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무사안일 태도가 화 키웠다보건복지부-병원 의심스러운 정황

박근혜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17일 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중앙 메르스 관리대책본부를 방문,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질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병원 비공개 원칙 메르스 확산 원인 제공… 책임자 엄벌해야
평택 인근 병원 의사폭로 "보건당국이 의사에게 책임 미뤄"
메르스 의심환자 검사 요구에 보건당국 무책임 대응
청와대에 전염병 대응 메뉴얼조차 제대로 보고 안 해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사퇴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책임론도 동시에 불거지고 있다.

청와대는 문 장관 경질보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수습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메르스 확산 저지 중대 기로에 선 현 시점에 보건복지부 수장을 교체할 경우 사태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난국을 우선 빨리 수습하고 난 뒤에 잘잘못을 가리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이 같은 입장을 거듭 밝혔다.

청와대 내부에선 문 장관이 메르스 사태를 수습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사의를 표명하는 절차가 뒤따를 것이고, 이때 박 대통령이 사의를 수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서울삼성병원 암병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송재훈 삼성서울병원 병원장(오른쪽)등 병원 관계자들이 인사를 하고 있다. 송 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이날부터 신규 외래.입원 환자를 한시적으로 제한하며 응급수술을 제외하고는 수술과 응급진료도 한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문 장관의 경질 여부와 별도로 공기관의 무책임하고 안일한 초기대응으로 수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만큼 메르스 사태 관련 기관 공무원들도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문 장관의 경질론이 불거지자 "어차피 수장을 교체해도 실무를 담당하는 하부조직에 변화가 없는 이상 안일한 보건복지부 조직이 바뀌지는 않는다"며 이번 사태와 관련해 중대 실책을 범한 해당부서 관련 공무원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여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 같은 여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청와대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관련 공무원들을 징계조치 할 경우 책임을 하부로 전가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소식통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이번 메르스 확산과 관련 보건복지부의 안일한 대응과 허술한 보고를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짜 책임자에 책임 물어야

최근 메르스 발병이 확산일로에 있던 시기에 질변관리본부(질본)의 신종감염병대응을 책임졌던 실무과장이 교체됐다.

지난 1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메르스 대응 주무과인 '질본 공중보건위기대응과' 과장이 지난 1일자로 새로 바뀐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복지부는 이번 과장급 인사가 단행된 것과 관련, 예정된 정기 인사라는 설명이지만 사실상 경질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메르스 사태의 책임을 묻는 문책성 인사가 아니냐는 것이다.

국내 첫 메르스 환자(68)의 바레인 여행 사실을 확인한 삼성서울병원 측이 지난달 18일 질본 측에 검체 의뢰를 요청했지만, 바레인은 메르스 발생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질본 측은 다른 호흡기질환 검사를 실시할 것을 권유했고, 재차 재검을 의뢰받아 실시한 검사에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하루 반나절이나 뒤늦게 접수받은 과가 공중보건위대응과다.

오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1번 환자와 평택성모병원 2인 병실을 함께 쓴 3번(76) 환자를 간병하던 딸(46·여)의 메르스 검사·격리 요구를 거절한 것이다. 38도 이상의 고열 또는 급성호흡기 증세가 없어 검사나 격리 대상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3번 환자의 딸은 닷새 후인 지난 5월26일 4번째 메르스 확진자로 판명이 났다.

이를 놓고 정부의 대처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쏟아졌고, 이 상황에서 주무과장이 교체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메르스 사태를 수습해야 할 급박한 상황에서 책임자를 교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하지만 대다수의 국민여론은 "믿을 수 없는 이들에게 중책을 더 이상 맡겨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 5월 31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메르스 전파력에 대한 판단과 최초 환자에 대한 접촉자 그룹의 일부 누락 등으로 인해 심려와 불안을 끼쳤다"고 사과한 것도 책임자의 과실을 인정한데 따른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온라인에서는 주무과장 교체를 두고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다. 아이디 gony****를 쓰는 네티즌은 책임자 교체를 두고 "정말이지 초기에 대응만 잘했어도 지금처럼 퍼지진 않았을 듯"이라며 "저 과장이라는 사람뿐만 아니라 관련 정부 및 산하조직에 병원까지 엄중 처벌 바란다"고 책임자 문책을 촉구했다.

또 아이디 eufr****는 "질병관리본부의 초기 메르스 검사 거부한 인간 파면시키고 그 윗라인 질병관리본부장 포함 전부 파면이 필요하다"고 성토했다.

