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비리 만연… 바른 말 하면 험한 꼴?…고발자에 불이익ㆍ압박 등 가해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방부 전경. 주간한국 자료사진
"납품비리 검찰 수사 양심선언자 있었기에 가능"
단팥빵·GS마트 고가판매ㆍ간부체육복 문제도 제기
고발 후 감찰단 수사와 징계, 고소ㆍ고발 이어져
좌천성 인사 후에도 징계 촉구하는 공문 유포돼
보복성 압박 의혹… "양심선언자 나오지 않을 것"

그동안 숱한 의혹을 양산하던 군부대 매점(PX) 납품 비리 의혹이 최근 검찰 수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납품업체 선정 과정에서 뒷돈을 주고받거나 입찰 제도를 악용해 납품비리를 저지른 국군복지단 및 유통업체 관계자들이 무더기로 덜미를 잡혔다.

이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다. 폐쇄적인 분위기와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군 특성상 내부의 문제가 밖으로 새어 나오는 일이 드물었던 까닭에서다. 이번 수사가 가능했던 건 전적으로 군 내부자의 양심선언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군 안팎에선 더 이상의 양심선언자는 나오지 않으리란 시선이 팽배하다. 비리를 외부에 알린 당사자가 군 전체의 모진 탄압을 받고 있어서다. 잘못 입을 열었다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 부조리에 눈을 떼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PX 납품 비리 사실로 드러나

검찰은 올해 초부터 군 PX 납품업체 선정 비리 의혹에 대한 내사를 벌여왔다. 그리고 지난 7월 납품업체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했다. 납품업체들이 할인율을 높여 낙찰을 받기 위해 POS영수증 가격을 조작했는지 여부가 수사 대상이었다.

군내 PX를 관장하는 국군복지단은 2012년부터 신규 물품 선정시 할인율을 점수로 환산해 높은 점수를 받은 품목이 낙찰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때 업체들이 시중가에 대한 근거로 POS영수증 가격을 제출했다. POS는 마트 등에서 사용되는 결제 단말기다.

문제는 납품업체들이 제시한 POS영수증 가격이 시중가보다 많게는 10배까지 부풀려졌다는 데 있다. 높은 할인율을 제시, 낙찰을 받기 위해 판매처와 모의해 영수증 가격을 위조했다는 의심이 나오는 대목이다.

앞서 <주간한국>은 '2013년 PX 신규 납품 리스트'를 입수해 공개한 바 있다. 리스트에 따르면 업체들은 물품 선정에 입찰하면서 판매가격을 높인 뒤 최고 80%의 할인율을 제시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시중가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되는 품목도 적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는 의혹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 수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검찰은 자사 제품의 2013년도 신규 납품 품목 선정을 위해 판매가격을 부풀린 뒤 높은 할인율을 적용한 것처럼 속이고 위조된 영수증을 제출한 혐의로 유통업체 관계자 7명을 기소했다.

검찰은 일명 '총판업체'라 불리는 군납 물류 대행업체 2곳으로부터 입찰 관련 정보를 사전에 전해주는 등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수천만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국군복지단 계약직 직원이자 예비역 중령인 류모씨를 구속기소했다.

류씨에게 돈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군납 대행업체 대표이사 강모 대표 등 3명도 기소됐다.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던 김광석(소장) 전 국군복지단장과 김원태(중령) 국군복지단 재정과장 등 2명은 국방부 검찰단으로 사건이 이송됐다.

이런 편법을 통해 PX 납품을 하게 된 업체들은 상당한 이득을 누렸다. 반면 가격 위조 등 왜곡된 입찰의 피해는 장병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그러잖아도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고가의 상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어서다.

