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2만 명… 국내 삶 버거워 탈출

20대 학생부터 50대 학부모까지, 탈출구 찾는 사람들 늘어
지난해만 2만여 명 국적 포기…자발적 이탈자 지난해 95% 급증
국적 취득자는 최근 감소 추세…2년 연속 유출자가 더 많아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대부분 취업난과 경쟁을 부추기는 생활에 지쳐 유학과 이민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 7월까지 한국 국적 포기자 수는 총 5만2093명에 달한다. 한 해 평균 1만9000여 명이 한국 국적을 포기한 셈이다. 또한 유학ㆍ이민 박람회를 찾아 상담하는 방문객들도 급증하고 있다. 가족ㆍ친구와 멀리 떨어져 살더라도 취업난에 외국행을 선택하는 경우도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이 싫어서’ ‘취업이 힘들어서’ ‘자녀 교육ㆍ취업을 위해’ 등등 여러 이유로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이들을 살펴봤다.

국적 포기자, 신청자보다 1만 명 이상 많아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복수국적자가 한국 국적을 선택하지 않은 ‘국적상실자’와 한국 국적을 포기한 ‘국적이탈자’가 1만9472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발적으로 국적을 포기한 이탈자 수는 1332명으로 지난해 677명과 비교해 95% 급증했다. 이는 국적법이 개정되며 국적 포기 절차가 까다로워지자 국적을 버린 사람이 급증했던 2011년 1324명과 맞먹는 수준이다.

국적상실자 수는 1만8150명으로 전년도보다 1263명 줄었다. 국적을 버린 사람의 목적지는 미국이 전체의 61%(1만1159명)로 가장 많았으며 나머지는 캐나다 18%(3319명), 일본 11%(2062명) 호주 6%(1119명) 순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2014년 말까지 전체 국적상실자 수는 43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국내 국적을 취득하고자 하는 국적신청자 수는 2011년 이후 3년간 감소세를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귀화인원이 줄어든 가운데 2012년 이후 대한민국 국적을 다시 찾겠다는 국적회복자 신청자도 2년 연속 줄고 있다. 지난해 국적취득자 수는 1만7079명으로 전년도 2만1266명에 비해 4187명(24%) 줄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적포기자가 신청자보다 많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올해 7월까지의 국적 상실ㆍ이탈자는 1만2531명으로 국적신청자 1만1183명 보다 많은 상황이다.

이춘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국적을 포기하는 계층과 국적포기자가 취득자보다 많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경쟁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지표가 될 수 있다”며 “계층별로 원인을 분석해 지원대책을 정책 기조에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취업난 피해 이민 간다”

고된 직장 생활과 취업난을 피하기 위해 외국행을 택한 ‘코리아 난민’이 늘어나고 있다.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 등 열악한 근무 환경과 전례 없는 취업난으로 인해 한국을 떠난다는 것이다.

이민을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대학생 최 모(25) 씨는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온 이후 그 나라의 문화가 좋았다”며 “아르바이트만 해도 생활이 가능하고 여유 있는 삶이 가능한 점에 떠날 결심을 했다”고 밝혔다. 취업 준비생 정 모(27) 씨는 “취업이 너무 힘들었다”며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서류에서부터 탈락해 희망이 없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더 많은 기회가 있는 외국으로 떠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국을 벗어나려는 원인은 비단 물질적 성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분석이 있다. 삶의 ‘만족도’로 대표되는 가치들의 빈곤이 한국 탈출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삶의 질이 중요한 가치로 꼽히며 청년 세대들을 중심으로 한국을 떠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력해도 삶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탈한국’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한다.

자녀 스트레스 걱정, 이민 가는 부모들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교육을 위해 해외 유학과 이민을 고려하는 학부모들도 늘고 있다.

자녀 교육을 위해 필리핀 이민을 택한 조 모(46) 씨는 “과열된 한국 교육 환경을 딸들에게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며 “성적에 맞춰 대학에 들어가고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일을 경쟁하게 만드는 사회를 떠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영어 교육에도 좋고 아이가 스트레스를 덜 받을 것 같아 취업까지 그곳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20대에서 50대까지 한국의 경쟁 사회가 싫어서, 취업이 힘들어서, 자녀의 교육과 취업을 위해 외국행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이주개발공사의 박소연 이사는 “최근 20대들은 해외 유학 상담보다 취업에 대한 부담감으로 영주권을 취득하려는 이들이 더 많은 상황이다”라며 “유학을 경험했던 30대와 명예퇴직을 앞둔 40대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이민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과거에는 생계형 이민으로 외화벌이를 위해 나가는 이들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자녀교육과 함께 노년에 편하게 살고자 이민을 준비하는 상담이 늘었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한별의 김이식 미국변호사는 “요즘에는 자녀들의 영주권 취득을 위해 투자 이민이 많이 늘어난 상황이다. 대학입시나 취업 때문에 영주권을 따려는 부모가 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준비 없는 현실 도피성 유학과 이민은 경계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박 이사는 “취업을 할 수 있는 영주권이 보장되는지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이 변호사는 “취업을 미끼로 거액을 수수하는 대행사를 조심해야 한다”며 “투자이민은 3~5년의 장기 프로젝트이다 보니 영세 업자들은 거액을 받고도 프로젝트를 성공시키지 못해 소송을 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김민정 인턴기자 mj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