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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8) 알코올 중독은 의지 탓? 뇌세포 파괴된 병

알코올 중독, 사회·문화적 영향 더불어 의학적으로도 유전
술 센 사람, 간이 건강한 것은 아냐
한 잔의 술은 건강에 이롭다? 한국인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광고대행사에 다니는 박수현(31·가명) 씨는 대학 신입생 때부터 직장 생활을 하는 지금까지 술을 일체 입에 대지 않고 있다. 술로 인해 세상을 떠난 아버지처럼 혹시 본인도 알코올 중독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은 맥주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느냐며 술을 권하곤 했지만 그때마다 한사코 거절했다. 이에 대해 박 씨는 알코올 중독이 유전된다는 말을 익히 들어왔기에 술이 두렵고, 그래서 단 한 잔도 마시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이런 말을 하며 술잔을 거절할 때마다 몇몇 사람들은 "알코올 중독이 대물림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언성을 높여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박 씨 이야기를 비롯해 그간 우리가 알코올 중독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이나 잘못된 상식에 대해 알아보자.

■ (1) 알코올 중독이 유전된다는 말, 와전된 것일까?

전문가들은 알코올 중독이 사회·문화적인 영향을 받는 것과 더불어 의학적으로도 유전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실제 전체 알코올 중독자 중에서 60% 정도가 이전에 가족 구성원의 알코올 중독 문제를 겪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사진=이민형 기자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부모가 알코올 중독인 경우 자녀는 정상인 부모의 자녀에 비해 알코올 중독 발병 확률이 3배 이상"이라며 "사람이 술을 마실 때 얼마나 쾌감을 느끼는지, 또는 불쾌감을 느끼는지가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알코올 중독은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병하는데, 그 중 몇 가지가 유전된다고 한다.

이계성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알코올을 분해할 수 있는 대사 능력이나 주취 상태에서 도파민 분비로 느낄 수 있는 쾌감의 정도, 충동을 조절하고 이성적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 기능 등이 알코올 중독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적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요인들은 선천적으로 유전적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후천적으로 술을 많이 마시면서 악화할 수도 있다. 이계성 교수는 이에 대해 "술을 많이 마실수록 알코올 분해 능력은 좋아지고 뇌의 기능은 떨어져 충동적 성격이나 술로 느끼는 쾌감이 커지는 식으로 변하기 때문에 사실상 알코올 자체가 가진 중독성이 가장 크다"고 설명했다.

■ (2) 약간의 음주에도 쉽게 얼굴 빨개지는 사람, 알코올 중독이 될 가능성 전혀 없나?

술을 마시고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은 몸에 술을 분해하는 효소가 적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속에 알코올이 들어오면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독성 물질로 바뀌는데 이를 간의 특정 효소가 비독성물질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이 효소의 양은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효소가 많으면 술을 많이 마셔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지만 양이 부족하면 술을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며 두통이나 구토 등의 증상을 느끼게 된다. 이 효소의 양이 전혀 없는 사람도 있으며, 이런 사람에게 술은 완전히 독이 된다. 아무래도 효소의 양이 적은 사람들이 술을 적게 마시게 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알코올 중독을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 이계성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사진=이민형 기자


이계성 교수는 "술은 내성이 생기는 물질이고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알코올 분해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극복하고 술을 계속 마시게 되면 얼마든지 알코올 중독에 빠질 수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의 60%는 유전적 요인을 가지고 중독에 이르렀다면 40%는 유전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스스로 술을 마시면서 중독에 빠진 경우"라고도 했다.

■ (3) 술이 센 사람은 간이 건강하다?

술이 센 사람은 술이 약한 사람보다 단지 간에 알코올 분해 효소가 많은 것일 뿐, 간 자체가 튼튼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의 간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말한다. 간이 손상되는 것은 음주량에 비례한다. 본인이 술이 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만큼 많은 술을 마시기 때문에 간이나 뇌의 손상이 더욱 심하다. 당연히 많은 양의 술을 자주, 오래 마시면 간의 손상은 커질 수밖에 없다.

■ (4) 한 잔의 술은 건강에 이롭다?



적절한 양의 음주는 건강에 이롭다는 외국의 연구 결과가 있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에 비해 적절한 양의 술을 마시면 심혈관 질환의 발생률이 감소하고 그 이상을 마시면 질환 발생률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를 나타내는 그래프의 모양이 알파벳 제이(J)를 닮아서 '제이커브 이론'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이해국 교수는 "한두 잔의 술이 심장 질환에 좋다는 것은 육식을 많이 하는 서양 중년 남자들에 관한 논문에서 발췌된 내용이기 때문에 식생활과 체형, 체질이 전혀 다른 우리나라 사람을 기준으로 그대로 적용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술은 중독성이 강한 물질이기 때문에 실제로 한두 잔만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극히 드물다"고 말한다. 매일 마시기 시작하면 결국은 주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5) 술이 불면증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실제 알코올 중독자 중에는 잠을 자기 위해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다가 중독에 빠졌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계성 교수는 "술에 취하는 과정에서는 잠이 오는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술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오히려 잠을 깨워 숙면을 방해한다"며 "술은 수면을 담당하는 뇌세포를 파괴해 잠이 깼다 들었다를 반복하게 만들기 때문에 잠을 자기 위해 술을 마시는 행동은 장기적으로 보면 불면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저명한 알코올 중독 연구원 조지 쿱 박사는 과음이 기분을 좋게 만드는 도파민 분비량을 줄이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코르티코트로핀 방출인자(CRF)의 분비만 늘려 불안하거나 우울한 감정 상태를 조장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쿱 박사는 당시 연구를 통해 술을 마시는 사람은 불안하거나 우울한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술을 찾게 되지만 CRF 분비에 의해 술을 마실수록 감정적인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런 악순환 속에서 주취자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주량도 점차 증가해 결과적으로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6) 술을 마시면 성욕이 증가해 성생활에 도움이 된다?



