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동맹국’에 포함…IS 추종자 국내 잠입 활동

지난 18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입국심사장에서 공항경찰대 대원들이 폭발물 탐지견과 함께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정부는 전날 국가정보원 주재로 국민안전처, 경찰청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테러대책 유관기관회의에서 테러 경보를 현재'관심'단계에서'주의'단계로 한 단계 올려 발령하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IS, 62개 '십자군 동맹' 국가 중 하나로 한국 '지목'
최근 5년 97건의 테러 피해로 한국인 38명 사상자
국내 불법체류자 급증 '다중시설' 테러 대비 허술해
테러방지법 14년째 제자리걸음… 여야 찬반론 극명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동시다발 테러가 전 세계에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어서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번 테러를 일으켰다고 자처한 IS는 한국을 '십자군동맹' 국가 중 하나로 포함했다. 올해 초 IS에 가담한 김 군 외에 IS 가담을 시도하던 내국인 2명이 적발돼 출국금지 됐고, 사제폭탄을 만들 수 있는 원료를 국내로 밀수하려던 외국인 IS 동조자 5명도 국가정보원이 적발했다. 그런가 하면 자발적으로 IS를 공개 지지한 국내인 10명이 있었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국제테러 조직을 따르는 인도네시아인이 검거됐다. 2010년 이후 국제테러조직에 연계됐거나 테러를 저지를 위험이 있는 인물로 지목돼 국내에서 추방된 외국인이 48명으로 밝혀지면서 우리나라도 테러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민간인이 이용하는 다중시설은 테러대비에 허술하고 국회에서 테러방지 관련 법안 논의는 14년째 제자리걸음을 하는 상황이다.

한국, 십자군 동맹국 중 하나

지난 13일 프랑스 파리 테러 사태가 발생한 뒤 한국도 테러에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는 한국을 포함한 62개국을 꼽으며 "십자군 국가의 시민을 살해하라"는 지명을 내렸다. IS는 정식 국가명인 'Republic of Korea(대한민국)' 옆에 괄호로 'South Korea(남한)'라고 표시했다. IS는 한국을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주요 서방국가는 물론 시리아, 이란, 러시아 등 61개국과 함께 미국 주도 대테러 활동에 동참하는 62개국을 꼽아 '십자군 동맹' 중 하나로 평가했다.

외교당국은 미국의 대테러 활동에 우리 정부가 지원하는 사실 때문에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한국이 IS의 직접 표적이 됐다는 정황은 없지만, 국제사회에서 미국을 지지할 가능성이 큰 나라 중 하나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한편 IS가 이라크의 요충지인 라마디를 장악하는 등 영향력을 확대하며 현지 공사 현장 건설사에서 근무 중인 한국인 안전 확보 문제가 떠오르기도 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 5월을 기준으로 현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사현장은 총 33곳으로 한화건설과 대우건설, 삼성엔지니어링, 현대건설 등 4개사 컨소시엄 등 30여 개 건설사가 공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공사현장에 근무하는 인력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036명이었다.

업계에 따르면 이라크 현지에서 이뤄지는 공사는 대체로 초중반 단계이기 때문에 이라크 내전 상황이 심화될 경우 공사 일정에 차질이 생겨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는 정세가 악화될 경우에는 이라크 내에서 체류하고 있는 인원을 축소하는 방법을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5년간 97건 테러로 38명 사상

