 어려운 까닭이다.

발로 뛴 발달장애아 부모들

2년 만에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노 회장과 발제련은 훌륭한 팀플레이의 정석을 보여줬다. 노 회장은 "이해관계가 다른 시민단체들이 모여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부모의 마음이 통했다"고 말했다. 단체별 특성을 살려 발로 뛰기 시작한 것이다. 추진력이 강한 단체는 법안을 만들고 설득력이 뛰어난 단체는 국회의원을 직접 찾아 나섰다. 활동력이 강한 단체는 거리에 나가 목소리를 내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이번에 통과된 발달장애인법은 발달장애인의 권리보호를 위해 자기결정권 보장, 성년후견제 이용지원, 의사소통도구 개발 및 전문인력 양성 등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발달장애인 자조단체 구성 및 지원, 발달장애인 전담 조사제, 발달장애인 대상 범죄의 신고의무, 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 조사권 부여 및 보호가 필요한 발달장애인을 위한 위기발달장애인쉼터 설치·운영 등을 담고 있다. 이제 이 법안은 정보 공포 뒤 1년 6개월 이후부터 법적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부족한 점은 없을까. 노 회장은 "아쉬운 부분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초안에서 요구했던 예산은 1조원 가까이 줄었지만 발달장애인 가족의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한 만큼 의미가 크다는 얘기다. 노 회장은 "국민의 세금으로 걷힌 예산인데 장애인이라고 해서 공짜로 돈을 나눠줄 수는 없다"면서 "엄마들이 원하는 건 소수자로서 배려를 받는 것이지 퍼주기식 지원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가족 사회가 돌봐야"

여론조사 전문업체인 한국리서치를 설림하며 성공한 CEO로 승승장구하던 노 회장이 한국장애인부모회를 이끈 지 벌써 3년이 흘렀다. 그간 뒤에서 묵묵히 장애인 관련 단체 후원만 해오던 그가 부모들의 대표로 나선 건 아픔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노 회장의 큰 딸(37)은 망막세포감퇴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노 회장은 "가족 중 한 사람이 장애를 앓고 있으면 가정이 행복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장애인 가족도 사회가 돌봐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묵묵히 궂은 일을 도맡는 노 회장이지만 장애단체 활동은 의무감으로 하는 일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노 회장은 "대한산악연맹 부회장 감투는 즐겁지만 이 일은 의무"라면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산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후배들과 함께 히말라야에 오를 계획을 세우는 건 신나는 일이지만 장애인의 권리를 주장하고 앞장서는 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노 회장은 얼마 전 인천에서 발달장애 자녀를 잃어버린 부모가 자녀를 찾았는지를 궁금해했다. 그는 "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일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겪는다"면서 "장애가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책임보다는 정, 마음으로 감싸야 한다"고 조언했다.

[프로필]

▲1947년생 ▲1966년 경기고 졸업 ▲1973년 고려대 사회학과 대학원 졸업 ▲1973년 한국행동과학연구소 ▲1976년 ASI한국지사 ▲1978년 한국리서치 설립 ▲2014년 현재 한국리서치 대표, 한국장애인부모회 회장, 대한산악연맹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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