술은 흔히 사람을 흥분시키는 물질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해국 교수는 "사실 술은 흥분제가 아닌 중추신경 억제제"라면서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억제하기 때문에 흥분이 된다"고 설명한다. 단기적으로 술은 성욕을 올릴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성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오히려 사고의 위험성을 높게 만든다.

먼저 지나친 음주는 교감신경을 마비시켜 성적 쾌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는 경우 발기부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알코올은 간을 손상시키며 남성호르몬의 작용을 상쇄시키는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의 양을 늘리며 성욕을 감퇴시킨다.

■ (7) 알코올 중독자들은 위험하고 난폭한 사람들이다?

  • 사진=최신혜 인턴기자 multimedia@hankooki.com
우리는 알코올 중독자 하면 거리의 술병 붙잡고 있는 노숙자나 성격 고약한 주취 폭력범, 가정 폭력범 등을 떠올린다. 또 알코올 중독은 한번 걸리면 웬만해서는 치료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알코올 중독자들을 구제불능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위험한 사람이고 병원에 격리 수용해 사회를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편견도 있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는 전문가들은 "알코올 중독 환자들 중에는 내성적인 성격의 사람이 많다"면서 "일반적으로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술을 자주 마시다가 중독으로 발전한 경우"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주취 범죄자는 사실 알코올 문제 이전에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너무 과장해 알코올 중독자를 마치 범죄자와 동일하게 여기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편견은 알코올 중독자들의 치료와 사회 복귀를 막는 장애물이다. 본인이 알코올 중독을 앓고 있어도 사회적 편견이 두려워 쉽게 인정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오랜 시간 치료가 방치돼 가족과 주변 지인들도 포기하는 상태까지 내몰리게 된다.

■ (8) 알코올 중독은 의지가 약한 사람이 걸리는 병이다?



  • 알코올 중독은 화가 나도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이거나, 열등감이 많은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 흔하게 나타난다. 또한 우울, 불안, 불면증과 같은 신경성 장애가 있는 경우도 흔히 발생한다.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알코올 중독은 자신의 의지나 도덕적 문제가 아닌 뇌의 변화에 의해 생긴 병이라고 강조한다. 술은 의지나 동기를 담당하는 뇌세포를 파괴하기 때문에 의지나 도덕적 문제는 알코올 중독의 원인이 아닌 결과라는 것이다. 이해국 교수는 "우리나라는 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상당히 관대한 편이지만 알코올 중독이라는 병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모순적인 면이 있다"면서 "알코올 중독을 도덕적 파탄 정도로 인식하기 때문에 정책적 지원이 부족하고 회복률도 낮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른 전문가는 알코올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책 입안자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 이전에 알코올 중독을 개인의 의지나 도덕적 문제로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9) 알코올 중독은 중년의 남자가 주로 걸린다?



전문가들은 처음 술을 마신 뒤 알코올 중독에 걸리기까지 보통 남자의 경우 15년, 여자의 경우 5년이 걸린다고 말한다. 술에 취약한 여자가 알코올 중독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다. 실제 1990년대까지만 해도 50대 남성 환자가 월등히 많았지만 요즘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여성 알코올 중독자들도 많다. 또한 연령대도 20대 1년 유병률이 가장 높고 30대 환자도 병원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전문가는 "보통 알코올 중독 환자로 남자 중년을 이야기하는 것은 간경화나 기타 질병을 동반해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는 것일 뿐, 요즘은 음주를 처음 시작하는 연령이 낮아지면서 나이가 어린 중독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편견은 회복률과 연관된다. 이해국 교수는 "특히 알코올 중독이라는 병에 대한 인지가 없거나 사회적 편견 및 낙인 문제로 치료를 방치하고 20년 이상 병을 키우다 금단 증상이 나타나거나, 가족 폭력 등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아 중년의 남성이 자주 거론된다"며 "이럴 경우 치료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고 전했다. 일반적으로 병이 조기에 발견되면 치료가 쉬워지지만 오랜 시간 치료를 방치한 환자일수록 회복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 (10) 알코올 중독 완치할 수 없는 병인가?



학계에서 알코올 중독은 '재발과 회복을 반복하며 죽음에 이르는 만성 뇌질환'이라고 정의한다. 당뇨나 고혈압처럼 만성적인 질환은 고치는 대상이 아닌 관리하는 병인데 알코올 중독도 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알코올 중독도 당뇨나 고혈압과 마찬가지로 생활 습관을 개선한다면 정상인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서 "치료를 연속적으로 진행해 건강한 삶의 패턴으로 바꾸면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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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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