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 여고생 암매장 사건' 추적'동네 오빠'20대男 3명과 '아는 동생' 여중생 4명이 함께 가출한 여고생 살해열흘도 안돼 추가 살인까지… 사건 관계된 7명 전원 구속

가출 청소년들이 자주 모이는 곳으로 알려진 서울 신촌의 한 공원.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근 경남 김해시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여중생 등 여자 청소년 3명이 20대 남자 3명, 또 다른 여중생 1명과 함께 여고생을 때려 숨지게 한 뒤 암매장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것이다. 이들은 모두 집을 떠나 거리로 나와'가출팸(가출+패밀리)'을 만들어 생활해온 가출청소년이었다. 살인과 폭행, 강도, 성매매까지…. 최근 10대들이 연루된 것으로 파악된 흉악 범죄 중 상당수는 가출팸에 소속된 아이들이 저지른 일이다. 대체 '그들만의 가족'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집단폭행이 살인으로

사건은 지난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해시에 사는 고등학교 1학년 A(15)양은 집을 나선 후 평소 알고 지내던 또래 여중생들과 어울리게 됐다. A양의 부모는 3월 중순쯤 경찰에 "가출한 딸을 찾아달라"고 신고를 냈다. 부모의 애타는 마음을 알았을까. A양은 금새 집에 돌아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집을 떠났다. 부모는 지난 3월 31일 경찰에 다시 가출 신고를 냈다. 그리고 약 한 달 뒤 A양은 싸늘한 시신이 돼 부모 품으로 돌아왔다.

끔찍한 범죄의 실상은 경찰이 A양을 찾아 나서면서 드러났다. 김해중부경찰서에 따르면 A양은 집을 떠난 후 이른바 '가출팸'에서 생활했다. 그곳에는 동갑내기 여중생인 허모(15)양 등 3명과 중학교를 중퇴한 양모(16)양, 동네에서 만난 이모(25)씨 등 20대 남성 3명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김해지역 선후배 사이다. 여느 가출팸에 소속된 아이들이 그렇듯 주로 대구나 대전 시내 모텔 등을 옮겨 다니며 생활했다.

A양과 친구들의 사이가 본격적으로 틀어진 건 A양이'집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서다. 친구들은 A양을 구타하기 시작했고, 폭력의 강도는 점점 세졌다. 그러던 중 지난달 10일 늦은 밤 대구의 한 모텔 인근에 세워 둔 차 안에서 7명의 목소리가 또 높아졌다. 이들은 귀가 의사를 밝힌 A양을 주먹을 때리고 발로 걷어차는 것은 물론 벽돌로 때려 숨지게 만들었다. 범행 발각을 우려한 이씨 등은 숨진 A양을 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다가 지난달 12일 오후 11시쯤 창녕군 대지면 야산에 암매장했다.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건 소문 때문이었다. A양의 행방을 수소문 하던 경찰은 허양의 친구로부터 A양이 숨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경찰은 지난달 30일 허양 등 2명을 붙잡아 범행 일체를 자백 받고 지난 2일 창녕군 야산에서 A양의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관계자는 "A양을 구타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라 아이들의 표현을 빌리면 '그냥 때린 것'"이라며 "어른들의 잣대로 바라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은 사건"이라고 말했다.

열흘도 안돼 또 '살인'

끔찍한 범죄는 A양이 숨진 후에도 이어졌다. A양을 야산에 묻은 후 김해로 돌아갔던 이씨 등 남성 3명과 양양은 지난달 17일 대전으로 건너갔다. 돈이 필요해진 이들은 또 다른 범죄를 계획했다. 양양을 앞세워 조건만남을 한 후'미성년자 성매매'를 미끼로 돈을 뜯어내기로 맘 먹은 것이다. 스마트폰 메신저를 이용해 조건만남 상대자를 물색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달 19일 오전 7시30분쯤, 양양은 대전 유성구의 한 모텔에서 김모(47)씨를 만났다. 10만원을 받고 성관계를 맺기로 갖기로 약속을 한 터였고, 김씨를 협박해 돈을 뜯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양양과 이군 등의 생각처럼 상황이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았다. 김씨는 양양이 '꽃뱀'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고 모텔을 빠져나가려 했다. 주변에서 양양을 기다리던 이씨와 친구들은 김씨를 붙잡아 마구 때리고 주변에 있던 둔기로 머리를 내리쳤다.

수법은 불과 열흘 전 A양을 살해할 당시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김씨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지만, 이씨 등은 김씨를 자신들의 차에 태우고 범행 현장을 벗어났다. 차 안에서도 악행은 이어졌다. 김씨의 지갑을 뒤져 현금과 신용카드 등을 챙긴 후, 그가 차고 있던 시계도 빼앗았다. 다음날인 20일,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김씨가 숨지자 이들은 대전 시내의 한 공원 인근에 차를 통째로 버려두고 달아났다.

끔찍한 범죄는 금새 들통났다. 지난달 21일, 대전둔산경찰서는 이씨와 양양 등을 강도 살인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범행 후에도 '엽기 행각'을 이어갔다. 경찰은 CCTV 분석을 통해 범행 차 주변에서 잠복 중이었는데, 이씨 일당은 김씨에게 빼앗은 금품으로 대포차를 사 시신 유기현장에 다시 나타났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앞서 이들이 범행을 벌인 차도 대포차다. 경찰은 현재 이씨 일당의 추가 혐의가 없는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청소년 범죄 낳는 '가출팸'

최근 잇따르는 10대 강력 범죄에는 가출팸이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집을 나선 아이들은 평소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더라도 가출 관련 카페, 실시간 채팅을 통해 여러 명의 일행을 구해 일종의 '가족'을 이뤄 원룸, 고시원, 모텔 등을 전전하며 생활한다. 이들은 대개 생활비나 유흥비가 부족해지면 물건이나 돈을 훔치거나 성매매를 하는 등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학교를 벗어났지만 가출팸 안에서도 또래폭력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학교폭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전문가들은 가출팸 범죄가 날이 갈수록 대담해진다는 점을 우려한다. 이번 사건 역시 동네 선후배 사이로 만난 남녀 7명이 불과 한 달 만에 저지른 일이다. 청소년 쉼터 관계자는 "가출팸 범죄가 생계형 범죄에서 점점 지능화, 단체화되고 있는데 이는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면서 "빈곤 가정에 대한 정부의 경제적 지원이 선행되고 부모와 자녀 관계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 청소년 쉼터 확대 등 세부 대안이 이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