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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지 칼럼] 김병지가 말하는 20년전 오늘, 도쿄대첩 ‘실점 순간 싸늘’

9월 28일 오늘은 ‘도쿄대첩’으로 불리는 한일전이 열린 지 딱 20년이 되는 날입니다. 20년 전 그날 저는 생애 첫 한일전을 나섰고 하필 그 경기가 역대 77번의 한일전 중 가장 첫 손가락에 꼽히는 빅게임이 되었죠(대한축구협회 공식 자료에 의하면 성인대표팀 한일전은 77전 40승23무14패로 한국이 우위).

‘도쿄대첩’이 20년이 된 현재, 다시금 그날을 추억해볼까 합니다. 저와 함께 20년전 1997년 9월 28일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에 동승하시죠.

  • 대한축구협회 제공
▶경기전 인산인해…일본의 엄청난 관심과 한국팬들의 응원

19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는 지금과 달리 각 조 1위만 직행티켓을, 2위는 플레이오프 티켓을 가졌습니다. 5개팀 중 한국과 일본, UAE 3파전이었고 일본의 경우 2002 한일월드컵 개최를 확정한 상황에서 사상 초유의 ‘월드컵도 못가보고 개최국으로 월드컵에 가는 나라’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이번만큼은 첫 월드컵 진출을 해야했죠.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미우라 카즈요시나 귀화선수 와그너 로페스, 떠오르던 신예 나카타 히데토시 등이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때라 대표팀에 대한 관심도 컸습니다.

적응훈련을 위해 도쿄 국립경기장을 가보니 경기 전날임에도 일본의 서포터즈 ‘울트라 닛폰’은 티켓을 구하기 위해 텐트를 치고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생애 첫 한일전이었고 차범근 감독님은 선수들에게 ‘선수비 후공격’을 주문하셨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은 원정이었기에 ‘이기면 최상, 비겨도 최악은 아니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경기 초반 일본의 맹공이 예상됐기에 맞서기보다 후반을 노리는 것을 생각하신 듯합니다.

정신적 부분에 대한 강조는 특별히 없었습니다. ‘가위바위보도 일본에겐 져선 안된다’는 말이 있듯 한일전을 강조하는 한국의 분위기가 선수들 모두에게 내재됐습니다.

지금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은 것은 도쿄 국립경기장에 들어갔을 때 5만6000여 관중들은 모두 일본의 파란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딱 원정석 일부만 빨간색이더군요. 붉은악마와 교민들이었습니다.

정말 그분들도 경기장의 압도적 분위기와 성난 일본팬들 사이에서 한국을 응원하셨을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떨리셨을까요. 저 역시 긴장되던 순간 그 망망대해 같은 파란 관중 속에 빨간 점을 보며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릅니다.

▶싸늘했던 야마구치의 칩슛…용병술+전술의 승리

경기가 시작되고 일본의 압도적 응원과 열기를 감당하기 쉽지 않았고 제 기량을 발휘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힘겹게 0-0을 유지하던 상황에서 후반 22분 일이 터졌습니다.

상대의 패스실수를 막은 후 모두가 공격 전환을 위해 자세를 바꿨을 때 공을 뺏겼죠. 축구를 할 때 가장 위험한 순간이 바로 역습을 하려던 찰나에 공을 빼앗기면 모두가 역동작이 걸리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수비 전환이 되지 않습니다. 엇나간 그때 일본의 야마구치가 개인기로 한국 수비를 젖힌 후 단숨에 문전까지 와서 제 앞에서 칩슛을 시도했습니다.

K리그와 국가대표를 포함해 적어도 800경기를 뛰었지만 여전히 그때가 생생합니다. 그런 슈팅은 처음 봤습니다. 타이밍상 각도를 좁혀야하는 상황이라 나오긴 했지만 야마구치의 칩슛은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골키퍼들은 슈팅이 되는 찰나에 ‘이건 막겠다’, ‘살았다’ 혹은 ‘큰일났다’, ‘죽었다’와 같은 감을 느끼는데 그때는 정말 `쎄'했습니다. 제가 튀어나오는 타이밍과 슈팅 타이밍이 엇갈렸고 순간적으로 싸늘했던 기분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그렇게 타이밍을 놓친 칩슛이 실점이 됐고 열도는 환호로, 한반도는 침울해졌죠. 문제는 다음이었습니다. 이제 추가시간을 포함해도 25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70여분간 넣지 못했던 골을 넣을 수 있느냐였죠.

