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대란' 현실로… 정부의 무능, 환자 몰이해 원인… 대재앙 가능성도

3일 오전 경기도 수원 경기도청 앞에서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주최로 ‘메르스 확산 방지 및 도민 안전을 위한 경기도의 특별 대책 촉구 기자회견’이 열려 참가자들이 메르스 관련 정보 공개 등을 촉구하고 있다.
메르스 최초 발생 과정과 감염 한국과 비슷해
정부 대처 무능, 방역체계 구멍 '재난' 키워
환자와 관계자들의 몰이해도 메르스 확산 빌미
메르스 공기로 전염되면 대재앙 올 수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메르스 공포에 국민 생활 전반이 위축되고 있고, 경제 분야도 타격을 받고 있다.

일선 학교 휴업이 잇따르고 각종 단체의 행사와 모임이 취소 또는 연기되는가 하면 개인 간 약속을 취소하는 일도 계속되고 있다. 병원과 관광업계는 된서리를 맞았고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주면서 하반기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또한 메르스 확산에 따른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는 그간 쌓아온 대한민국 이미지를 한순간에 깎아내리며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이어지고 있다.

'메르스 대란'으로 인한 정부에 대한 불신은 향후 국정은 물론, 내년 총선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연일 늘어나고 있는 2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직원들이 손 소독을 실시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메르스 사태의 이면들을 짚어봤다.

메르스 발생… 한국 확산 과정

메르스의 공식 명칭은 '중동 호흡기 증후군 코로나 바이러스'다.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발견된 뒤 중동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해 '메르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로 불린다. 메르스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6번째이자 최신 변종이다.

메르스는 2012년 9월 이집트 출신 미생물학자 알리 모하메드 자키 박사가 사우디아라비아 지다 지역 60대 남성의 허파에서 처음 발견해 같은 해 11월 국제 의학학술지 '뉴잉글래드저널 오브 메디슨'에 발표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메르스가 발견된 초기 상황과 전파된 과정은 한국에서 메르스 환자가 처음 발생하고 확산된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2013년 2월, 영국 보건당국은 세 차례에 걸쳐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확진환자를 세계보건기구에 보고했다. 당시 확진환자는 역학조사 결과 영국 거주인으로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여행한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맨체스터 병원에 입원해 집중치료를 받았다. 며칠 뒤 확진환자의 가족 2명이 잇따라 감염됐고, 그중 다른 질병을 앓고 있던 1명(기저환자)이 사망했다.

국내 메르스 첫 확진환자 A씨(68)도 바레인에서 생활하다 메르스가 창궐한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를 여행하고 귀국한 것으로 밝혀졌다. A씨는 메르스 증세를 보여 몇 차례 병원을 찾다가 증세가 악화되자 경기도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A씨를 간호하던 부인이 감염됐고, A씨가 입원한 병실 및 병동의 여러 사람이 감염됐다. 이 중 A씨와 같은 병실에 있던 기저환자가 사망했다.

A씨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다녀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것과 병원 치료 중 가족이 감염된 점, 기저환자가 사망한 것 등은 영국의 사례와 판박이다.

메르스 사태 초기 정부가 메르스 환자가 처음 알려진 영국의 예를 좀 더 신중하게 살펴봤다면 지금과 같은 메르스 대란을 사전에 차단하는데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메르스 대응 실패… 매뉴얼 무용지물

이번 메르스 대란이 발생하게 된 데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정부가 초기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후 방역 정책도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게 공통된 분석이다. 특히 메르스 첫 확진환자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해 골든타임을 놓쳐 메르스 확산의 빌미를 준 게 결정적이었다는 지적이다.

그렇게 된 데는 정부의 메르스 대처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업무를 담당하는 질병관리본부 직원의 무사안일주의도 한몫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5일 발표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응지침'은 80페이지 분량으로 촘촘하게 돼있다. 지침(매뉴얼)은 '분야별 세부 대응 방법'에서 의심환자, 확정환자, 접촉자의 단계별 행동요령을 구체적으로 담았다.

그러나 이같은 지침은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의심환자 신고가 중구난방으로 이뤄졌고, 격리대상자는 외부활동을 하는 등 곳곳에서 구멍이 생겼다.

국내 첫 메르스 감염 환자인 A씨는 지난달 4일 바레인에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후 7일 만에 발열 등의 증상을 호소하다가 20일이 되서야 최종 확진 판정을 받았다. 문제는 보건 당국이 '메르스 방지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점이다.

A씨가 네번째로 방문한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의료진은 지난달 18일 이 환자를 메르스 의심 환자로 신고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는 바레인이 메르스 위험지역에 포함돼 있지 않다며 무시했다. 그리고 지난달 19일 오후 8시께 검사에 착수했고, 다음날인 20일 오전 확진 판정을 내렸다. 보건 당국이 초기 36시간을 허비하고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A씨 접촉자 추적은 물론 대책 마련이 늦어졌고 메르스는 전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권준욱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1일 "정부는 바레인을 메르스 의심국가로 분류하지 않았다"며 "기준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했던 부분을 사과한다"고 말했지만 이미 메르스 대란은 활시위를 떠난 뒤였다.

그런데 이번 메르스 대란이 예고된 사태라는 분석도 있다. 4일 질병관리본부가 강원대 산학협력단에 연구 의뢰해 지난해 말 제출받은 '신종감염병 대유행 시 질병관리본부 비상인력 운영계획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질병관리본부 직원의 2%만이 국내에서 메르스가 발생할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이는 방역당국이 그동안 얼마나 메르스에 대해 무관심했는지를 보여준다.

