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조정 진행 '본격화'… 누나에 이어 이복형도 소송 제기정확한 재산 드러나면 규모 확대… 물밑 내부 갈등의 연장선상 분석추가 소송 가능성도 배제 못 해

그간 재벌가에선 재산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내로라할 명문가 중에서 '쩐의 전쟁'을 벌이지 않은 집안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삼성과 현대, 롯데, 한진, 두산, 한화, 금호 등이 그 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재벌가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재벌가의 이런 낯부끄러운 골육상쟁사에 태광가도 이름을 올렸다. 태광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임용 회장의 둘째딸 재훈씨가 남동생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을 상대로 낸 주식인도 청구소송이 최근 본격화되고 있어서다. 이 창업주의 차명유산이 분쟁의 씨앗이다.

문제는 이런 진흙탕 싸움에 이 전 회장의 이복형까지 가세했다는 점이다. 이 전 회장은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현재 간암으로 투병 중인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상속 다툼이 벌어지면서 이 전 회장은 그야말로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는 평가다.

남매간 상속다툼 본격화

태광가 남매간 재산다툼이 본격화됐다.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고(故) 이임용 태광그룹 창업주의 딸 재훈씨와 남동생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양측의 조정이 진행됐다. 재훈씨는 앞서 지난해 12월 이 전 회장을 주식인도 청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재훈씨가 청구한 금액은 78억6,000만원 규모다. 횡령과 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이 전 회장이 2012년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피해액 변제를 통해 구속을 피하려 재훈씨 명의로 빌린 돈에 일부 청구 주식에 따른 배당금을 합한 액수다.

재훈씨는 여기에 태광산업 보통주 10주와 대한화섬ㆍ흥국생명 주식 10주씩, 태광관광개발과 고려저축은행ㆍ서한물산 주식 각 1주씩도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아직 정확한 재산규모가 드러나지 않은 만큼 상징적인 의미로 소송을 진행했다는 설명이다.

파장은 추후 더욱 커질 전망이다. 재훈씨는 선대 회장이 물려준 차명재산이 드러나는 대로 소송규모를 늘리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재훈씨 측이 추정하는 차명 재산 규모는 주식과 무기명 채권 등을 포함해 최대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남매간 상속다툼은 2010년 태광그룹에 대한 검찰의 비자금 수사에서 비롯됐다. 그룹 경영권에서 배제됐던 재훈씨가 이 창업주가 타계 후 남긴 차명재산의 존재를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뒤늦게 알았다며 동생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씨는 소장을 통해 "검찰의 태광그룹 비자금 수사와 이후 재판 과정을 통해 차명 주식, 무기명 채권 등 추가 상속재산이 공개됐다"며 "이 전 회장은 이 재산을 실명화ㆍ현금화해 놓고도 이를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복형도 소송에 가세

당초 재계에선 이들 남매간 상속다툼이 물밑에서 벌어지던 오너가 내부 갈등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불화는 이 전 회장이 2006년 아들 현준군에게 편법으로 지분을 몰아주기 시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수면위로 드러났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말까지 아들 현준군에게 태광그룹 계열사인 티알엠, 티시스, 한국도서보급, 동림관광개발, 티브로드홀딩스 등 5개 회사의 지분을 상당 부분 상속했다. 또 딸 현나양에게도 이미 대물림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런 행보에 위기감을 느낀 오너가의 구성원들은 서로 뭉치기 시작했다. 이번 상속소송은 시작일 뿐이라는 얘기가 태광그룹 안팎에서 나왔다. 불만을 품은 다른 오너가 일원이 추가로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소송전은 확대됐다. 새로 소장을 제출한 건 이 전 회장의 배다른 형으로 알려진 유진씨다. 유진씨는 지난해 12월 '선대회장의 차명재산 중 상속분을 돌려달라'며 이 전 회장과 모친인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다.

유진씨는 과거 법원에서 창업주의 친자로 인정받은 후 상속회복 청구 소송을 제기해 2005년 태광그룹 상속자들로부터 135억원을 받는 화해권고 결정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상속신고에서 누락된 상속재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소송을 제기했다.

유진씨는 태광산업 보통주 5주, 대한화섬 5주, 흥국생명 5주, 태광관광개발·고려저축은행·서한물산 각 1주와 1억1,000만원을 함께 청구했다. 재훈씨와 마찬가지로 향후 전체 차명재산 규모가 드러나는 대로 청구 취지를 확장해 소송가액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이호진-이선애 모자 벼랑 끝

그렇잖아도 이 전 회장과 이 전 상무 모자는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먼저 1,400억원대의 횡령·배임을 저지른 혐의와 관련해 2012년 1심 선고에서 이 전 회장은 징역 4년6월과 벌금 20억원을, 이 전 상무는 징역 4년과 벌금 20억원을 선고받았다.

건강 상태도 위독하다. 이 전 회장은 간암 3기 판정을 받아 3년째 병석에 누워 있는 상황이다. 이 전 상무도 지난해 3월 치매, 뇌졸중, 대동맥류, 허리뼈 골절 등을 앓아 형집행정지를 받았다 지난 3월 다시 구치소에 수감됐다.

지난해 세금 소송도 패소해 458억원의 세금폭탄을 맞았고, '오너 리스크'로 주력 계열사인 태광산업은 2012년 11년 만에 적자로 돌아서는 등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상속다툼까지 벌어지면서 모자는 그야말로 벼랑 끝에 몰렸다는 평가다.



송응철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