이뿐만이 아니다. 납품돼 온 제품 상당수가 시중에서 잘 판매되지 않는 비인기 품목이라는 점도 문제다. 정작 군 장병들이 선호하는 제품은 군대 매점에서 찾기가 어려웠던 이유다. 결국 장병들은 그동안 잘 팔리지 않는 제품을 웃돈 주고 구매해온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국군복지단에서 납품 희망업체들의 제출하는 서류가 제대로 확인되고 있지 않고 시장 가격조사도 철저하게 이뤄지지 않아 오히려 입찰 제도가 악용되고 있다"며 "납품 업체 선정 과정에서 철저한 검증이 이뤄지도록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밖에 각종 비리ㆍ부조리 '수두룩'

이번 검찰 수사는 국군복지단 내부고발에서 촉발됐다. 앞서 지난 2월 전 국군복지단 사업관리처장이던 A대령이 2012년 국군복지단의 신규 납품 품목 선정과정에서 공문서를 위조하고 행사한 혐의로 국내 유명 식품업체 76개를 고발한 게 단초가 됐다.

A대령이 제기한 문제는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군내 숱한 비리와 부조리 의혹을 외부로 알렸다. 국민권익위원회와 감사원에 접수된 건만 어림잡아 30건에 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육군훈련소 단팥빵 사건'이다.

단초는 국군복지단이 800원의 단가를 제시한 단팥빵 납품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면서다. 이로 인해 기존에 300원이던 육군훈련소 단팥빵의 납품가가 대폭 올라갔다. 국군복지단으로부터 빵을 공급받는 육군훈련소는 5억4,000만원의 인상분이 발생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국군복지단 직원이 업체 선정에 부당하게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육군 훈련소는 지난해 당초 훈련병들이 빵을 일정기관 보관한 뒤에 먹다 탈이 난다는 이유로 상하기 쉬운 단팥빵을 증식용 빵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구한 바 있다.

국군복지단은 훈련소의 요구를 받아들여 '계절에 따라 내용물(단팥 등)로 인해 변질 우려가 없는 품목'으로 입찰자격을 제한했다. 하지만 문제의 직원은 이런 입찰자격을 임의로 '유효기간 5일 이내'로 수정해 단팥빵이 입찰 가능하도록 조정했다.

이 직원은 또 맛(40점)과 중량(40점), 기타(20점)로 이뤄진 평가 항목으로 인해 중량이 적은 업체 제품이 낮은 점수를 받을 위기에 처하게 되자 상부에 보고 없이 무단으로 평가 방식을 변경하기도 했다. 업체와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셈이다.

이와 관련해 군 내부에서 한달간 고발이 이어졌다. 그러나 국방부 검찰단과 조사본부, 감사관실은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해 등 은폐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군 당국은 지난해 초 국민권익위원회 고발이 이어지고 나서야 이 사건을 검찰단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A대령은 이외에도 많은 문제를 고발했다. 그러나 아직 언론을 통해 알려지지 않고, 군 당국이나 사정기관의 사정이 이뤄지지 않는 사건이 상당수다. 국군복지단의 해군매점 민간위탁 업체인 GS마트의 고가판매 은폐 및 유착 의혹이 바로 이런 경우다.

A대령이 군 내 GS마트에서 지나치게 비싸게 판매되는 제품들을 발견하고 국군복지단 관계자에 협의할 것을 요청했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이를 두고 국군복지단 안팎에서는 담당자들과 업체 간 유착 의혹이 제기됐다.

비슷한 예로 육군 간부체육복 무단 수정계약 추진 의혹도 있다. 납품업체의 부당한 환급 요청을 검토 없이 받아들여 군에 재정적 손실을 불러왔다. 실무자들은 해당 요청에 대해 불가 입장을 내렸지만 '윗선'은 이를 무시하고 환급을 강행하면서 유착 의혹이 일었다.

이밖에 ▦진해덕산상가 GS마트 무단 수의선정 설치 ▦체력단련장 본부장 선발 ▦나라사랑카드 현금인출서비스 재계약 ▦서귀포호텔 리모델링 공사 ▦마트 광고사업 추진 ▦하나은행 기부금품 임의 처리 ▦부대운영비 골프라운딩 시 전용 등의 문제도 사실상 표류 중이다.

