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관리인' 소문… '내연관계' 공방도

김혜경, 20대부터 구원파내 ‘통용파’ 활동
“유병언 사위 오갑렬 대사 모친 소개로 만나”
“김씨는 유 전 회장 ‘자금관리인’” 소문
김씨ㆍ구원파,‘내연관계’의혹에 법적 대응
김씨 부친 ‘정관계 로비 창구’는 사실과 달라


김혜경(52) 한국제약 대표의 국내 송환시기를 놓고 다양한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김씨가 국내로 들어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비자금 축적과정에 얼마나 관여했고, 그 실체와 규모에 대해 어디까지 입을 열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씨가 비자금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김씨의 부모 및 형제(1남 4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예측이 나오고 있다.

현재 검찰은 김씨가 수십 개의 차명계좌를 통해 유 전 회장의 것으로 추정되는 자금을 국내외로 송금한 사실을 일부 확인한 상태다. 미 국토안보수사국(HSI)은 김씨가 23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한국 검찰에 의해 지명수배 됐다고 발표했다. 생전의 유 전 회장이 “돈은 모두 김혜경에게 입금하라”고 지시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검찰 조사 여하에 따라 김씨의 횡령 및 배임액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여기에 김씨 명의의 재산이 수천 억원을 헤아린다는 주장까지 등장하면서 김씨와 유 전 회장의 관계에 대한 의문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30년간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와 얽히면서 쌓아온 김씨의 평범치 않은 이력과 가족의 역할, 자녀들을 둘러싼 의혹 등을 짚어봤다.

김혜경씨는 전남 신안 출신으로, 서울 모 여대 약대 3학년에 재학 당시인 1985년 구원파에 입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교 당시부터 김씨는 권신찬 목사의 둘째 며느리인 송재화, 이청 선장, 이숙자씨 등과 더불어 통용파 그룹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통용파란 송씨가 광주 출신 신도들과 함께 1981년 만든 것으로,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이에게 필요한 만큼 나눠 주었다”라는 성경 속 사도행전의 구절을 현실생활에서 실험하기 위해 시작된 그룹이었다.

그러나 통용파는 점차 유병언 개인을 신격화하고 떠받들면서 유 전 회장에게 막대한 자금을 끌어다주는 ‘사채모집책’처럼 변질됐다는 게 구원파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특히 이들이 지향한 ‘집단 공동생활’이 가정을 파탄시킨다고 하여 구원파 창시자인 권신찬 목사가 이들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혜경씨가 20대 중반 구원파에 입교해 통용파 내에서 공동생활을 한 1980년대 후반부터 유 전 회장의 비서가 된 1995년까지의 행적은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구원파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씨는 각지에서 신도들의 헌금과 사채를 모집해 교회로 전달하는 일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엔 전 유 회장을 개인적으로 알았던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김씨의 부친 김모(79)씨는 최근 <채널에이>와의 인터뷰에서 “딸이 UCLA 유학 시절 연애를 해서 아이들을 낳았다”며 “아이들 아빠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주장한 바 있다. 부친의 주장대로라면 김씨는 199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공부를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다 1995년 김씨의 인생에서 특별한(?) 전기가 마련됐다. 유 전 회장의 한 측근은 “오갑렬(60) 전 체코대사의 모친 기모씨가 김씨를 유 전 회장에게 소개했다”고 전했다. 구원파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김씨는 세모그룹 계열사인 삼우트레이딩에서 건강식품을 개발하는 연구원으로 1년째 근무 중이었다. 유 전 회장은 상습 사기로 4년형을 마치고 막 출소했을 시점이었다. 때마침 유 전 회장의 자금 담당 비서인 송재화씨가 출소 후 통용파의 상당수를 이끌고 제주도로 내려간 직후였다. 이렇게 공석이 된 비서 자리에 김씨가 발탁돼 송씨의 빈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김씨의 아이를 둘러싼 의혹을 제기하면서 구원파와 법적 다툼으로 비화됐다. 재미언론 <선데이저널>과 <신동아>는 입수한 ‘출생신고서’를 보도하면서 1998년 미국 LA에서 김씨의 첫째 아들이, 2년 후인 2000년 둘째 딸이 각각 태어났다며 생부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김씨의 부친은 앞서 아이들이 미국 유학 시절 태어났다고 주장했으나 아이들이 각각 16세, 14세인 것으로 확인됐고, 당시는 김씨가 국내에 들어와 유 전 회장의 비서로 일한 시기라는 복수의 증언이 있어 부친의 발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게 보도의 핵심이다.

그러나 김씨 측과 구원파는 현재 세간에 불거진 내연관계 및 혼외자 의혹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김씨는 구원파 신도인 공모씨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지난 5월 16일 21개 언론사와 25명의 기자, 패널들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피고소인 중 한 명인 이청 전 세모유람선 선장이 고소인을 먼저 조사하지 않고 피고소인의 진술을 받은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자 현재 조사는 중단 상태에 있다.

한편 김씨의 부친이 한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등 정계 진출을 위해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친 것이 드러나면서 이목이 집중된 바 있다. 그의 부친은 지난 13대(1988), 14대(1992) 국회의원 선거에서 각각 민정당과 민자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한화갑 후보에게 패해 낙선했다. 부친은 건국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농협 고위 임원으로 활동했으며 민정당 국책자문위원 및 신안군위원장, 민자당 농림수산정책위원 등을 지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선 유 전 회장이 김씨 부친을 ‘정관계 로비 창구’로 이용했을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자가 직접 확인한 바에 따르면 김씨를 제외한 가족과 형제들은 구원파 신도가 아니며 오랜 ‘천주교’ 집안이다. 또 이들은 구원파 내 교회 혹은 계열사에서 어떤 직위도 갖고 있지 않다.

유 전 회장 일가와 가까이 지낸 전 구원파 신도는 “김씨 가족을 교회에서 한 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며 “김씨가 85년에 입교했고 95년부터 비서를 시작했는데 당시부터 부모가 재산을 관리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교회와 아무 관계없는 나이 많은 사람을 통해서 왜 로비를 하겠나? 이미 80년대 후반부터 로비를 담당해온 사람들이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가 구원파에서 자금관리 등의 중책을 맡고 주도권을 잡은 2000년대에 들어서라면 김씨 가족이 구원파 운영에 관여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으나 당시엔 이미 김씨 부친이 70대의 고령이라는 점에서 쟁쟁한 구원파 내 전문가 그룹을 제치고 그가 정관계 로비에 관여했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친을 비롯한 형제들이 차명재산의 규모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들은 속속 발견되고 있다. 최근 미국 버지니아에 위치한 110만 달러 상당의 부동산을 언니 명의로 은닉한 것이 밝혀졌다. 또 유 전 회장의 도주과정에서 김씨 가족과 친인척 명의로 된 비밀주택이 서울 강남에서 무더기로 발견되기도 했다. 해당 부동산을 모두 합산하면 수백 억대를 호가한다.

앞서의 전 구원파 인사는 김씨에 대해 “구원파의 돈을 움직인 주인공”이라고 평한 뒤 “비자금의 실체와 규모,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숨겨놨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아는 금고 주인”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다음달 초 송환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불법체류자 추방 절차가 범죄인 인도절차와 달리 복잡하지 않고, 더 버텨봐야 양형에 불리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녀가 물밑에서 검찰과 접촉해왔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구원파 비밀의 열쇠를 쥔 김씨가 앞으로 어떻게 사정당국과 구원파에 대응할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신상미기자 frontpage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