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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와 남북통일을 바라보는 韓-日 대학생의 '착한' 시선

한일 대학생, 항일유적지ㆍ백두산 돌아봐
안중근 의사 법정 및 사형장소 복원…“세계평화 교리와 동양평화론 접점 가져”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 사람이 먼저 하나가 되야”
한-일 학생들 “생각을 공유하며 가까워졌어요”
“남북통일, 동북아 평화에 기여하고 싶어요”


한일관계는 나날이 경색되고 있지만 민간차원에선 의미 있는 교류활동이 최근 이뤄졌다. 천주평화연합(UPF), 일본평화통일연합, 천주평화사관학교(UPA)가 공동으로 주최한 ‘한일 청년지도자 평화통일기원 대장정’이 그것이다. 한일 양국의 대학생 청년 31명이 지난 6월 28일부터 7월 3일까지 5박 6일간 중국의 항일유적과 백두산 등지를 답사하며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소통’의 장을 가졌다.

답사에 참여한 한국과 일본의 학생들은 대부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의 종교적 전통 안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들이다. 가족과 순결을 강조하는 통일교 교리에 따라 술, 담배를 일절 하지 않는다. 일본 측 학생들이 대부분 중급 이상의 한국어를 구사하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이들 중 몇몇은 합동결혼식을 통해 탄생한 한일가정 2세들로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일본인의 장점과 열정적인 한국인의 품성을 동시에 물려받았다. 통일교는 혼인관계로 맺어지는 것이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고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이렇게 맺어진 한일가정이 현재까지 1만 가정, 약 5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 젊은이들이 미래 한국과 일본의 우호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임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전쟁과 식민지배의 상처를 드러낸 뤼순감옥

답사팀은 6월 28일 인천을 출발해 다음날 오전 중국 다롄항에 도착했다. 다롄은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러시아로부터 빼앗아 점령한 도시로, 서양풍 건물과 현대적 건물의 조화가 돋보이는 깨끗한 도시였다. 답사팀은 현재는 식당으로 쓰이고 있는 관동군 헌병대 건물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뤼순감옥으로 이동했다. 해당 건물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체포돼 조사를 받았던 곳이라고 한다.

중국정부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뤼순감옥 관람을 불과 5년 전에 허용했다. 그만큼 일본 제국주의가 중국에게 준 상처가 큰 장소다. 1907년부터 일본의 패전시기까지 일제에 저항한 수많은 독립운동가, 파업주동자가 이곳에서 노역, 구타, 고문에 시달렸다. 중일전쟁 말기엔 소련군의 진격을 앞두고 ‘대량학살’이 일어나기도 했다. 특히 뤼순감옥은 안중근, 이회영, 신채호가 순국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답사팀은 안의사가 순국한 곳에서 헌화와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청주교대 이완규(20) 학생은 “중국인도 하지 못한 일을 한국인이 했다는 것에 자긍심을 느꼈다”며 “감옥에서 간수에게조차도 지극한 존경을 받았고 재판 당시에도 세계가 주목한 인물로 알고 있다. 죽기 직전까지 조국을 염려하는 헌신이 와 닿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이곳에서 700여명의 수감자가 처형당했다는 것을 듣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수많은 희생자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지난 1992년 출범한 여순순국선열기념재단(이사장 홍일식)은 여순감옥 내 안의사가 순국한 곳에 동상과 단독 전시관을 설치하고 한글안내판을 부착하는 등 안의사를 기리는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최근엔 안의사가 재판을 받았던 여순관동법원구지를 사들여 법정을 복원하기도 했다. 안의사의 동양평화론은 ‘세계평화를 일으키자’는 통일교의 교리와 공통점이 있다. 안의사가 편협한 국가주의 논리를 넘어선 선지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선문대 동북아학과에 재학 중인 모리카와 태창(21)씨는 “역사적 인물이 이곳에서 인생을 마쳤다는 것이 기이했다. 안의사에 대해 초등학교 때 배웠기 때문에 더 마음에 와 닿았다”며 “앞으로 남북통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모리카와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2세로, 일본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했으나 남북통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는 꿈을 갖고 한국에 와서 선문대 3학년에 편입했다.

북한식당서 이뤄진 작은 통일

답사팀이 다롄을 떠나 다음으로 향한 곳은 단둥시의 평양성양식당. 이곳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북한미녀들과 함께 통일열차를 만들고 ‘우리 다시 만나요’를 불렀다. 이곳 직원들은 답사팀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다했고 음식 맛도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다.

3일차엔 백두산에 올랐다. 등정 중 날씨가 오락가락 하면서 소나기와 우박을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고생 끝에 1,400여개의 계단을 거쳐 천지에 오르자, 거짓말처럼 날씨가 개이면서 맑은 천지가 당당한 모습을 드러냈다. 6일간 답사팀을 안내한 재북화교 출신 가이드인 정영숙(38)씨는 “맑은 천지를 볼 수 있는 핫률은 20% 이하”라며 “우박이 떨어진 것도 10년만인 것 같다”고 했다.