군 전체가 양심선언자 전방위 압박

A대령의 이런 움직임에 군 안팎에선 '조용한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이권이 개입되지 않은 오롯이 '군 장병들을 위한' 행보여서 더욱 그랬다. 그러나 양심선언 이후 정작 A대령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A대령을 축출하기 위한 전방위적 압박이 들어와서다.

먼저 군 내 검찰인 감찰단이 움직였다. 뇌물수수 등 8건의 혐의에 대해 수사를 진행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초 무혐의처분을 받았다. 다만 8건 가운데 '복종의무위반'으로 징계를 내려 감봉 3개월 처분 받아 법원에 징계처분취소소송을 제기했다.

김 전 복지단장의 고소ㆍ고발도 이어졌다. 감사관실에 내부고발한 내용에 대해 무고죄와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데 따른 것이다. 국방부 내에서 공모하지 않는 한은 고소의 근거인 A대령의 진술서 등을 확인할 수 없다는 A대령 주변인물의 전언이다.

국군복지단도 두고 보지 않았다. 복지단 측은 'A대령이 전문형 직위 근무를 희망한다'는 사유로 A대령의 전출을 건의했다. 그러나 A대령은 전보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표현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싹을 자르기 위해 허위로 공문서를 꾸민 셈이다.

국방부도 국군복지단에 힘을 실었다. A대령이 국방부에 항의하자 "복지단이 요청한 것이므로 국방부는 조치만 하면 된다"며 "항의하는 내용은 내부문제이므로 복지단 자체에서 해결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때문에 A대령은 사실상 좌천당했다.

전보 이후에도 압박은 멈추지 않았다. 육군사관학교를 포함한 국방부 및 육군 관련 부서에 A대령의 조사와 처벌을 촉구하는 공문이 유포됐다. 군인복무규율상 보도자료 제공 및 인터뷰는 승인을 받아야 함에도 승인을 받지 않고 행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끊임없는 은폐ㆍ축소 의혹 왜?

군의 각종 비리와 부조리 은폐 축소 의혹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비근한 예가 지난 8월 논란이 된 일명 '윤 일병 사건'이다. 윤 일병이 집단 구타를 당하고 사망했다는 사실을 군 수뇌부가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조직적인 은폐에 나섰다는 비판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큰아들 남모 상병의 후임병 강제추행 및 폭행 사건 때와 지난 6월 일반전초(GOP)에서 벌어진 '임 병장 총기난사 사건'도 군의 조직적 축소은폐와 증거인멸 시도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군의 사고 축소ㆍ은폐 관행은 신현돈 전 1군 사령관의 근무지 이탈과 음주 물의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또 앞서 북한군 병사가 동부전선 철책을 뚫고 GOP 내무반 문을 두드리며 귀순 의사를 밝힌 '노크 귀순' 때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각종 문제가 벌어질 때마다 은폐 내지는 축소라는 단어가 마치 수식어처럼 따라 붙었다. 사건의 은폐와 축소는 그야말로 군의 '고질병'인 셈이다. 그렇다면 군이 이처럼 문제 덮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는 까닭은 뭘까.

군 안팎에선 각종 비리와 부조리, 사건, 사고 등을 진급의 마이너스 요소로 인식해 축소ㆍ은폐하려는 문화가 우리 군에 만연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에 군 특유의 폐쇄적인 분위기나 상명하복의 위계질서 등은 이런 문화가 자리 잡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이런 문화는 군을 불신하게 만드는 치부다. 따라서 세간에선 이런 악습을 개선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촉구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A대령의 사례를 보면 군의 '고질병'의 병세는 한층 깊어지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군 내부 관계자는 "A대령이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 누가 양심 고발을 할 수 있겠느냐"며 "양심선언자를 보호하는 한편, 각종 비리를 저지르거나 이를 축소·은폐하려는 인물에 대해선 불명예전역 등의 강력한 조치로 엄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응철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