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 성범죄 가해자 급증

남편 가둬 놓고 성폭행한 아내에 '강간' 혐의 인정
성범죄 피해자 된 남성들, 3년 만에 62.8% 증가
직장, 대학 등에서 '권력'관계로 성범죄 대상 되는 남자들
성범죄 관련 법ㆍ제도 점검하고 제도 시행 내실 기해야

남편을 강간한 혐의로 구속된 아내가 재판에 넘겨졌다. 2013년 강간죄의 피해대상이 '부녀'에서 '사람'으로 확대된 뒤 여성이 '강간 미수'로 기소된 사례는 있었지만, 강간 혐의가 적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성폭력 사건을 생각하면 남성이 가해자, 여성이 피해자인 구도를 당연시하지만 여성이 가해자인 성범죄가 늘고 있다. 남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3년 만에 62.8% 증가했다. 하지만 사회적 편견 등을 우려해 신고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앓이 하는 많은 남성을 포함하면 피해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여전히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가 많지만, 과거 성의 권력으로 이루어졌던 성범죄가 위계에 의한 질서로 옮겨지며 남성 피해자의 인권침해도 여성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피해자 남성을 가해자의 입장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이들에 대한 관리보호체계가 허술해 두 번 상처를 받는 남성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남편 묶어 놓고 성폭행 '부부 강간' 인정돼

검찰은 지난달 27일 남편을 가둬 다치게 하고 강간한 혐의로 심모(40)씨를 구속기소했다. 심씨는 지난 5월 서울 종로구의 한 오피스텔에 남편을 29시간 동안 가둔 채 오른쪽 어깨 등을 다치게 하고, 강제로 성관계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01년 결혼해 영국에서 살던 심씨 부부는 심씨가 사기와 공문서위조 등의 형사처벌을 받게 되며 사이가 멀어졌다. 올해 4월부터 별거한 부부는 5월에 한국으로 들어와 이혼하기로 했다. 심씨는 이혼에 유리한 증거를 확보하고자 김모(42)씨와 함께 남편을 감금한 뒤 청테이프로 묶고 한 차례 강제로 성관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혼 소송에 제출하고자 "혼외 이성 관계가 형성돼 더는 심씨와 함께 살기 원하지 않는다. 이혼의 귀책사유는 남편에게 있다"는 말을 남편에게 받아낸 혐의도 받고 있다. 남편 A씨는 조사과정에서 "아내가 날 묶은 채 성관계를 요구했을 때 예전에 본 사이코 영화가 떠올랐다. 거부하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어쩔 수 없이 응했다"며 "영화에서처럼 아내가 (성관계) 요구에 응할 때까지 나를 풀어주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진술했다고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첫 '남편 강간' 처벌 사례가 나올지 주목하면서 심 씨가 남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는지가 핵심 쟁점이라고 보고 있다. 검찰도 A 씨가 강압에 의해 성관계를 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심씨는 "성관계를 할 땐 남편의 결박을 풀어줬다"고 주장했지만, 남편이 성관계 후 14시간가량 더 묶여 있게 된 경위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피스텔에 아내와 단둘이 남겨진 A 씨가 성관계가 끝난 뒤 다시 묶였을 리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성관계 때도 남편이 결박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고 있다.

한편 내연남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몸을 묶은 채 성관계를 시도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8월 1심에서 무죄로 풀려난 전모씨(45)의 사례도 있었다. 전씨 사건에서 법원은 "수면제를 먹고 의식을 잃었다는 내연남이 유독 강간을 당할 뻔한 상황만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건 의심스럽다"며 전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평소 관계와 성관계 전후 상황도 법원 판단의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A 씨는 감금 직전 12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영국에서 귀국해 피로한 상태였고 성관계 전까지 15시간가량 묶인 채 물밖에 마시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A 씨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에 충분했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전 씨 사건에서 내연남은 "묶인 채 망치로 맞아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였다"고 진술했지만 이불에서는 오히려 전씨의 혈액이 내연남보다 더 많이 검출된 바 있었다. 한편 최근 부부간의 강간죄가 이혼 소송에 악용되는 사례가 있어 법원도 신중히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법원은 아내를 강간한 혐의로 고소당한 남편 신모씨(62)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아내가 우는 소리를 내며 성관계를 하고 그 내용을 녹음한 것은 이혼 소송을 염두에 두고 증거를 만들기 위해 연출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남성 성범죄 피해자 3년간 62.8% 증가

