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핵심 '친박계' 여론 집중타… 팽팽하던 광역 경선 '비박' 득세'세월호' 분노 여권 책임론 확산… '친박' 경선서 줄줄이 낙마 충격지방선거 판도에 중대한 변화… 당대표·원내대표 선출에도 영향
여권의 위기는 곧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것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정권의 핵심인 '친박'(친박근혜)들이 코너에 몰려 여론의 집중타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조짐은 이번 선거에 나설 광역단체장 새누리당 후보 공천 과정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주지사 후보에 비박계 원희룡 전 의원의 공천이 확정된데 이어 경남지사 후보에는 역시 비박계인 홍준표 지사, 충북지사 후보에는 친이계인 윤진식 의원으로 결정됐다.
내부 판도 변화에 긴장하던 친박계가 급기야 친박의 안방이자, 박 대통령의 고향인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친이계인 권영진 전 의원이 당선되자 급격한 혼돈에 빠졌다. 권 전 의원이 쟁쟁한 친박 현역 의원들을 꺾은 것은 '친박 표의 분산'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내부에서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권 전 의원은 그간 3차례의 총선을 서울에서 치르고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내는 등 대구 토박이로 분류하기도 쉽지 않은 인사다. 여기에 대구에 내려온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현지에서는 무명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 권 전 의원이 친박 현역 의원과 구청장을 제치고 승리한 것은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민심의 변화로도 해석된다. 친박의 무기력증이 커지면서 박 대통령의 여당 장악력도 함께 저하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함께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 친박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당내 경선에서 친박계 후보들이 연이어 고배를 마시고 있어 친박 진영 전체가 걱정이 많다"며 "친박 진영이 세월호 참사가 있어 드러내놓고 지원 사격을 한 것은 아니지만 알게 모르게 특정 후보를 위해 노력했는데도 당내 밑바닥 정서와 일반 여론이 따라오지 않았다는 점에 심각성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부산과 대전, 충남에서는 친박계 인사들이 경선에서 승리해 한숨은 돌린 편이지만 앞으로 서울 인천 경기 등의 광역단체장 경선은 물론, 국회의장 선거나 당 대표, 원내대표 등의 당내 선거에서도 이 같은 사례가 반복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지지율도 동반 하락했다. 새누리당 지지율은 전주보다 4.7%포인트 하락한 48.7%를 기록했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의 반등세가 미약한데 위안을 갖는 형편이다. 새정치연합은 전주보다 1.2%포인트 상승한 28.1%를 기록했다. 통합진보당은 1.9%, 정의당 1.5%, 무당파는 18.2%였다.
지방선거에서 친박은 없다?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여야 광역단체장 후보가 결정됐지만 친박 인사들의 상승세가 두드러진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대구 경남 충북 제주는 비박계 인사가 나섰고, 정몽준 의원과 김황식 전 총리, 이혜훈 전 의원이 맞붙은 서울과 남경필 의원이 앞서는 경기 지역에서도 친박의 그림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가장 중요한 서울의 경우 정몽준 의원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국민을 무시하는 듯한 글을 트위터에 올린 아들의 행동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지만 실제 리얼미터의 조사에서는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월호 참사 수습기간 개별적인 지역 여론조사를 정치권이 자제키로 해 서울 유권자들의 정확한 민심 변화는 감지하기 어렵지만, 차기 대선주자의 지지도 조사에서는 정 의원이 건재함을 보여 간접적으로 유추해 볼 수는 있다.
물론 세월호 참사의 수습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선거전이 다시 열기를 뿜을 경우 정 의원의 아들 문제가 도마에 올라 지지율에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는 큰 변곡점은 되지 않고 있다. 이 경우 친박의 간접 지원을 받고 있는 김황식 전 총리의 역전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고 원조 친박 격인 이혜훈 전 의원도 여전히 틈새를 노리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된다.
경기는 비박계인 남 의원이 비교적 여유 있게 경쟁 후보를 따돌리고 있는 편이라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인천은 친박 핵심인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과 범친박계 정도로 분류되는 안상수 전 시장의 경쟁이 뜨겁다. 새정치연합의 송영길 시장과의 맞대결 후보를 가리는 것이지만 송 시장과의 가상 대결 여론조사에서는 두 후보 모두 해볼만한 결과가 나오고 있다. 조사기관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유 전 장관이 근소한 차로 안 전 시장을 앞서는 결과가 많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에 간접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전직 안행부 장관이란 점에서 막상 뚜껑을 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단키 어렵다.
친박진영은 4월30일 치러진 부산 대전 충남 지역 경선에 친박 인사들이 승리하면서 체면치레는 한 셈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위기감 속에 내부 의원들이 힘을 모은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부산시장 후보에는 친박 핵심인 서병수 의원이 친이계인 권철현 전 일본대사를 눌렀다. 그것도 여론조사에서는 권 전 대사(44.1%)에게 서 의원(35.9%)이 뒤졌지만 현장 투표에서 앞서 합산 결과 1,288표대 1,120표로 간신히 이겼다.
