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치론 "희망의 사다리 살려야"vs폐지론 "국민과의 약속 지켜야"

8월 27일 오후 서울 계동 헌법재판소 입구에서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 대표들이 헌재 민원실에 헌법소원 청구 서류를 접수하기 전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국회의원 로스쿨 출신 자녀 특혜 채용 논란 점화
'현대판 음서' 악용 비판에 '예외를 일반화' 반론
사시 찬반 논쟁 넘어 양측 '세력화' 압력단체 역할
존치론 "개천에서도 용 나는 희망의 사다리 유지돼야"
폐지론 "사시 문제 고려해 만든 제도 지켜져야"
전문가 "국민 입장에서 봐야$ 밥그릇 싸움은 문제"

2017년 12월 31일 폐지 예정인 사법시험(사시)을 두고 법조계의 찬반 논란이 격렬해지고 있다. 2017년에 치러지는 사시의 경우 전년도 1차 합격자를 대상으로 2차·3차 시험만을 시행하기 때문에 사실상 사시 폐지가 1년도 안 남은 셈이다.

사시 출신 변호사들과 사시 수험생들, 법학과 교수들은 사시 존치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다각도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변호사들과 로스쿨 재학생들, 로스쿨 교수들은 치열한 반격에 나서고 있다.

사시 존치론과 폐지론은 타협안을 도출하지 못한 채 전면전 양상을 띠고 있다. 일각에선 '국민' 입장에서 접근하지 않고 서로'밥그릇 챙기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상대 진영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가 난무한 가운데 사시 존폐에 관한 양측의 입장과 그간의 활동을 살펴봤다.

8월31일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전국 법학전문대학원 원장단 긴급 기자회견에서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오수근 이사장이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로스쿨 출신 고위층 자녀들 도마에

최근 로스쿨 출신의 정계 인사 자녀들이 취업 특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역임한 나승철 변호사를 포함한 724명의 변호사들은 지난달 18일 국회 정론관에서 윤후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사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변호사들은 윤후덕 의원이 국회의원의 지위를 남용해 LG디스플레이 측에 E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딸 윤모씨의 취업을 청탁했다고 주장했다. LG디스플레이는 대규모 공장을, E대학은 대규모 부지를 윤 의원의 지역구인 파주에 보유하고 있다.

사태가 확산되자 윤 의원은 정황을 일부 시인했다. 2013년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대표에게 딸의 채용 지원 사실을 알린 바 있으나 딸이 E대학 로스쿨을 수석 졸업했기 때문에 자격에 있어서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윤 의원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 나승철 변호사는 이번 사건이 단순히 정치인의 인사 청탁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나 변호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윤후덕 의원, E대학 로스쿨, LG디스플레이는 파주를 접점으로 삼각관계를 이루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나 변호사는 "윤 의원 딸의 로스쿨 입학부터 취업 과정까지 의혹이 제기됐지만 입증을 할 수가 없었다"며 "특히 고위층 자녀들의 로스쿨 부정입학 얘기가 꾸준히 제기돼 왔는데 로스쿨 운영 자체가 불투명하다 보니 이를 입증할 수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다"고 말했다.

로스쿨의 문제점은 국내 도입이 처음 제기됐던 1995년 이후 지속된 뜨거운 감자였다. 정부는 법조계의 폐쇄성과 사시 수험생의 적체로 인한 인력 낭비를 문제로 들어 2007년 법조인을 양성하는 방안으로 로스쿨 제도를 운영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하지만 사시의 대안으로 도입된 로스쿨은 '돈스쿨'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로스쿨 제도를 통한 다양한 분야의 법조인 양성과 법률 서비스 제고를 주장했지만 한해 1,500만 원을 웃도는 국내 25곳의 로스쿨 등록금은 부유층의 전유물로 비춰졌다. 법조인 지위가 대물림되거나 상위 기득권 층에 유리하게 작용해 '현대판 음서(蔭敍)'라는 비판도 상당하다.

