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랄해지는 '악플' 폐해 유명인 넘어 일반인까지 확대

왼쪽부터 김수미, 백종원
유명 연예인 악플에 극단 선택… 최근 법적 대응 많아져
SNS 등장으로 악플 증가 추세… 10~20대 다수 차지해
검찰, 악플에 원칙적 기소 방침… '인터넷실명제' 논란
악플과의 전쟁… 고소 등 강경 대응에도 악플러 줄지 않아
방지책 미비… 악플 활동 억제할 사회분위기, 제도 병행돼야

'국민 욕할매' 김수미가 지난달 13일 KBS 2TV '나를 돌아봐' 제작발표회에 파격적인 헤어스타일로 등장했다. 김씨는 "(나에 대한) 무서운 댓글은 처음이었다. 안티글 때문에 자살하는 후배들의 심정을 알겠더라. 그래서 자해를 했다. 머리를 잘랐다"고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악플(악성 댓글)에 따른 충격을 김씨는 그야말로 충격적으로 보여줬다.

한창 방송가 대세로 주가를 올리던 요리연구가 백종원이 지난달 26일 출연하던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하차했다. 같은 달 12일 녹화 중 불거진 백씨의 부친 관련 악플 때문이었다. '마리텔' 박진경 PD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출연자들이 실시간으로 악플과 마주쳤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백씨의 심정을 전했다.

김수미, 백종원 외에도 많은 스타가 악플(악성 댓글)에 몸살을 앓았다. 톱스타 최진실을 비롯해 유명 연예인들이 악플에 시달리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인신공격의 칼날이 유명인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까지 겨눠지고 있어 악플의 폐해가 점차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에 사회적 파장을 가져온 악플 사례와 대책, 현안을 중심으로 '악플공화국'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악플에 병든 사람들

2008년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고(故) 최진실의 자살 동기는 악플이었다. 당시 최씨는 친구 정선희의 남편인 고(故) 안재환에게 거액을 빌려준 후 상환을 독촉해 안씨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루머에 시달렸다.

최씨는 숱한 악플에 시달리다가 2008년 10월2일 자살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최씨의 남동생인 고(故) 최진영과 전남편인 고(故) 조성민까지 파생되는 악플로 인해 각각 2010년 3월29일과 2013년 1월6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2007년 가수 고(故) 유니 또한 인신공격성 댓글에 시달리다가 자살했다. 컴백을 앞두고 의욕적이었던 그였지만 악플로 인해 우울증을 겪었다. 결국 그는 "저는 도마 위에 생선이 아니에요"라는 글을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3인조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타블로와 악플러 간의 법적 공방은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타블로는 2010년 한 포털사이트의 인터넷 카페인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회원들로부터 학력(미 스탠퍼드대 졸업) 위조 의혹을 받으며 이와 관련된 악플에 시달렸다.

타블로는 동일한 악플을 반복해서 올린 누리꾼을 고소했다. 뿐만 아니라 같은 해 8월까지 타진요 회원들을 추가로 고소했다. 타블로의 학력이 위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그는 지속된 공격을 받았고 대중의 부정적인 시선으로 인해 한동안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악플의 병폐는 일반인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다. 2012년 2월17일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는 자신을 임산부로 소개한 누리꾼이 프랜차이즈 C사의 한 음식점 직원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허위 글을 게재했다.

해당 종업원과 음식점 그리고 C사는 악플을 통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C사와 공식 입장을 발표했으나 이미지 손상은 불가피했다. 더불어 매출에 타격을 입은 해당 가맹점은 사건이 발생한지 8일 만에 점포를 내놓으며 폐업했다.

17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자신을 임신 6개월로 소개한 네티즌이 충남 천안의 샤브샤브 가맹 음식점 '채선당'에 식사를 하러 갔다가 여종업원과 말다툼이 났고 이 과정에서 배를 걷어차였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17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자신을 임신 6개월로 소개한 네티즌이 충남 천안의 샤브샤브 가맹 음식점 '채선당'에 식사를 하러 갔다가 여종업원과 말다툼이 났고 이 과정에서 배를 걷어차였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고인이 된 173번 메르스 환자 최모씨와 그의 유가족 역시 악플러들의 먹잇감이 돼 피해를 당했다. 고(故) 최씨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지난 6월 23일 이해식 강동구청장은 자신의 SNS 계정에 최씨가 메르스 감염을 뒤늦게 밝힌 사실을 공개했다.

