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사건 새 국면5년 넘게 못 푼 살인사건 베테랑 형사들로 구성된 전담팀이 맡아전국 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 50명에서 72명으로 늘리고 강력계 편성

살인사건 현장에서 경찰 과학수사대가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1999년 5월 20일 김태완(6) 군이 대구 동구 효목동에서 한 남성에게 황산 테러를 당하는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사건'이 일어났다. 김군은 온몸에 3도 화상을 입은 것은 물론 입 속에 황산이 들어간 탓에 패혈증에 걸려 49일 만에 숨졌으나 범인은 끝내 검거되지 않았다.

해당 사건은 지난해 7월 10일 공소시효가 끝났다. 앞서 김군의 부모는 재정신청과 재항고를 연달아 냈지만 모두 기각됐다. 결국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사건'은 '화성연쇄 살인사건'ㆍ'이형호 유괴 살인사건'ㆍ'개구리 소년 실종사건'과 더불어 '4대 영구미제' 반열에 올랐다.

그로부터 1년 후인 지난달 31일 김군의 이름을 딴 '태완이법'이 공포ㆍ시행됐다. '태완이법'은 형사소송법의 일부 개정안으로 사형에 해당하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법안이다. 이에 따라 '태완이법'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미제사건들과 경찰청의 대응을 살펴봤다.

화제의 미궁 속 살인사건

'태완이법'의 적용대상은 2008년 8월 1일 오전 0시 이후 발생한 살인사건이다. 이에 주목받았던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2000)' '포천 여중생 납치 살인사건(2003)' '광주 용봉동 여대생 알몸테이프 살인사건(2004)'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2004)' '부산 주부 청테이프 살인사건(2008)'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2009)'이 재조명되고 있다.

정용선 경찰청 수사국장은 23일 전국 16개 지방경찰청에 설치된 장기미제 사건 전담팀을 정식 편성하는등살인죄 공소시효 폐지에 따른 장기 미제사건 수사체제 정비계획을 발표했다.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공소시효 만료를 열흘 앞두고 '태완이법'에 따라 공소시효에서 배제됐다. 2000년 8월 10일 택시기사 유모(42)씨가 전북 익산시 영등동 약촌오거리 부근에서 옆구리와 가슴 등의 부위를 흉기에 찔린 채로 발견되면서 사건은 시작됐다.

사흘 후 목격자였던 최모(당시 16)씨가 범인으로 검거돼 사건은 종결되는 듯했다. 그러던 중 2010년 만기 출소한 최씨가 강압에 의한 자백을 주장하고 나섰다. 최씨는 재심을 청구해 승소했고 검찰 측의 항고에 따라 현재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더불어 해당 살인사건은 전면 재수사에 나서게 됐다.

일명 '포천 매니큐어 사건'은 2003년 11월 실종됐던 엄모(15)양이 다음해 2월 시신 상태로 배수로에서 발견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엄양의 손톱과 발톱에 빨간색 매니큐어가 어지럽게 칠해져 있어 범인의 소행으로 추정됐으나 이외의 단서가 발견되지 않아 미궁에 빠졌다.

'광주 용봉동 여대생 알몸테이프 살인사건'은 기괴한 살인 방법으로 입에 오르내렸다. 2004년 9월 14일 광주 용봉동에서 여대생 손모(22)씨는 하의가 벗겨진 채로 얼굴 전체가 테이프에 밀봉된 모습으로 모친에게 발견됐으나 범인은 흔적 하나 남기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사라진 손씨의 휴대폰이 인근에서 위치 추적됐으나 사라지면서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

4년 후인 2008년 5월 7일 부산 서대신동의 한 주택에서는 유흥업 종사자 구모(43)씨가 청테이프로 얼굴이 감겨 질식사한 채로 발견되는 유사 사건이 등장했다. 정교하게 연출된 범죄 현장으로 수사진의 혀를 내두르게 했던 용의자는 결국 영원히 모습을 감췄다.

2004년 10월 27일에는 여대생 노모(22)씨가 실종돼 46일 만에 반백골로 나타난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이 있었다. 법의학팀은 과학수사 결과 면식범 두 명의 소행일 것으로 분석했지만 결국 해당 사건은 단서 불충분으로 오리무중이 되고 말았다.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은 2009년 2월 1일 제주 용담동에서 귀가하던 어린이집 교사 이모(29)씨가 실종된 지 일주일 후 애월읍의 한 배수로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수사 과정에서 당시 사건 현장을 지나던 택시기사가 거짓말 탐지기 검사에서 거짓 반응을 보여 유력 용의자로 떠올랐으나 추가 단서가 확보되지 않아 수사가 난항에 빠졌다.

경찰 "국민 믿음 저버리지 않겠다"

경찰청은 지난달 24일 사형에 해당하는 살인죄의 공소시효 폐지에 따른 미제사건 수사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전국 16개 지방경찰청에 설치된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을 현행 50명에서 72명으로 늘리고 형사과 강력계 산하에 정식 편성하기로 했다.

또한 '1단계(수사본부 1년 간 집중수사)-2단계(관할서 전담반 1년부터 5년까지 수사)-3단계(미제전담팀 5년 이상 수사)'의 수사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경찰서와 지방청 간 비직계 제였던 기존 장기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방편으로 해석된다.

특히 이번에 개편되는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은 장기 수사를 긴밀하게 이어가며 범인 검거율을 높이겠다는 경찰청의 뜻을 담았다.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에는 장기 수사를 위해 오랜 기간 근무할 수 있으며 강력범죄 수사 경험이 많은 베테랑 형사들을 배치하기로 했다.

더불어 수사가 10년간 이어지면 장기미제 살인사건 지정심사위원회로 넘어가게 된다. 추가 단서나 목격자가 나오지 않아 수사가 어려울 경우 퇴직 수사관, 법의학자 등이 속한 장기미제 살인사건 지정심사위원회가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의 수사 지속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에 따라 각 지방청의 수사대상이 되는 미제 살인사건은 ▦경기 45건 ▦인천 7건 ▦부산 26건 ▦경남 10건 ▦전북 11건 ▦전남 18건 ▦대전 6건 ▦강원 15건 ▦제주 3건 등이다. 그 외 지방청은 미제사건 현황에 대해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한편 경찰청은 체제 개편을 통해 '제2의 태완이'를 방지하겠다는 굳은 각오를 드러냈다. 정용선 본청 수사국장은 지난달 23일 "국민 모두가 '끝까지 나를 지켜주는 경찰이 있다'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도록 경찰청에서는 살인범죄 미제사건을 지속 추적하여 반드시 검거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일선 경찰들 또한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의 역할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한 강력계 형사는 "사회적으로 공분을 산 미제사건을 사건 위주로 지속 관리해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피해자를 철저히 보호할 수 있는 등 미제사건 수사전담팀 확대의 파급효과가 크다"고 전했다.

다만 2000년 7월 31일 이후의 미제사건부터 해당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이목이 집중됐지만 공소시효가 만료돼 입법 제도에 따라 이번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사건들에 대해서는 아쉽다"며 "경찰 측에서는 더 이상 억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윤소영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