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세계 대통령' '여성 대통령' 한국 위상 높여… 사회 벽 깬 '1호'
남성 조직 우월한 법조계·경찰에서 '최초 여걸'들 맹활약
경제계, 공직 '1호'들 사회 발전 기여하며 '유리 천장' 깨기도
사회 다양한 분야 독보적 활동… 문화·스포츠계 '1호' 국민에 감동
1964년 창간한 <주간한국>은 국내 시사주간지 '1호'로 올해 51돌을 맞는다.
광복ㆍ분단 70년을 거쳐오는 동안 국내 각 분야에는 '1호'들이 존재해 왔다. 이들의 의미 있는 활동과 역할은 당대의 주목을 받았고 국가 발전과 위상 제고에 기여하기도 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른바 '대한민국 1호'들은 그 시대를 반영하면서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아직 생존해 있는 '대한민국 1호'들의 발자취를 통해 우리 시대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최초의 '세계 대통령' '여성 대통령' 나와
역사 이래, 해방 이후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남성 분야로 여겨졌던 '정치'가 흔들리고 있다. 남성 중심의 정치 관념을 확실하게 깬 사건은 2012년 대통령의 당선이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은 정치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남성 전유물로 여겨졌던 '정치'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인 박 대통령은 1979년 부친 사후 조용히 지내다가 1998년 4월 보궐선거로 정치에 들어선 후 '스타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다. 여당 대표를 지낸 박 대통령은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야당 후보인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누르고 당선돼 '대한민국 1호' 여성 대통령이 됐다. 또한 최초의 부녀 대통령, 최초의 이공계 학과 출신 대통령의 기록도 갖고 있다.
박 대통령은 임기 3년 차에 이르기까지 지지율이 최하에서 최고까지 등락을 거듭했지만 최근 남북관계 변화와 중국 순방 등으로 지지율이 50%를 넘어서고 있다. 앞으로 유엔 연설과 미국 방문 등으로 지지율이 더욱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초의 여성 총리 등장도 정치권을 강타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대한민국 1호' 여성 총리로 김대중 정부에서 16대 국회 비례대표로 정계 입문했고 여성부 초대장관을 지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환경부 장관을 맡았으며 2006년 3월 이해찬 총리가 사임함에 따라 그해 4월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가 됐다.
남성 중심 법조계ㆍ경찰의 '여걸'
법원과 검찰, 경찰은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가 발달한 곳으로 여성이 적응하거나 역량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이런 남성 위주의 조직에서 두드러진 활동으로 주목받은 '최초의' 여걸들이 있다.
김영란(59ㆍ사법연수원 11기) 전 대법관은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재직 시나 퇴직 후 활동으로 주목받았다. 김 전 대법관은 1978년 제20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 2004년 대법관 선발 당시 만 48세의 젊은 판사로 60여 명의 선배를 제치고 대법관으로 임명돼 '대한민국 1호' 여성 대법관으로 많은 화제를 낳았다.
김 전 대법관은 사직 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시절이던 2012년에는 소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주창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기도 했다. '김영란법'은 올 초인 1월 8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데 이어 3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친 후 시행될 예정이다. 김 전 대법관은 현재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강 변호사는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개혁적인 업무 추진과 발랄한 언사로 주목을 받았지만 파격적인 행보로 법조계 안팎의 반발도 컸다. 강 변호사는 법무부 장관 사직 후 2006년 제4회 지방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공천으로 서울 시장에 출마했으나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의 오세훈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현재는 법무법인 원 고문 변호사로서 서울과 제주 분사무소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최초의 여성 검사장인 조희진(53·사법연수원 19기) 제주지검장은 검찰역사를 새로 써내려가고 있다. 조 지검장은 고려대 법대를 나와 1987년 사법시험에 합격, 1990년 서울지검 검사로 임관한 뒤 법무부 과장, 서울 중앙지검 부장검사, 차장, 지청장 등 모든 직책의 '여성 1호'는 그녀의 차지였다. 조 검사장은 업무 능력에서도 남성 검사 이상으로 역량을 보여줬고 전체 검사의 27%에 달하는 여성 검사의 맏언니로 검찰 내 여성 인력 증가에 따라 각종 여성정책을 추진하는 데 앞장서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찰에서는 여성 최초로 치안정감에 오른 이금형(58) 전 부산지방경찰청장이 '금녀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전 청장은 지방 상업고 졸업 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해 최초 여성 치안감(광주지방경찰청장)에 이어 경찰 내 2인자인 최고위직인 치안정감(경찰대학장, 부산지방경찰청장)으로 2014년 공직을 마감했다. 이 전 청장은 특히 아동ㆍ청소년, 성폭력 관련 업무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보였다. 지난해 말 부산경찰청장 퇴임 후에는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석좌교수,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이사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포털ㆍ모바일 세계 개척… '유리 천장'깬 여성
IT 대기업으로 성장한 다음은 지난해 주식회사 카카오와 합병해 다음카카오로 출범했다. 최근에는 모바일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주도권을 카카오에 내주는 양상이다.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주와 한게임(현 NHN엔터테인먼트)의 창업자이며 카카오를 창업한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우리나라 포털과 모바일의 신세계를 연 '대한민국 1호'라 할 만하다.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은 최근 롯데가 '형제의 난'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등극으로 위상이 추락했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대기업을 일군 최초의 경제인이다. 신 총괄회장은 일본에서 1948년부터 껌 사업을 시작해 성공하면서 그해 주식회사 롯데를 설립했다. 이후 롯데상사, 롯데물산 등을 설립하면서 일본 10대 재벌이 되기도 했다. 1966년 이후에는 한국으로 사업을 확장해 롯데제과, 롯데호텔을 설립했으며 2015년 현재 10대 그룹으로 성장했다. 신 총괄회장은 신동빈 회장이 사실상 롯데를 지배하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지만, 국내 그룹 창업주 중 유일한 생존자로 남아 있다.