남성 성희롱에 대한 피해 사례가 처음으로 인정된 것은 지난 2002년이다. 2001년 당시 27세였던 장모 씨는 "40대 동료 여성 두 명이 지속해서 굴욕감을 느낄만한 신체 접촉을 해 왔다"고 호소했다. 당시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두 여성은 피해 남성에게 "내 거야, 손대지 마"등의 발언을 자주 했으며 껴안거나 허리나 허벅지를 만지는 등의 행동으로 피해 남성의 수치심을 유발했다. 장씨는 이러한 상황을 다른 상사에게 말했지만, 오히려 "증인이 없다"는 질책을 받은 후 직장을 나왔다고 전했다. 이후 서울 동부지방노동사무소의 근로감독관은 전후 사정을 파악한 후 '직장 내 성희롱'으로 초점을 바꿔 문제를 제기했고 결국 사정을 아는 동료의 증언으로 장씨는 법원에서 성희롱 피해 사실을 인정받고 손해배상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성범죄의 피해자가 된 남성들이 매년 급증하고 있지만 남성 피해자 보호나 예방책은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2일 경찰청이 새누리당 강기윤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남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범죄는 2011년 829건에서 2012년 920건, 2013년 1164건, 2014년 1350건으로 3년 만에 62.8%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14년 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한국의 범죄현상과 형사정책' 보고서에서도 2007년까지 전체 성범죄자의 1% 미만이던 여성 성범죄자 비율은 2013년 2.5%로 높아졌다. 조직생활을 비롯한 다양한 이유로 신고하지 않은 남성들을 포함하면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남성 성희롱 인정 후 2012년 11월, 국회에서 성폭력 관련 법률에서 친고죄 조항 폐지가 일어나며 강간의 객체가 '부녀'에서 '사람'으로 변경됐다. 성폭력 피해자를 여성으로 한정하던 그간의 형법에서 변화한 것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인 성폭력의 피해자를 '사람'으로 확대한 것은 남성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고 가해자 처벌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형법 개정 이후 강간죄의 객체에 성인 남성까지 포함되며 법률상 차별은 사라졌지만 남성들은 여전히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는 데 소극적인 상황이다.

대학 내 남성 피해자들

지난 1월 연세대학교 학생대표 수련회에서 여학생이 남학생을 성추행해 가해 여학생에게 간부직 자진사퇴를 요구하며 논란이 됐다. 여학생 A씨는 술에 취해 남학생 B씨의 얼굴에 입을 맞추는 등 성추행을 하고 성적 수치심을 주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에 있던 또 다른 남학생 C씨를 때리기도 했다. 이를 목격한 학생회 간부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A씨는 "술에 취했던 상황이어서 기억도 없다"며 학생회의 요구대로 성폭력 가해자 교육을 이수하고 학생회 임원직을 자진사퇴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교수의 직위를 이용해 학생을 희롱하는 사건도 있었다. 지난 2월 울산과학기술대학교의 김 모 여교수가 남학생들을 몇 달간 성희롱한 사실이 확인됐다. 김씨는 연구보조원 학생들과 술을 마시던 중 성관계를 연상시키는 질문을 던져 물의를 빚었다. 해당 남학생은 이 같은 사건이 일어나자 연구보조원을 그만두고 더는 연락하지 말 것을 요청했지만 김씨는 연락을 지속했다.