초기에 발병 병원을 제때 공개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아이디 rtof****를 쓰는 이는 "메르스 확산에 더 큰 책임은 확진자가 나왔을 때 공개하지 못하게 막은 사람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질본의 안일한 대응은 병원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평택부근의 한 병원장은 질본의 무책임하고 상식밖의 대응을 폭로하면서 "질병관리본부가 초기 대응을 제대로 못한 것뿐만 아니라 추가 후속대응도 형편없이 세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의사에 따르면 평택지역 메르스 의심환자가 자신의 병원을 내원했을 때 질본에 연락을 취해 메르스 확진을 위한 검사를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질본 관계자는 "만약 검사했는데, 메르스가 아닐 경우 당신이 이후 문제를 책임질 수 있겠냐"고 했다는 것이다.

수차례 걸쳐 실랑이를 한 끝에 결국 해당 의사가 "메르스 환자로 확진되지 않을 경우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을 하고 메르스 감염 검사를 실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의사는 "하루하루가 중대 고비인 급박한 상황에 어떻게 그 같은 태도를 보일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이번 메르스 확산 사태는 보건당국이 70%이상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했다.

병원공개 거부한 정부·보건부

메르스 확산과 관련해 일부에서는 "문 장관이 메르스와 관련된 중요 사항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거나 병원 비공개 원칙과 관련해 향후 문제에 대해 엉뚱한 분석을 내놓아 청와대를 혼란스럽게 한 것 아니냐"고 의심어린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 초기 메르스 감염 병원을 비공개로 한 탓에 메르스 확산을 키운 것이 확실시 되고 있어 국민적 공분이 증폭되고 있다. 아울러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초기 병원을 비공개로 한 것뿐만 아니라 해당 메르스 전파 핵심 병원이 삼성병원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일각에서는 "삼성병원과 관련해 일종의 편의를 봐준 것 아니냐" "삼성 측과 보건 당국이 비공개 부분을 따로 논의한 것 아니냐" 등의 의혹까지 일고 있다.

더욱이 삼성서울병원과 관련 기사에 달리는 덧글이 계속 삭제되고 있는 점도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병원 업계에 근무하는 한 인사는 "메르스 확산과 관련해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글이 올라오면 수시로 해당 덧글이 삭제돼 네티즌들 사이에서 괴담이 확산되고 있다"며 "의료업계 관계자들도 이 부분 때문에 정부와 보건복지부 그리고 삼성서울병원측이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삼성병원을 청와대와 보건복지부 공개 안 한 것과 관련해 석연치 않는 부분이 있다. 초기 서울삼성병원이 공개되지 않은 것은 송재훈 서울삼성병원 원장이 새누리당 메르스 대책위원회 소속인 것과 연관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7일 트위터에 삼성서울병원 송재훈 원장에 대한 글이 올라와 주목을 받았다.

한 누리꾼은 송재훈 서울삼성병원 원장이 새누리당 메르스 대책위원회 소속이라는 점을 들추면서 "초기 서울삼성병원이 공개되지 않은 것과 연관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당 글에서 "서울에 메르스를 대폭발시킨 진앙지인 삼성서울병원, 원장이 감염내과 송재훈. 새누리당 메르스 대책위원회 소속, 아시아태평양 감염재단 설립자 겸 이사장"이라고 지적했다.

병원 비공개 원칙 배경에 삼성서울병원 보호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석연치 않는 것은 이뿐만 아니다.

일부에서는 "'재벌병원의 경제논리'가 작용했다"고 지적한다. 삼성서울병원은 서울지역 메르스 확산의 진원지였고 이를 보건복지부와 청와대는 인지하고 있었다. 확진 및 양성판정이 난 의료진이 2명이고 이 병원을 거쳐 간 환자들이 부천, 부산으로까지 2,3차 감염의 매개자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공개되지 않았고, 병원측도 다른 병원과 달리 응급실 폐쇄, 병동격리 등에 미온적이었다. 삼성서울병원은 '1번 환자'를 메르스 감염자로 확진한 최초의 병원이다. 그러나 이후 과정에서 보건당국의 뒤에 숨어 아무런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급기야는 '2차 진원지'가 됐다.

무엇보다 삼성서울병원은 최고 엘리트 의료진이 포진하고 있는 곳으로 해외 유명 의료기관과 교류도 활발하다. 이런 병원에서 치명적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이 그토록 미숙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얼핏 바이러스의 진원지라는 명예실추를 우려한 '고의적 미숙'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바이러스 진원지로 드러날 경우 병원 영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은폐한 것이 '대처미숙'으로 드러난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이 병원 응급실에서 감염된 확진환자가 다른 곳으로 옮긴 사례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이 병원의 운영에는 삼성생명공익재단(이사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삼성서울병원 중대 책임져야