이재협 서울대 로스쿨 교수 등 3인이 지난 6월 30일 발표한 '로스쿨 출신 법률가, 그들은 누구인가?'는 로스쿨 제도가 고소득층에게 유리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로스쿨 1~3기 308명, 사법연수원 40~43기 300명, 사법연수원 39기 이전의 변호사 412명의 사회적 배경을 비교분석한 결과는 이를 뒷받침했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로스쿨 출신의 부모가 사시 출신의 부모보다 학력ㆍ소득 면에서 상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부친과 모친의 학력이 대졸인 경우는 로스쿨 출신이 각각 67.5%와 52%, 사법연수원 출신이 62.9%와 42.8%로 로스쿨 출신의 부모 학력이 높았다.

또한 부모가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인 경우는 로스쿨 출신이 18.5%, 사법연수원 출신이 16.7%로 일정 수준의 차이를 보였다. 부모 중 직업이 기업의 경영진인 비율은 로스쿨 출신이 24.7%, 사법연수원 출신이 14.7%로 10%나 높았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사시 출신의 현직 변호사는 "법조계 학벌 타도라든지, 지역균형발전 등 로스쿨 도입 취지 가운데 하나라도 달성된 것이 있는가"라며 "로스쿨이 다양성을 취지로 국내 도입됐는데 다양한 배경의 법률전문가가 늘어났는지 의문이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로스쿨 입학생들은 다양화됐을지 몰라도 여전히 스카이(서울ㆍ고려ㆍ연세대) 출신의 대형 로펌 취업 비율이 높다. 그리고 로스쿨 도입 후 오히려 서울에서 활동하는 변호사의 비율이 더 늘었다"며 "로스쿨의 문제점이 여기저기서 제기되는데 내막을 알 수 없으니 의혹만 커져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시는 경제적 약자의 희망 사다리"

로스쿨 출신의 고위층 자녀들의 특혜 논란이 최근 불거지자 사시 존치를 주장하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올 1월 각각 대한변호사협회장과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에 당선된 하창우 변호사와 김한규 변호사가 신호탄을 쐈다.

하창우 대한변협 회장은 지난 1월 12일 당선 확정 당시 "희망의 사다리인 사법시험은 반드시 존치시키겠다"며 사시 존치를 위한 변호사 선발제도 개혁 특위 및 대관전담부서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김한규 서울변회장 또한 당선된 지난 1월 26일 "로스쿨 합격이 스펙ㆍ나이ㆍ학벌ㆍ집안ㆍ재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말이 돌 정도로 불투명하다"며 "사시 존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홍보 전담 기구를 만드는 등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4월 29일 서울 관악구을에서 당선된 오신환 새누리당 의원은 사시 존치 측의 행보를 넓혔다. 지난 6월 8일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변소사시험법ㆍ사법시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또한 지난 6월 18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국회 대토론회'를 열어 사시 존치 측의 입장에 힘을 실었다.

사시 존치 측의 세력이 커져가는 가운데 두 해 남은 사시에 매진한 수험생들도 팔을 걷고 나섰다.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은 지난달 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기자실에서 사법시험 존치를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연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은 이권 수호를 위한 바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7일 사시 폐지를 규정한 변호사시험법과 관련해 평등권, 직업선택의 자유, 공무담임권을 침해받았다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어 나흘 뒤인 지난달 31일 '로스쿨은 법조계 신 기득권'이라는 구호 아래 성명서를 제출했으며, 지난 9일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로스쿨 출신의 자녀를 둔 김창종ㆍ안창호 재판관을 사시존치 헌소에 기피한다는 신청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대한법학교수회와 다른 수험생들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대한법학교수회는 지난달 31일 국민다수가 사시존치에 찬성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해 제자들의 어깨에 힘을 보탰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사시존치 법안을 입법청원했다. 이들은 지난 4일 성명서를 통해 "이번 입법 청원은 사법시험을 존치하되 선발인원을 200명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처음으로 제시하고 있다"며 "로스쿨 측은 무조건 사법시험 존치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사법시험과 로스쿨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지 해법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법시험 폐지는 국민과의 약속"

