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백기 투항은 표적수사 때문?카카오, 1년 만에 검찰 감청 협조로 방향 바꿔검찰 각종 표적수사로 압박 의혹… 작년과 같은 '사이버 망명' 재연되나

지난해 12월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와 시민단체 '사이버사찰긴급행동' 관계자들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정 부대표 재판에서 확인된 카카오톡 증거자료의 위법성과 대응 계획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카카오가 1년 만에 검찰에 문을 열었다. 카카오는 공식 입장을 통해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른 통신제한조치에 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른바 검찰의 감청에 협조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카카오의 이번 조치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카카오가 지난해 감청을 거부했던 상황과 변한 것이 없는데 1년만에 돌연 입장을 바꾼 것이다. 여기에는 지난해부터 카카오를 향해 쏟아진 '표적 수사'에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국내 모바일 메신저 자리 1위를 굳건히 지켜온 카카오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대법원, "카카오 메시지는 감청 대상 아냐"

지난 6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김진태 검찰총장은 카카오와의 감청 문제를 어떻게 정리했냐는 질문에 "양 기관이 원만하게 제대로 집행하는 걸로 방법을 찾았다"고 밝혔다. 카카오 또한 "신중한 검토 끝에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른 통신제한조치에 응하기로 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지난해 카카오톡은 감청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세월호 관련 시위로 구속된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 수사 과정에서 그의 카카오톡 단체방에 참여한 2000명의 대화명과 전화번호가 검찰에 제공됐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비난 여론에 휩싸인 것이다. 이에 대해 이석우 전 다음카카오 대표가 실정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더라도 감청영장집행에 나서지 않겠다고 못박기도 했다.

강수를 뒀지만 1년만에 카카오는 입장을 바꾸게 됐다. 이에 대해 카카오 측은 지난해 협조 중단과는 다른 방식이라 설명했다. 검찰에서 밝힌 바와 같이 단체대화방의 경우 수사대상자를 제외한 나머지 대화 참여자들에 대해선 익명으로 처리해 자료를 공개한다는 것이다.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익명화 처리된 사람들 중 범죄 관련성이 있는 사람이 나올 경우만 대상자를 정해 추가로 전화번호를 요청한다는 것. 카카오 측은 "관할 수사기관장이 승인을 받은 공문으로만 요청하도록 절차를 엄격히 규정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부연 설명에도 불구하고 카카오가 사실상 검찰에 굴복을 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년 전과 상황이 별로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1년 전 카카오가 감청을 거부한 이유는 검찰이 카카오를 압수 수색하는 방식이 '불법 감청'이기 때문이었다. '감청'이란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대화를 듣는 것을 말한다. 검찰이 카카오톡을 감청하는 방식은 서버에 저장된 대화를 보는 것으로 이는 '압수'에 해당한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의원은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카카오톡 메시지는 감청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역시 지난 2012년 10월 "통신비밀보호법상의 '감청'이란 그 대상이 되는 전기통신의 송ㆍ수신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우만을 의미하고, 이미 수신이 완료된 전기통신의 내용을 지득하는 등의 행위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 판결만 봐도 검찰이 카카오톡을 감청하는 방식은 감청이 아닌 압수라는 것이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검찰이 카카오톡을 감청하는 방식은 변한 것이 없다. 때문에 일각에선 카카오가 감청 거부 이유로 내세웠던 표면적 이유가 변하지 않았는데 감청을 허용하기로 방침을 바꾼 것에 대해 사실상 굴복한 것과 다름없다고 보고 있다. 카카오는 지난 1년간 홍역을 치러왔다. 검찰의 감청 영장을 거부한 지 두 달만에 '아동ㆍ청소년 보호에 관한 법'관련해 수사를 받기도 했다. 음란물 유통을 방치한 혐의였으나 포털사이트 대표를 소환하는 건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있었다. 여권 또한 다음을 포함한 포털사이트의 뉴스 편향성을 지적하며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검찰과 정치권의 압박에 사실상 카카오가 백기를 든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김범수 의장의 미국 원정도박 의혹은 카카오에겐 또 다른 짐이 되고 있다. 현재 검찰은 김범수 의장에 관한 의혹을 확인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검찰은 김 의장의 원정도박 의혹 내사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조상준 부장검사)에 배당하고 미국 수사당국과 공조해 김 의장의 금융거래내역과 카지노 환전기록 등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예전 같은 사이버 망명은 없어

물론 카카오가 지난 1년간 감청을 거부하면서 이끌어낸 성과도 있다. 우선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에 대한 공론화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국내 업계 1위 모바일 메신저로서 검찰의 압박을 피하는 게 사실상 어려웠다는 지적도 있다. 카카오에 이어 업계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네이버의 '라인'은 일본에 서버를 두고 있어 국내 사정기관이 협조를 요구하는 건 쉽지 않다. 게다가 '라인'이 해외사용자들을 기반으로 하는 것과 달리 카카오는 국내 시장에선 절대적인 비율을 차지한다. 올 1분기 기준으로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의 97%가 카카오톡을 사용한다. 높은 점유율 때문에 검찰이 카카오에겐 어떤 일이 있어도 감청 협조를 받아내리라는 의지가 강했을 것으로 보인다.

'버틸 만큼 버텼다'라는 다소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결국 감청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카카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상태다. 지난해 카카오톡 감청 논란이 일어난 후 스마트폰 이용자들 사이에선'사이버 망명'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보안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독일 메신저 텔레그램 등으로 이용자들이 이탈한 것이다. 이번에 카카오가 감청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알려지면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사이버 망명이 활성화되는 게 아니냐는 예측이 있었으나 현재로써는 그러한 움직임은 딱히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미 한 차례 감청 후폭풍을 겪은 만큼 예상보단 그 파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일반인들의 경우 감청 여부보다는 메신저가 가진 관계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카카오톡 메신저를 떠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는 지난 3분기 임지훈 신임 대표이사 선임과 함께 사명을 '다음카카오'에서 다음을 뺀 '카카오'로 변경했다. 새 수장과 함께 모바일 시대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감청협조 논란과 김범수 의장의 미국 원정도박 의혹으로 다시 한번 큰 산을 만나게 됐다. 카카오가 가야 할 길은 아직도 험난하기만 하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