삼성서울병원을 책임진 사람들 면면을 살펴보면 이재용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윤순봉 삼성서울병원 사장(지원총괄), 송재훈 삼성서울병원 원장 등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송재훈 원장은 감염내과 전문가로서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을 역임했고, 아시아태평양감염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송 원장은 지난 4일 새누리당 초청간담회에서 "확진환자와 접촉한 적이 없으면 감염될 일이 없다"면서, "휴교하는 것도 논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조금 과대포장된 느낌"이라면서 "공기 중에 떠다니면서 무작위로 감염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손 씻기 등 위생만 잘 지키면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병원 응급실에 있던 14번 환자의 옆 병상에서 1시간 정도 체류했던 의사가 확진판정을 받은 상황에 의료인의 해명치고는 황당하기까지 한 대목이다. 더구나 앞서 지난 1일 자신의 병원 의사가 14번 환자와는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는데도 확진판정을 받았는데도 사흘이나 지난 4일에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 삼성서울병원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사장에 취임한 삼성생명공익재단에 의해 운영된다. 삼성경제연구소장을 지낸 윤순봉 삼성서울병원 사장(지원총괄)이 최근 신설된 삼성생명공익재단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지배구조는 이 병원이 삼성그룹의 직접적 영향력 아래 있다는 소리와 다름없다. 또한 이 병원의 중대한 결정은 병원장의 독립적 판단과 의지보다는 총수 일가와 윤순봉 사장 등 그룹차원 검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런 점들 때문에 일각에선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병원이 비공개에서 늦게 공개된 것을 두고 삼성 측이 정부 또는 정치권에 '병원 비공개'라는 모종의 '부탁'을 한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최근 드러난 바에 따르면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 확진 병원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메르스 감염자에게 사흘간 무방비로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보건당국이 첫 확진 이후 의료진에게만이라도 제한적으로 병원 정보를 공개했더라면 삼성서울병원이 14번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부터 메르스의 연관성을 인지, 대규모 노출을 막을 기회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서울병원은 내부 관계자들에게 조차 메르스 사항을 비밀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이 같은 비밀주의가 화를 키웠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보건당국이 최초 환자와 밀접 접촉자만 추적·감시한 탓에 14번이 감시망에서 누락됐고, 여기에 병원정보 비공개까지 겹쳐 삼성서울병원으로서는 정부가 알려주기 전까지는 14번을 메르스로 의심하지 못한 것이다. 그 사이 이 병원을 찾은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 총 890여명은 메르스 바이러스에 무방비로 노출됐고, 감염자가 크게 늘고 있는 상황으로 번졌다.

한편 국민 10명 중 9명 가까이는 메르스 관련 정보가 투명하고 신속하게 공개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5일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메르스 관련 정보가 신속하고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는지 설문조사한 결과, 88.6%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메르스 정보 공개가 '잘 안 되고 있다'는 응답과 '미흡하다'는 응답이 각각 44.3%로 집계됐다.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는 8.2%뿐이었고, 나머지 3.2%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또 정부가 내놓은 메르스 대책에 대해서는 국민 10명 가운데 7명 가량(68.8%)이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매우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39.5%를 차지했다. 신뢰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27.2%로 집계됐다.

메르스 대응 실패에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을 경질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느냐고 묻자 응답자의 60.4%가 그렇다고 답했다. 반대한다는 의견은 19.9%, 잘 모르겠다는 의견은 19.7%를 차지했다.

이번 조사는 휴대전화(50%)와 유선전화(50%) 임의전화걸기(RDD)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했다. 표본오차는 95.0%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이며, 응답률은 6.1%이다.

이밖에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18일 메르스 확진자는 3명이 늘러 165명, 사망자도 3명 늘어 총 23명이 됐다고 밝혔다. 기존 확진자 중 31번 환자(69), 77번 환자(64), 82번 환자(82·여) 환자가 지난 17~18일 사망했다고 대책본부는 밝혔다.

추가된 메르스 확진자에는 간호사 2명이 신규 환자에 포함됐다. 163번 환자(53·여)는 지난 5∼9일 평택 경찰인 119번 환자가 아산충무병원에 입원했을 당시에 근무한 병동 간호사다. 삼성서울병원 간호사인 164번 환자(35·여)는 75번 환자와 80번 환자가 입원 중인 병동에서 근무했다. 전체 확진자 수를 기준으로 한 치사율은 13.9%다. 전날 치사율은 12.3%(확진자 162명, 사망자 20명)였다.

대책본부는 총 확진자 165명 중 퇴원자 24명과 사망자 23명을 제외한 118명이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상태가 불안정한 환자는 17명이라고 밝혔다.

현재 격리자 수는 221명 증가한 6,729명이다. 메르스로 인해 격리를 경험했거나 경험 중인 누적 격리자는 모두 1만1,211명이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