하지만 지금 떠올려보면 그 실점이 한국에게는 발화점이 된 것 같습니다. 축구라는게 왜그런지 모르겠지만 이기고 있으면 지키고 싶고, 지고 있으면 힘들어도 이기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일본은 이기고 있으니 어딘가 지키려는 마음이 들었고 실제로 공격수를 빼고 수비수를 넣었죠.

반면 한국은 ‘절대 져서는 안돼’라는 마음을 가진 상황에서 질 상황에 놓이자 0-1로 지나 0-2, 0-3으로 지나 똑같이 지는거라 생각해 공격적으로 변화했죠.

차범근 감독님도 그 순간을 잘 읽어 서정원, 김대의를 투입했고 결국 서정원 형이 종료 7분을 남기고 이기형의 크로스, 최용수의 헤딩을 받아 헤딩골로 극적인 동점을 만들었죠.

차 감독님 용병술의 승리였죠.

이후에도 한국 수비는 공격수가 한명 줄었으니 홍명보, 이민성 등 수비수들이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했고 결국 이민성이 후반 41분 지금도 회자되고, 영원히 회자될 왼발 중거리 슈팅으로 도쿄 국립경기장을 침묵으로 바꿔놓았죠. 용병술과 전술의 승리였습니다.

나중에 알게됐지만 당시 송재익 캐스터의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라는 명언은 정말 통쾌했습니다. ‘인생골’이라는 말이 유행인데 이민성의 그 중거리슛이야말로 영원히 회자될 인생골이 아닐까요.

▶경기 후 자중지란에 빠진 일본…지금은 웃을 수 있는 추억의 20년전

경기 후 샤워하고 경기장을 빠져나오는데 정말 분위기가 살벌했습니다. 성난 일본 팬들은 자신들의 최고 스타였던 미우라에게도 고성과 욕설을 퍼붓고 감독과 선수단을 향해 싸움을 걸기도 했습니다. 아직까지도 그 무시무시했던 경기 후 일본팬들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야말로 자중지란(自中之亂)이었습니다.

도쿄대첩으로 한국대표팀은 3승으로 월드컵 진출의 7부 능선을 넘어섰고 실제로 쉽지 않았던 아시아 예선을 1위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선수로서 첫 한일전이었는데 그 경기가 역사에 남는 경기가 됐고 일본의 수도 도쿄의 심장부에서 정말 많은 상대 관중 앞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는 것은 여전히 뿌듯합니다. 당시 단독중계를 했던 MBC는 재방에 삼방까지 이 경기를 다시 틀었고 시청률은 무려 56,9%였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상상도 하기 힘든 관심이죠.

개인적으로 수많은 경기를 뛰었지만 모든 경기를 기억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도쿄대첩의 경우 제 인생 베스트10 경기를 뽑는다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경기가 아닐까요. 영원히 회자되는 경기에 당사자로 있었다는 것만으로 역사에 발자취를 남긴 기분입니다.

벌써 20년이 됐습니다. 1997년 9월 28일을 떠올리면 그때는 엄청난 긴장감과 사생결단의 마음을 가졌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땐 그랬지’하며 웃게 됩니다. 추억이 되어버린 명경기, 하지만 죽기 전까지 잊기 힘든 경기가 바로 ‘도쿄대첩’입니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김병지 칼럼 : K리그 최다출전자(706경기)이자 한국 축구의 전설인 김병지 前선수는 매주말 스포츠한국을 통해 칼럼을 연재합니다. 김병지 칼럼니스트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를 댓글이나 스포츠한국 SNS를 통해 남겨주시면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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