글이 게재되자마자 최씨와 그의 가족들은 악플에 시달렸다. 악플러들은 댓글을 통해 인신공격과 인격모독을 서슴지 않으며 최씨를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강동구 주민들에게 메르스 감염 위험을 안긴 파렴치범으로 몰아세웠다.

이와 관련, 최씨의 아들인 김모 씨는 지난달 9일 열린 메르스 피해 손해배상 청구 공익소송 기자회견에서 "어머니도 억울하게 메르스에 감염돼 사망한 피해자인데 사후에도 마녀사냥식으로 비난을 받아야 된다는 게 가슴 아프다"며 "어머니로 인한 확진자가 한 명도 안 나왔다. 자식으로서 어머니의 명예를 회복시켜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악플로 인한 피해가 증가하면서 민사ㆍ형사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었다. 한 로펌 관계자는 "최근 악플 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중소형 로펌들이 등장했다"며 "그러나 현실적으로 악플에 의해 손해를 얼마만큼 입었는지 입증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가해자들을 보면 남성, 여성, 학생, 직장인 등 다양하다. 이들은 수사절차에 들어가면 벌금 기록이 남는 것을 두려워한다"며 "이로 인해 피해자에게 어떻게든 합의금을 주고 소송을 막으려고 한다. 이 때문에 악플 피해가 줄어들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악플 소탕 위한 검찰 강경 대응

국내 악플 문제는 2005년 7월 처음 주목받기 시작했다.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당시 9세인 아들이 필리핀 연수 중 익사한 사건을 보도한 온라인 기사에 욕설과 비방을 적은 악플러 25명을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그 결과 임씨의 아들 사망 기사에 악플을 단 누리꾼 4명이 벌금 100만원의 처벌을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임씨에게 인신공격을 한 사람들에게 모욕죄 적용이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2001년 7월 사이버 명예훼손죄가 제정된 이후 첫 댓글 관련 처벌이었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악플로 인한 소송은 4배가량 증가했다. 악플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모욕과 명예훼손으로 인한 처벌은 3.84배 증가했고, 이 중 모욕죄 고소사건 수는 2004년 2,225건에서 지난해 2만7,945건으로 12.5배나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악플 현상이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이 증가하면서 나타난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방송통신위원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폰 보유율은 2010년 국민의 3.8%에서 2014년 76.8%로 20배 증가했다.

스마트폰의 사용은 SNS에의 손쉬운 접근으로 이어졌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전체 국민의 39.9%가 SNS를 사용했다. 특히 스마트폰 보유자들의 SNS 사용 시간은 지난해 평균 47.7분으로 나타났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은 SNS의 등장이 유명인을 넘어 일반인에게까지 악플 피해가 확산된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 연구원은 "이전에는 유명인만 악플의 대상이었다. 최근에는 SNS를 통해 일반인들의 신상이 공개되며 다수가 악플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속해서 악플은 인터넷을 통해 존재해왔지만 최근에는 집단성이 더해지면서 정도가 심각해지고 있다"며 "악플은 엄연히 폭력이다. 사이버 폭력이기 때문에 경각심을 가지고 꾸준히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악플 가해자 연령층이 점차 낮아지는 것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 방송통신위원회가 2013년 말 총 2,500명을 대상으로 사이버 폭력 실태를 조사한 결과, 초ㆍ중ㆍ고교생 등 설문에 참여한 미성년자 1,500명 중 29.2%가 타인에게 악플 등으로 사이버 폭력을 가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성인 중 14.4%가 사이버폭력 가해 경험이 있다고 답한 것과 비교된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13년 자료에 따르면 10대(12~19세) 인터넷 이용자 가운데 악플 작성 경험자는 48%에 달했다. 20대는 29%였고, 30대(17.4%), 40대(14.8%), 50대(11.7%) 등 나이가 많을수록 악플 경험이 적은 편이었다.

한편 검찰은 특정인에 대한 악성댓글을 작성할 경우 원칙적으로 기소한다는 방침이다. '정도가 심한 욕설 댓글을 반복적으로 게시한 경우',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표현을 사용하거나 가족구성원까지 비하ㆍ협박하는 경우', '동종 전과가 있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기소된다.

또한 검찰은 지속적으로 협박ㆍ음해하는 상습 악플러의 경우 구속 수사를 통해 강도 높은 처벌을 고려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고소인에 대한 일회성 악플을 삭제하고 반성하는 등 정상 참작 사유가 있으면 교육조건부 하에 기소유예 대상이 된다.