백두산에서 내려와 퉁화로 이동하며 고구려 첫 도읍지인 졸본으로 추정되는 ‘오녀산성’을 차창 밖으로 조망했다. 독립운동기념 관련 단체나 학생들 외엔 잘 찾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주몽 황궁터, 샘물, 쌀창고터, 온돌구조 등이 현재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4일차엔 단둥시에서 김좌진 장군의 증손자인 배우 송일국씨와 미팅을 가졌다. 송일국씨는 답사팀과 사진촬영을 하고 학생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했다. 송일국씨는 행사 후 <주간한국>과 만나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대학생에게 역사를 바로 알게 하자는 취지로 매년 ‘청산리역사대장정’ 행사를 해오고 있다”며 “신인 때는 스케줄을 뺄 수 없어서 몇 차례 참석 못한 적도 있지만 6회 때부터 빼놓지 않고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에선 매년 대학생을 대상으로 고구려ㆍ항일 유적지와 백두산을 10박 11일 일정으로 돌아보고 있다. 그는 학생들과 똑같이 2등실을 쓰는 등 어떠한 특별대우도 사양한다고 한다.

남북통일에 기여하고파

답사팀은 이날 압록강 단교를 찾아 맞은편 신의주를 본 후, 단교에서 일보과까지 약 20㎞구간을 자전거로 달리는 ‘2014 피스 바이크’ 행사를 가졌다. 행사 후 근처 의주로 이동, 북한영토인 의주와 방산마을 사이의 좁은 강을 쾌속정을 타고 접근했다. 이곳을 찾은 한국인들은 종종 모래와 지폐를 채워 넣은 병이나 담배를 던진다. 북한주민들이 주워 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해안가엔 감옥과 초소가 자리 잡았는데 종종 여군들의 모습도 보인다고 한다.

근처엔 중국인을 태운 유람선이 한가로이 떠다녔다. 북한주민의 일상이 한낱 호기심 거리가 된 것. 군인들이 총을 손질하고 민간인이 빨래를 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곳에 거주하는 민간인은 대부분 군인 가족으로 대우가 좋기 때문에 국경지역임에도 탈북을 시도하지 않는다고 한다. 답사팀은 가이드로부터 민간인은 촬영을 해도 좋지만 군인은 찍어선 안 된다는 주의를 듣기도 했다.

1997년부터 2008년까지 육상자위대에서 복무했던 테라마에 카즈히코(33)씨는 “보트를 타고 북한주민과 직접 대면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며 “손을 흔들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고 했다. 테라마에씨는 열다섯 살에 군사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무력만으로는 평화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는 국제법으로 나라 간의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법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법 역시 나라 간의 입장 차이를 좁힐 수 없다는 한계를 느꼈다. 마지막으로 만난 통일교 사상이 그에게 해결의 빛을 던져줬다. 그는 통일교에 입교해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모든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야마모토 신노스케(29)씨는 오사카에서 민단이 운영하는 민족학교를 졸업했다. 지난해 한국에 들어와 천주평화사관학교 신학과(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졸업 후 목회자가 돼 해외선교에 헌신하고 싶다고 했다.

야마모토씨는 “역사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의 관점을 알아야 역사의 진실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젠 자기 나라만 생각하면 되는 시대가 아니다. 젊은이들이 모여 다양한 관점을 공유해야 남북통일도 준비할 수 있다”면서 “남과 북이 왜 통일을 할 수 없는지 늘 궁금했는데 교회에 와서 공부를 하면서 조금씩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천주평화사관학교 이복진(28) 학생 역시 “안중근, 신채호, 이회영이 없었다면 우리도 없었을 것”이라면서 “미래의 사람에게 값진 유산을 줄 수 있는 과거의 사람이 돼야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생겼다”고 소감을 전했다.

통일운동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그동안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측은 남북통일과 관련한 민간교류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1991년 고 문선명 총재가 방북해 김일성 주석을 회견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1991년부터 남북청년학생세미나를 러시아, 베이징 등지에서 다섯 차례 개최했고 리틀엔젤스 평양 공연, 평양예술단 서울 공연 등을 성사시켰다. 평화자동차, 보통강호텔 건설 등 다양한 합작사업을 주도했고, 2000년대 초엔 3,000명에 달하는 대규모 관광단을 평양, 정주, 묘향산 등지에 보내기도 했다. 한일 학생이 함께한 이번 답사여행도 ‘피스바이크’ 압록강 종주와 백두산 등정 등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퍼포먼스가 포함됐다.

이현영 천주평화연합 사무총장은 폐회식에서 “이번 여정의 과제는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곳에 가서 과거를 보는 ‘거울’을 갖는 것이었다”며 “사물의 어려운 면만 보기보다 가능성과 해법을 보고 실천하는 것이 리더십이다. 학생들이 통일운동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 책임을 갖고 미래를 준비하는 인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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