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 영국 본사 상대 손배소 제기피해자 530명 중 80% 옥시싹싹 사용하다 폐 손상영국 본사 항의 방문에도 반성 없자 국제소송 제기

서울 적선동 환경운동연합 카페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손해배상청구 관련 기자회견에서 크리시넨두 무커지 변호사가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제품을 들고 소송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윤소영 기자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지난 1일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이하 옥시싹싹) 사용으로 인한 피해자들을 대리해 국제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옥시싹싹의 제조ㆍ판매사인 RB코리아의 영국 본사 레킷벤키저(Reckitt Benckiser)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이번 소송 추진은 지난해 8월 26일 레킷벤키저의 한국 현지법인인 RB코리아를 살인혐의로 형사고소한지 1년 만으로 현재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양요안 부장검사)의 지휘 아래 강남경찰서에서 수사 중인 국내소송과 더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옥시싹싹 향한 국제 손배소 대기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적선동 환경운동연합 카페 회화나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제소송을 추진하게 된 과정을 밝혔다.

옥시싹싹 출시 후 2년 뒤인 2002년 옥시싹싹을 사용했던 김모 양이 원인 불명의 폐질환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국내 원인 미상의 폐렴 사례가 급증하자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대한소아과학회 등에서 문제를 제기하며 정부에 역학조사를 요청했다. 2011년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가습기살균제 사용자가 미사용자보다 폐 질환에 걸릴 확률이 47.3배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보건복지부는 2012년 동물실험을 통해 가습기살균제 성분인 PHMG, PGH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또한 지난해부터 올 4월까지 역학조사한 530명 중 155명을 가습기살균제 피해 정도 '1등급(거의 확실)'으로, 62명을 '2등급(가능성 높음)'으로 판정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피해자 530명 중 80% 정도는 옥시싹싹을 사용하다가 폐 손상을 입었다. 옥시싹싹은 가습기세정제 시장의 판매율 1위 제품으로 세탁세제 옥시크린, 습기제거제 물먹는 하마, 향균제 데톨 등을 제조ㆍ판매하는 RB코리아의 대표 상품이다.

RB코리아는 2001년 영국계 종합생활용품 기업인 레킷벤키저가 국내 동양화학그룹(현 OCI그룹)의 계열사 옥시의 생활용품사업부를 인수해 설립한 회사다. 레킷벤키저는 19세기 설립돼 지난해 21억3,000만 파운드(3조7,000억 원)를 벌어들였으며 런던증권거래소가 선정한 세계 100대 기업에 속한다.

이번 소송은 레킷벤키저에게 자회사 RB코리아의 제조물 책임을 묻는 형태다. 레킷벤키저가 옥시싹싹의 인체 유해성을 추가로 검사하지 않았으며 사용 경고 문구를 제품에 표시하지 않아 소비자의 피해를 유발했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손해배상 청구액은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해 피해 범위에 따라 산정됐다. 이와 관련해 원고 측 법률대리인인 크리시넨두 무커지 변호사는 "영국법이 2009년에 수정돼 2009년 이후의 제품 사용자들은 영국의 손해배상 요율에 따라 금액을 산정받게 된다"며 "영국의 손해배상 요율이 한국의 요율보다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고 말했다.

유가족 "원인 불명 사망인 줄 알았다"

영국 본사 레킷벤키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고(故) 김승준 군의 부친 김덕종씨는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김군은 2009년 5월7일 5세의 나이로 세상을 일찍 떠났다. 사망 사흘 전 고열로 병원을 찾은 김군은 폐 이상을 진단받았고 경북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지 이틀 만에 사망했다. 이후 환경부 조사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 '1등급(거의 확실)' 판정을 받았다.

김군의 가족은 2000년대 초부터 집안에서 가습기를 이용할 때마다 옥시싹싹을 물에 타 함께 사용했다. 김덕종씨는 지난 1일 기자회견에 참석해 "정부가 (옥시싹싹이) 유해하다고 발표하기 전까지는 집에서 옥시싹싹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어 김씨는 "아이가 원인 불명으로 사망한 줄 알았다. 그런데 2011년 정부 발표로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인 것을 알게 됐다"며 "올 6월 영국 본사에 항의 방문을 갔다. 레킷벤키저와 3차례 협상을 가졌는데 반성 기미가 전혀 없어 국제소송에 참가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고(故) 이시연씨는 올해 5월 9일 충남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폐섬유화증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씨는 2002년부터 원인 미상의 각종 폐 질환을 앓아 수술을 받는 등 13년간 투병생활을 해왔다. 이씨 또한 김군과 마찬가지로 '1등급(거의 확실)' 판정을 받았다.

이씨는 2011년 보건복지부의 가습기살균제 유해성 발표 이전까지 옥시싹싹을 비롯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이씨의 남편 이예도씨는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집사람이 가습기살균제를 1999년부터 사용했는데 2002년부터 병원생활하다 사망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씨는 "아내의 사망 이후 소송이나 사회적인 제도를 통해서 (가습기살균제 제조ㆍ판매 기업에) 책임을 묻거나 보상을 받을 방법이 없었다"며 "국내소송보다는 국제소송의 (승소) 가능성이 더 높아서 관련 사항들을 확인하고 국제소송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레킷벤키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은 10세 이하 어린이 3명, 임산부 3명, 성인 5명으로 총 11명이 참여했다. 이 중 현재 치료중인 환자는 5명이고 이 중 1명은 폐 이식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나머지 6명은 폐 질환으로 사망해 유가족이 소송을 대리한다.

소송을 이끄는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530명이고 그중 사망자는 142명이다. 그런데 옥시싹싹 사용으로 사망한 사람만 100명이다"며 "소비자들이 다치고 죽었는데 해당 기업은 공식 사과와 피해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영국 본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준비하게 됐다"고 전했다.

英 본사 상대 승소 가능성은

이번 소송과 관련해서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레킷벤키저 측은 영국 본사와 RB코리아는 독립적인 각각의 회사라 법적으로 별개며 이번 사태와 관련해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무커지 변호사는 상황이 원고 측에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소송은 여러 면에서 원고 측에 유리하다"며 "소송에서 피해 사례 증거로 정부의 조사 자료만큼 좋은 증거는 없다. 또한 영국에서 소송이 진행돼도 증거법은 한국법이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소송에 한국의 제조물책임법이 적용되는데 기업은 제품 결함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하면 그 자체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옥시싹싹에 레킷벤키저의 마크가 찍혀 있어 레킷벤키저는 한국의 제조물 책임법에 따라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제품의 안정성을 문구로 표시하지 않은 경우 기업의 책임을 묻기 쉽다"며 "레킷벤키저의 자회사인 RB코리아가 옥시싹싹의 안정성 경고와 관련해서 한 행위는 한국의 기본법에 위반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소송에 소요되는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커지 변호사는 "레킷벤키저는 법정에 가기 전에 합의를 제시할 것"이라며 "가정용품을 판매하는 글로벌 기업이 산모와 아이들을 죽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미지에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소송을 비롯한 전 과정은 공익소송 차원에서 무료 변론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최 소장은 "소송에서 이기면 당연히 피고 측이 배상금, 소송비용, 법원에 제출하는 경비 모두를 댈 것"이라며 "만약 지게 되더라도 원고 측으로부터는 소송비용을 받지 않겠다"고 전했다.



윤소영 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