충남지사 후보로는 당초 불리할 것이라고 예상되던 정진석 전 국회 사무총장이 막판 뚝심을 발휘해 앞서있던 홍문표 이명수 의원을 따돌렸다. 정 전 사무총장은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냈지만 박근혜 대통령 몫이었다는 점에서 친박계로 분류된다.
당대표와 원내대표 결과는?
지방선거에 나설 후보가 결정되고 본선을 향한 선거전이 시작돼도 친박의 걱정은 또 있다. 만일 자파 후보들이 고전하고 친이계 등 비박계 후보들만 선전한다면 그것도 보통 고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은 내부 경쟁에선 비박계 정몽준 의원이 앞서 있는 상황이고 새정치연합 박원순 시장과의 싸움도 비등한 수준이다. 부산은 친박계 서병수 의원이 나서지만 야권에서 새정치연합 김영춘 후보와 무소속 오거돈 후보의 단일화 가능성이 남아있다. 야권 후보들이 단일화할 경우 서 의원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충북은 여야가 혼전이고 충남은 다소 야당에게 밀리는 편이지만, 충북 후보는 비박계이고 충남 후보는 친박이다. 친박 후보가 접전 끝에 야당 후보를 누르고 기세를 올릴만한 곳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데 고민이 있다.
또 여당이 지방선거에 석패한다면 이는 고스란히 국정운영을 책임지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친박계에게 패인의 화살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면 안 되는 선거이면서도 진짜 우리편인 친박의 승전보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는 게 친박들의 심정이다.
그러다 보니 차기 총선의 공천권까지 좌우할 수 있는 7월 새누리당 대표 경선에 정치권의 관심이 자연스레 쏠린다. 8일 실시되는 원내대표 경선에는 친박계인 이완구 의원의 독주가 예상돼 이변이 없는 한 무난히 당선될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당 대표의 항로는 점치기 어렵다. 지방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친박에게는 그리 유리하게 작용할 것 같지 않다. 선거에서 이기더라도 친이계 등 비박계 인사들의 선전으로 요약될 상황이고, 질 경우엔 친박이 덤터기를 쓰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당 대표 경선에서 친박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요소가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현재 당 대표 경선은 비박계 김무성 의원과 친박 서청원 의원의 대결로 압축된다. 지방선거 이후에 치러지는 전당대회이기에 김 의원이 시기적으로는 유리하다. 더구나 원내대표에 충청권 출신인 이 의원이 오르면 같은 충남 출신인 서 의원에겐 마이너스 효과이고, 친박이 당 대표-원내대표를 모두 가져간다는 역풍에도 휘말릴 수도 있다.
물론 박 대통령을 위시한 친박진영이 전력 투구해 서 의원을 옹립하려 든다면 결과는 예측불허지만 이번 지방선거에 나서는 광역단체장 후보 경선에서 나타난 민심의 흐름은 친박에게 유리한 구도로 가고 있지는 않다. 서 의원의 고민이 곧 친박 전체의 고민이 되고 있다.
대통령만 바라본 친박의 그늘
새누리당 친박계가 고전을 면치 못한 데에는 세월호 참사의 수습 과정에서 무능력을 드러낸 정부 관료 조직과 유사한 측면이 많아서다. 친박 인사들로 구축된 현재의 당 지도부는 청와대의 지시를 받는 데 익숙해 있다. 또 각자 국회의장이나 부의장, 당 대표, 최고위원 등 자기정치를 먼저 생각하고 있어 전체적인 조직의 합심을 이끌어내기가 여의치 않다.
여기에다 친박의 고전에는 해당 인사들이 대부분 자강 능력을 키우려 하기보다는 대통령에 의지하는 정치에 비중을 많이 두었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위기에 처하자 덩달아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대통령과의 관계만 신경을 써 왔지, 정작 대중과의 접촉면은 넓히지 못한 친박 인사들의 '정치력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란 것이다.
2007년 당시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경쟁 과정에서는 박근혜 캠프의 좌장으로 김무성 의원이 중심을 잡았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2인자를 두지 않는 박 대통령의 독특한 리더십으로 친박진영은 3인자나 4인자만 넘쳐나는 형국이 됐다.
그러다 보니 세월호 참사와 지방선거 과정을 겪으며 나타난 위기가 1회성이 아니라 친박의 구조적 문제라는 분석이다. 만일 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조기에 가시화하거나, 지지율이 급격히 추락한다면 친박진영도 함께 침몰할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결국 친박이 기사회생하거나 소멸 단계로 접어드느냐는 지방선거와 전당대회 결과에 달려 있는 셈이다. 시대정신에 부합한 새로운 비전과 명확한 노선을 장착하지 않으면 친박이 의미 있는 정치세력으로 남아있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는 점을 친박진영은 유념해야 한다. 친박의 환골탈태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세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