김씨는 또 다른 남학생에게 "네가 졸업할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다", "네가 원한다면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하겠다"며 손을 붙잡았다. 이러한 성희롱에도 불구하고 김씨에게 내려진 징계는 정직 3개월과 상담치료 권고뿐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지난 2013년에는 제자들을 성추행한 의혹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의 여교수가 해임되기도 했다. 피해 학생들은 학내 대자보 등을 통해 정기공연 후 회식 등의 자리에서 해당 교수로부터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발언을 지속해서 들었다고 주장했다.

여성 상사가 무서운 남자들

직장생활 3년 차인 직원 A씨(30)는 40대 여성 B차장의 끊임없는 성폭력으로 직장을 그만뒀다. B차장은 A씨가 입사한 후부터 A씨의 엉덩이를 툭툭 치며 지나가고는 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 팀 회식에서 B차장이 권한 술을 마시다가 필름이 끊겼고 잠자리를 가졌다. A씨는 도중에 정신을 차렸지만 "곧 승진 인사가 있을 텐데 괜찮겠어?"라는 B차장의 협박을 들었다. 이후 B차장의 성추행은 더욱 심해졌고 A씨가 실수를 할 때마다 탕비실이나 계단에서 A씨의 몸을 더듬으며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

또한 휴대전화 부품 하청업체에 근무하던 C씨(27)는 지난해 같은 팀의 40대 초반 기혼여성인 D부장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다. D씨는 업무를 가르쳐준다는 이유로 C씨를 불러 옆에 앉히고는 "다리가 튼실하네" 등의 말을 하며 허벅지를 만졌다. 회식하는 날이면 옆자리로 와 몸을 밀착하는 등의 행동을 했다.

이처럼 여성 상사에게 성범죄의 피해자가 됐을 때 고민을 털어놓으면 "남자가 뭐 그런 걸 갖고 그러냐"는 말과 "남자가 무슨 성적 수치심을 느끼냐"라는 핀잔만 돌아왔다. 심지어 "너도 좋았던 것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고 전했다.

관련 법령에 따라 남성도 강제 추행의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여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했을 때의 사회적 시선과 업무상 지위 등의 탓으로 고소는커녕 상담조차 못하는 남성들이 많다는 것이다. 상담한 남성들도 성폭행 자체에 대한 수치심보다 '여자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더 창피해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신고나 상담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성범죄 결국 '권력'의 문제

오랜 세월 거의 모든 나라의 성폭력 피해자 대다수는 여성이었고 성폭력 발생의 원인이 가부장제 사회의 남녀 간 불평등에서 비롯됐었기에 성폭력은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간주해 왔다. 성폭력은 '성'의 권력으로 나타나 '남성 권력'의 형태로 나타났었지만, 사회가 변화되며 성으로 권력이 결정되는 것은 약화되고 '위계' 등의 다른 형태로 권력이 드러나고 있다.

남성이 성범죄의 피해자가 된 사례들은 성폭력이 성적인 욕망의 문제만이 아닌 위계와 권력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관련 법령도 개정됐지만, 막상 성폭행을 당한 남성들이 스스로 구제받기에는 여전히 어려운 현실이다. '무슨 남자가 성폭력 피해자냐'는 사회의 시선들 때문이다. 남성이 성폭력 피해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남성 피해에 대한 고정 관념으로 실제 접수되는 건수는 적은 상황이다.

한국남성의전화 이옥이 센터장은 "피해자의 다수는 여전히 여성이지만 남성 피해자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며 "남성들이 신고했을 경우 여자를 먼저 유혹한 것 아니냐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남성 피해자는 위계에 의한 성폭력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은 상황으로 수치심이나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피해자임에도 가해자의 입장으로 보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피해 사실을 호소하거나 적극적으로 신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성폭력 상담소나 성 고민 상담소가 많이 있지만, 대부분 여성 상담사가 많아 남성들이 터놓고 이야기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남성 피해자들을 구제할만한 방책들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남성들도 여성과 똑같은 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에 새누리당 강기윤 의원은 "성폭력 범죄의 대상이 남성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며 "최근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는 성범죄 근절을 위해 정부는 성폭력범죄 척결 의지를 바탕으로 관련 법과 제도를 점검하고, 제도 시행의 내실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정 인턴기자 mj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