권선주(59) IBK기업은행장은 금융권의 보수적인 벽을 뛰어넘은 최초의 여성 은행장으로 2013년 이름을 올렸다. 권 은행장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78년에 중소기업은행에 입사해 2005년 CS 센터 센터장이 된 이후로 승진 가도를 달려 2013년 12월부터 제24대 기업은행 은행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권 은행장은 직원들에게 귀 기울이는 부드러운 리더십과 공과 사를 구분하는 단호함도 갖췄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주도적으로 핀테크와 인터넷은행에 나서 변화와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회 다양한 분야 '대한민국 1호'
'대한민국 1호 우주인'인 이소연(37) 박사는 2006년 정부가 선발한 우주비행사로 선정돼 2008년 4월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한국인 최초로 국제우주정거장에 열흘간 머물렀다. 우주여행을 마치고 귀환한 이 박사는 2년간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연구원으로 일한다는 계약조건을 이행한 후 2012년 미국으로 가 MBA 과정을 밟았다. 그가 항공우주 연구와 무관한 분야로 진출한 것을 두고 국가 예산 260억 원이 들어간 우주인 배출 사업이 결국 전시행정으로 끝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탈북자들의 국내 정착이 늘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운데 국회의원과 국내 박사가 배출되기도 했다. 새누리당 조명철(56) 의원은 '탈북자 1호 국회의원'으로 평양에서 태어나 김일성대학 교수로 지내다 1994년 7월 탈북했다. 조 의원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통일교육원 원장을 역임한 뒤 2012년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안찬일 박사는 '탈북자 출신 1호 박사'로 맹활약하고 있다. 안 박사는 평안북도 신의주 출생으로 1979년 귀순해 1997년 건국대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과 세계북한인총연맹 총재를 맡고 있다.
한국의 자랑이 된 문화, 스포츠인
한국을 빛낸 스포츠 영웅 중 각 분야에서 '1호'를 차지한 이들은 더욱 그 의미가 남다르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스타들이기 때문이다.
양정모(62)는 올림픽 참가 역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딴 주인공이 됐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 참가한 양정모는 레슬링 부문에서 첫 금메달을 따 국민에게 감동을 줬다. '은반의 여왕' 김연아는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세계 기록으로 우승해 동계올림픽 역사상 피겨스케이팅에서 첫 금메달을 땄고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는 판정시비 끝에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아 최고의 골잡이 차범근(62)은 1979년 독일 분데스리가에 한국인 1호로 진출해 '차붐'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유럽 무대를 누볐다. 그는 독일에서 총 339경기를 소화하며 단 한 번도 퇴장당하지 않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90년 귀국한 뒤 25년간 축구교실을 열고 있다. 차범근의 해외에서 활약은 이후 박지성을 비롯해 손흥민, 기성용, 이청용등 이 해외 프로 무대에서 활동하는 발판이 됐다.
산악인 엄홍길은 아시아 최초로, 인류 역사상 8번째로 히말라야 8,000m급의 위성봉 얄룽캉을 완등했다. 현재는 엄홍길 휴먼재단 상임이사를 맡아 세계 저소득층의 아이들을 위한 교육과 의료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수많은 여성 연주자들이 음악계에서 활약하지만, 유독 지휘계는 '금녀의 벽'이 높다. 성시연은 그 벽을 깨뜨린 1호 여성 지휘자로 대한민국 오케스트라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임요환과 홍진호 등 프로게이머 출신의 방송인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e스포츠 문화가 대중화하는 데는 국내 최초의 프로게이머 신주영의 역할이 컸다. 신주영은 한국인 최초로 블리자드 래더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에 처음으로 '프로게이머'라는 용어가 소개됐다. 그는 PGL에 등록된 최초의 한국인 프로게이머로 한국 최초의 프로게임단 '청오 SG'를 결성하기도 했다.
김민정 인턴기자 mj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