"악플은 불만 표출 도구"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악플러들은 온라인에서 비방성 댓글을 다는 행위를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악플을 단 후의 느낌을 묻는 질문에 '후회된다'는 의견은 39.8%인 반면, '속이 후련하다'는 반응은 40.1%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악플을 다는 이유는 단출했다. '재미나 호기심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하기 때문에', '기분이 나빠져서',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박하고 싶어서', '상대방에게 똑같이 되갚아 주기 위해서' 등이 주를 이뤘다.

악플러란 사이버상에서 상대방을 공격하며 쾌감과 우월감을 느끼는 이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김현정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전문의는 악플러들의 행위를 억눌린 내적 불만의 표출이라고 정의했다.

김씨는 "악플러의 특징은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을 자신을 감출 때만 드러낸다는 것"이라며 "악플러는 인터넷에 접속하고 문맥을 파악해 댓글을 쓰는 점에서 사회 기능이 저하된 사람이 아니다. 이들의 행위는 익명성을 통해 불만을 해소하는 과정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악플 범죄의 잔혹성은 날로 커지지만 악플 범죄량은 줄어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허위 인터뷰를 해 논란을 빚었던 홍모 씨는 지난 3월 자신의 SNS 계정에 비방성 댓글을 단 악플러들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그 결과 악플러들은 홍 씨가 '합의금 장사'를 한다며 악플의 수위를 높였다. 이에 홍 씨는 지난 3월 26일 자신의 SNS에 "저와 제 가족이 받았던 정신적 충격과 고통, 그리고 앞으로도 받을 고통에 비하면 너무 적은 돈이라는 건 알겠습니다"고 심경을 밝혔다.

피해자의 강경대응에도 악플의 기세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법조계 관계자는 "악플러들은 법적 조치에 들어간다고 하면 SNS에 용서를 구하거나 변명을 하는 등의 태도를 보인다. 이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악플을 단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반면 피해자들은 악플로 인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느낀다"며 "학교, 직장 등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보게 된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 셈이다"고 덧붙였다.

악플 방지 대책 오리무중

2008년 고(故) 최진실 자살 사건 이후 악플의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대두되며 해결책으로 인터넷 실명제를 확대 적용하자는 여론이 일어났다. 국내에서 인터넷 실명제는 2005년 일명 '지하철 개똥녀 사건'으로 해당 인물의 신상 정보가 유출된 후 논의가 된 바 있다.

악플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인터넷 실명제가 2009년 국내 포털사이트를 대상으로 적용됐다. 이에 포털사이트 업체들은 난색을 표했다. 국내 포털사이트 이용자들이 실명제가 적용된 네이버, 다음 등의 사용을 꺼리며 우회책으로 해외 사이트를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2009년 인터넷 실명제가 적용되기 이전의 구글 사용자 수는 686만 명이었던 반면 2013년에는 3,020만 명으로 대폭 늘어났다. 포털사이트 업계 관계자는 "국내 구글 이용량 급증에 인터넷 실명제가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악플 박멸'이라는 선의를 위해 도입된 인터넷 실명제는 2012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따라 폐지됐다.

이와 관련,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는 "온라인이 자유로울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익명성 때문인데 동반한 부작용이 바로 악플"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억제되지 못한 욕구가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공간에서 익명성을 기반으로 악플로 나타나 사회적인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며 "인터넷 실명제가 다시 도입된다 할지라도 음지에서는 다시 악플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인터넷 실명제를 사이트의 특성에 따라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며 "표현과 소통이 발현될 필요가 있는 사이트에서는 실명을 밝혀야 한다. 그러나 취미생활과 같은 여가활동을 위한 사이트에서까지 실명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악플 확산 방지를 위한 작업은 여전히 미미하다. 사이버 경찰청 측은 "선플운동본부에서 선플 캠페인을 펼치고 있고, SNS와 메신저 등의 홈페이지에 명예훼손, 모욕죄 등을 명시한 관련 법령을 게재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악플로 인한 피해가 증가하면서 피해자들도 민사ㆍ형사 소송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고, 검찰 또한 지속적으로 협박ㆍ음해하는 상습 악플러의 경우 구속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악플공화국'의 오명은 결국 악플러들의 활동을 억제시킬 수 있는 사회분위기와 제도적 장치 마련이 병행돼야 일정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윤소영 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