보건당국의 매뉴얼에 한계점 뚜렷

특히 이러한 대응 매뉴얼조차도 방역당국에서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 경우는 절반이 안 됐다. 연구단이 질병관리본부 직원(299명)을 대상으로 신종감염병 발생 시 비상대응업무에 대한 숙지도를 조사한 결과 '신종 감염병 발생 시 역할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는 응답은 25.3%에 그친 반면,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44.1%나 됐다. 또 '신종 감염병 발생에 따른 파견 시 업무를 신속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응답은 29.6%에 그쳤으며, '신속한 업무 수행이 어렵다'는 응답은 39.4%나 됐다.

방역당국의 절반 이상이 사실상 비상상황 발생 시 매뉴얼대로 움직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메르스 환자 급증…유전자 때문?

한국의 메르스 환자는 발생 인원이나 증가 속도, 전파 과정 등에서 이례적일 정도여서 세계 의료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달 29일 기준으로 유럽질병예방통제청(ECDC)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2년 2월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메르스 환자는 총 23개 국가에서 1,167명이 발생했고 이 가운데 479명이 사망했다.

최근 4개월간 전 세계적으로 메르스 환자는 총 165명이 발생했으나 1월부터 증가추세를 보이던 환자 발생은 2015년 2월 둘째 주에 28명의 환자가 발생해 정점을 찍고서 감소 추세다.

환자와 사망자 대다수는 사우디(1,007명 감염·442명 사망)와 UAE(76명 감염ㆍ10명 사망)에서 발생했다. 국내 환자 발생이 급증함에 따라 한국(25명 감염ㆍ2명 사망), 요르단(19명 감염ㆍ6명 사망), 카타르(13명 감염ㆍ4명 사망) 순으로 많다.

중동 이외의 국가에서 발생한 메르스 환자는 대부분 유럽 지역에 집중돼 있다. 영국에서는 4명의 메르스 환자가 발생해 3명이 사망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각각 3명, 2명의 환자가 발생해 1명씩 숨졌다. 그리스와 터키에서도 메르스 환자가 1명씩 발생해 이들이 모두 숨졌다. 아시아에서는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에서 각각 1명, 2명의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고 이 가운데 필리핀인 1명이 숨졌다.

한국을 제외하고 비교하면 중동에서 발생한 메르스 환자는 1,140명인데 반해 중동 이외의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에서 메르스 환자는 27명밖에 되지 않는다.

메르스의 기초감염재생산수(환자 한 명이 몇 명의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지 의미하는 수치)는 보통 0.6~0.8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우리나라는 첫 번째 환자가 22명에게 메르스 바이러스를 옮겼다. 게다가 사망자까지 3명이나 발생해 중동을 제외한 국가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다. 여기에다 지역사회 전파는 아니라지만 3차 감염자까지 나온 것은 세계 의료계가 주목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이러한 한국의 메르스 상황에 대해 세계적 과학학술지 '사이언스(Science)'는 2일(현지 시각)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메르스 바이러스 감염자 확산이 기존 메르스 바이러스에 대한 의학계의 통념을 깨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이언스는 "2012년 메르스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뒤 많은 나라에서 외국여행(외부유입)을 통한 감염자가 발생했지만, 여러 사람에게 광범위하게 전파된 것은 (한국이) 처음이고 감염자 수로도 아라비아 반도 밖에서는 최대치"라며 "지금까지 메르스는 사람간에는 쉽게 감염이 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이언스는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메르스가 확산되는 것은 한국인 유전자의 특성 때문일 수도 있다는 전문가의 분석을 함께 실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메르스 자문을 맡고 있는 피터 벤 엠바렉 박사는 "최초의 환자가 이미 다른 계열의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메르스에 감염됐거나, 한국인이 다른 나라 국민보다 메르스에 취약한 유전자 구조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일부 바이러스는 특정 사람의 유전자와 더 쉽게 반응하고 변이를 일으키는데, 한국인의 유전자 특성이 메르스 바이러스와 유독 잘 반응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내 바이러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메르스가 빠르게 확산된 것은 방역체계의 문제이지 한국인 유전자 때문은 아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해외에선 한국의 메르스 바이러스가 유전적 변이를 통해 강한 전파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원인임을 밝혀내는데 핵심적 역할을 맡았던 학자인 페이리스 교수는 "외래 유입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가 한국에서 두드러지게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면서 "연구자들이 가능한 한 빨리 바이러스를 특정하는 게 중요하다. 아울러 바이러스의 완전한 유전자염기서열 정보를 파악하는 게 절실하다"고 말했다. 영국 런던대의 감염병 전문 교수 알리무딘 주믈라 교수도 변이 가능성을 빨리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기 전염 배제 못해"

메르스와 관련해 전 세계가 우리나라를 주시하고 있다. 그동안 중동 다른 나라와 다르게, 환자 수가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메르스의 공기전염 가능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보건당국은 줄곧 "공기 전염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메르스 바이러스를 2년여 전 처음 발견한 알리 모하메드 자키 박사는 "공기전염도 가능하다"고 주장해 파장이 예상된다.

자키 박사는 지난 2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연구한 자료를 보면 낙타 헛간에서 메르스 바이러스를 발견했다"면서 "당시 헛간 내 공기 중에 상당량의 메르스 바이러스가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연구는 사람들도 (공기를 통해) 메르스에 감염될 수 있다는 걸 뜻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메르스 의심환자가 함께 있던 병실이나 응급실에 있던 사람들도 위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이례적으로 3차 감염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자키 박사의 주장은 주목할 만하다.그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지면 메르스 대재앙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이홍우 기자 lh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