지난 몇 년간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국내외에서 잇따르고 있다. 테러위험에 대한 징후는 점차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에 테러집단 알 마크디스가 성지순례객 버스에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해 한국인 3명이 사망한 사건과 밀입국을 통해 IS에 가담한 김 군 사건에 이어 최근에 IS는 우리나라에 잠입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보 당국이 16일 새누리당 송영근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0~2015년 해외에서 발생한 97건의 테러로 우리 국민 6명이 숨지고 32명이 다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85.5%인 83건은 우리 국민만을 대상으로 한 직접 테러였다. 지난 2014년 2월 이집트 시나이 반도 이슬람 무장조직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의 버스 자폭 테러로 우리 관광객 3명이 숨지고 15명이 다쳤으며, 2012년에는 시나이 반도에서 성지 순례단 3명이 베두인 세력의 공격으로 납치됐다가 석방되기도 했다. 이번 파리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IS의 활동 지역인 이라크를 비롯해 아프가니스탄ㆍ예멘ㆍ소말리아 등지에서 한국인 대상 테러가 일어났으며, 모두가 현지 진출 기업인과 교민, 여행객 등 불특정 다수를 목표로 한 테러였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한국인을 지목한 무차별적인 테러는 한국도 결코 테러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국정원은 지난달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IS 동조자 5명을 국내에서 감시 중이며, 헤즈볼라 대원들이 폭탄 원료를 밀반출하려다 실패했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달 내국인 2명이 IS에 가담하기 위해 출국하려다 정부 당국에 적발돼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국정원은 우리 국민 10명이 인터넷을 통해 IS를 공개 지지한 사례를 적발했지만, 관계 법령의 문제로 신원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고했다. 지난 2010년 이후 국제테러 조직과 연계됐거나 테러 위험 인물로 지목된 국내 체류 외국인 48명을 적발해 강제 출국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중 인도네시아 노동자 1명은 출국 후 IS에 가입해 활동하다 사망했다고 국정원은 보고했다. 이 인도네시아인은 출국 전 2년간 대구 성서공단에서 근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지난 18일 IS로 추종되는 불법체류 인도네시아인이 검거되며 국민적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테러 대비 허술한 상황

IS의 동시다발 테러가 발생한 뒤 불법 체류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한국도 테러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으로 국내 불법 체류자 수는 21만3565명이다. 2011년 통계치인 16만7780명보다 약 27% 증가했다. 정부는 테러 대응 차원에서 10년 이상 불법 체류한 외국인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테러에 가담할 가능성이 높은 극단주의자들이 시리아 난민으로 가장해 각국에 위장 입국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파리 축구장에서 자폭한 용의자 소유의 여권과 똑같은 여권을 소유한 난민이 세르비아에서 체포됐다. 현지 경찰은 여권 2개가 모두 위조된 것으로 여겨진다고 밝혔다. IS 대원이 위조 여권을 이용해 난민으로 위장한 사실이 공식 확인되며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는 국경이 거의 봉쇄됐고 폴란드는 난민수용을 즉각 중단했다. 한편 18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시리아 난민 200명이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밝혀져 이들에 대한 사후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파리 테러는 민간인이 많이 모이는 '다중시설' 6곳에 대한 테러였다. 한국 또한 다수의 민간인이 모이는 다중시설에 대한 대테러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평균 3000만 명이 이용하는 서울역은 경비 인력이 모두 24명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중 4분의 1인 6명은 외주 용역 직원이었고 평균 연령은 50대로 전문적인 대테러 훈련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역과 같은 공공시설 외에도 극장이나 쇼핑몰 같은 민간 다중시설도 테러에 대한 방책이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테러 대비 지침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테러방지법 14년째 표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테러방지법안은 국회에 14년째 발이 묶여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에 계류 중인 사이버테러를 포함한 테러 방지 관련 법안은 총 5건으로 전해졌다.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이 2013년 대표 발의한 '국가 대테러 활동과 피해보전 등에 관한 기본법'과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가 사이버테러 방지에 관한 법률안'은 2년째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프랑스 파리 테러를 계기로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계류 중인 테러 관련 법률안에 대한 심의가 예상되지만, 여야의 큰 의견차로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야당은 인권침해와 권력 남용 가능성이 커 테러 방지 기능을 국가 정보원에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정원이 권력의 아래에 있는 상태에서 국정원 직속으로 '국가대테러센터'를 설치해 감시 권한을 대폭 몰아줄 경우 민간인 사찰 강화 및 반정부 단체 통제 등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되고 인권침해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정부는 18일 '테러 방지 종합 대책' 논의를 위한 당정 회의에서 대테러 대비 예산으로 약 1000억 원을 반영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행 대테러와 관련된 법안은 출입국관리법ㆍ경찰법ㆍ형법ㆍ유해화학물질관리법 등 17개 이상의 법률에 분산되어 있어 효율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송영근 의원은 "평창 동계올림픽 등으로 우리나라가 테러 단체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큰 현시점에서 통합테러법의 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민정 인턴기자 mj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