사시폐지를 주장하는 측은 사시존치를 주장하는 측의 움직임과 더불어 거세지는 로스쿨 전체를 향한 비난에 단호하게 대처하고 있다. 사시존치 측의 로스쿨을 향한 일방적인 주장이나 비난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하고 항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한변협 회원 가운데 119명의 로스쿨 출신 법조인들이 올해 처음 움직임에 나섰다. 법조화합을 위한 대의원협의회는 지난 6월 17일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시존치를 주장하는 대한변협 집행부의 행동에 이의를 제기했다.

최익구 법조화합을 위한 대의원협의회 회장은 "변협 집행부는 사시 존치를 거론하며 법전원(로스쿨) 제도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며 "변협 집행부 주장은 독단적으로 이뤄졌고 법전원 출신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부추겨 변호사회를 분열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로스쿨 재학생들 또한 사시존치 측의 행보에 부당함을 제기하며 적극적인 반발을 보였다. 로스쿨학생협의회는 지난달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로스쿨 제도를 왜곡하는 일부 국회의원과 사시출신 변호사들을 비판했다.

로스쿨 원장단도 기자회견을 열어 예정된 사시폐지를 주장함과 동시에 로스쿨을 향한 비난을 반박했다. 오수근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사법시험 폐지는 국민과의 약속이다' 기자회견에서 "변호사는 시험에 의한 선발이 아닌 교육을 통해 양성돼야 한다"며 사시폐지를 주장했다.

이어 오 원장은 "사시 존치론자들은 로스쿨 등록금이 비싸기 때문에 사법시험이 서민의 희망 사다리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틀린 주장"이라며 "로스쿨 평균 등록금은 1년에 1,532만원이지만 40%는 장학금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실질 등록금은 894만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단 한 번도 입학전형이 불공정하다고 해서 법적으로 문제된 적이 없다"며 "왜곡된 사실을 근거로 하는 주장이며 설사 그러한 의혹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개인의 문제지 로스쿨 제도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양측의 갈등이 팽팽해지는 가운데 사시폐지를 주장하는 측은 로스쿨 출신의 법조인으로만 구성된 한국법학전문대학원 법조인협의회(한변협)를 지난 4일 출범했다. 이들은 로스쿨 출신의 입장을 대변하며 사시존치를 주장하는 대한변협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자 마련됐다.

김정욱 한변협 회장은 지난 4일 서울 역삼동 대한변호사협회 회관에서 "로스쿨에 대해 왜곡되지 않은 정확한 정보를 알리겠다"며 "(사시존치 측의) 정당한 비판은 환영하지만 일방적인 주장이나 비난에 대해서는 의견을 표명하고 항의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다수의 로스쿨 출신 법조인들은 사시 존폐 문제로 인해 로스쿨 전체를 향한 거센 비난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서울 상위권 대학의 로스쿨 출신이자 현직 변호사인 김모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여론몰이 식으로 로스쿨을 흠집 내는 사시존치 측의 행동에 부당함을 제기했다.

김씨는 "현직에 있는 사시 출신과 로스쿨 출신 법조인 가운데 부모가 특권층이라고 할 만한 비율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며 "실제 로스쿨 재학생들만 봐도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니는 평범한 소득계층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시존치 측은 로스쿨을 '현대판 음서제'라며 폄하하는데 일부 특권층의 꽂아주기 문화와 맞물려 로스쿨이 희생양이 된 듯하다"며 "법조계에서 이러한 분열과 잡음이 생기는 것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씨는 "로스쿨이 학생들을 뽑을 때 평가 방식이나 점수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물론 문제"라며 "그러나 변호사 시험에서 로스쿨 학생들이 전원 합격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합격률이 현재와 같이 50% 밑으로 계속 유지된다면 로스쿨 출신들의 자격 논란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윤소영 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