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재력 따라 자녀 미래 결정 심화불평등 문제 전 세계 현상… 한국 변화 속도 빨라한국의 상속 재산 중요도 증가 추세… 머지않아 선진국 추월불만 표출에서 긍정적인 움직임으로 변화해야개인 자산 중 상속재산 비중 급등세… 2000년대 42%

사진=YTN 화면 캡처
최근 수저 계급론이 유행처럼 번지며 젊은이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수저 계급론은 부모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에 따라 자녀의 지위가 금수저ㆍ은수저ㆍ동수저ㆍ흙수저로 자동 결정된다는 계층 분류론이다.

수저 계급론을 단순한 젊은이들의 냉소로 치부할 상황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저성장ㆍ고령화로 근로 소득은 둔화되고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의 비중은 늘어나는 가운데 빈부 격차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헬조선'에서 '흙수저'의 '노오력'

'헬조선(Hell+조선ㆍ지옥과 같이 희망이 없는 한국 사회)'·'흙수저(부모의 가난으로 경제적 도움을 받지 못하는 자녀)'·'노오력(노력을 길게 발음해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노력 탓으로 돌리는 기성세대에 대한 풍자)'.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하지 않는 한국 사회를 풍자하는 신조어들이다. 이태백, 88만원 세대, 삼포세대, 잉여, 열정페이 등 20~30대의 자화상을 그려냈던 청년층의 신조어는 더욱 과격한 표현으로 변모하며 현실을 자조하고 있다.

청년층은 '헬조선'을 뱃속에서부터 구분된 수저 사회로 보고 있다. 태어날 때 부모에 의해 주거환경, 교육수준이 고정돼 미래의 삶이 결정되는 세태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등 수저의 소재로 정의 내린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기준표에 따르면 수저의 차이는 부모의 재산 규모로 결정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부모의 자산이 20억 원 이상이거나 가구 연 수입이 2억 원 이상이면 상위 1%의 '금수저', 자산 10억 이상 혹은 연 수입 8000만 원 이상은 상위 3%의 '은수저'다.

이어 부모의 자산이 5억 원 이상이거나 가구 연 수입이 5500만 원 이상인 경우는 '동수저'로 이들까지만 상류층으로 분류된다. 반면 부모의 자산이 5000만 원 미만이거나 가구 연 수입이 2000만 원 미만일 경우는 '흙수저'라는 굴레를 쓰게 된다.

'흙수저'로 분류된 젊은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유명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 흙수저 갤러리에 올라온 '흙수저 통장 잔고' '흙수저 아점' '추위에서 흙수저 살아남는 법' 등의 게시물은 이들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사회를 향한 불만을 반영한다.

지난달에는 배우 조재현의 딸 혜정 양이 '금수저' 논란에 휘말려 '흙수저'를 자처하는 이들의 공격 대상이 됐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모습을 공개했던 조혜정은 350억 원에 달하는 부친 건물의 점포에서 일하는 것으로 밝혀져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더불어 조혜정이 케이블 채널 드라마에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자 비난은 거세졌다. "아빠 후광 아니냐" 등의 악플 세례가 쏟아지자 오빠인 조수훈은 "저희 금수저인 것은 알아요. 금수저라고 조용히 찌그러져서 살아야 하나요?"라며 한동안 누리꾼들과 갑론을박을 펼쳤다.

전문가들은 수저 계급론과 신조어를 통해 세태를 자조하는 현상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민아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실을 향한 혐오 발언은 노력을 해도 성과를 이루기 힘든 사회에서 청년들의 박탈감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어 "양극화된 불평등이 부정적으로 표출되고 있는데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청년들이 투표에 참여하는 등 사회 참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방향으로 움직임이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속 재산 중요도 심화

부의 형성에 있어서 상속 재산의 중요성이 증가하며 불평등 문제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7일 공개된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의 '한국에서의 부와 상속, 1970~2013'에 따르면 한국인의 자산에서 상속 재산의 기여도는 증가 추세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 교수는 자산 형성에서 상속ㆍ증여가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대 연평균 27.0%에서 1990년대 29.0%, 2000년대 42.0%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자산이 총 100만 원인 경우 1980년대에는 73만 원의 근로 소득과 27만 원의 상속 재산으로 개인이 부를 축적하지만 2000년대에는 근로 소득 58만 원, 상속 재산 42만 원으로 상속 재산의 비중이 증가한 것이다.

더불어 국민소득 대비 연간 상속액의 비율은 1980년대 5.0%, 1990년대 5.5%, 2000년대 6.5%며 2010년부터 2013년까지는 8.2%로 급상승했다. 이를 두고 김 교수는 "어느 지표로 봐도 우리나라에서 상속의 중요성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의 상속 비중은 다른 선진국보다는 아직 낮은 수준으로 조사됐다. 2000년대 기준으로 개인의 자산에서 상속 재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독일 42.5%, 스웨덴 47.0%, 프랑스 47.0%, 영국 56.5%로 드러났다.

국민소득 대비 연간 상속액 비율은 2010년대 연평균을 따졌을 때 스웨덴이 8.2% , 영국은 8.2%로 우리나라와 비슷했고 독일(10.7%), 프랑스(14.5%)는 더 높았다

그러나 김 교수는 한국의 상속 재산의 중요도가 더욱 증가하며 머잖아 이들 선진국을 추월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1990년대 상속재산이 자산 형성에 기여한 비중이 낮았던 건 당시 선진국보다 고령화가 덜 진행됐기 때문이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또한 경제 규모가 확대되던 당시 부모로부터의 상속 재산이 없어도 개인이 부를 축적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았다고 김 교수는 주장한다. 실제로 상속 재산의 기여도가 낮았던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한국이 각각 8.8%, 7.1%의 고성장을 이룬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저축률이 30%대로 높았던 점이 부의 축적에 있어서 상속 재산의 기여도를 낮췄다고 설명했다. 높은 경제 성장률과 저축률 속에서 개인은 부모로부터의 상속 재산 없이도 스스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해석 또한 덧붙였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생산연령 인구가 늘고 고도성장이 이뤄졌던 80년대에는 상속·증여 자산의 중요성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자수성가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었다"며 "이러한 상황은 지속되기 어렵고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고 밝혔다.

이어 "자료상 제약으로 1970년대 이후로 이번 연구대상 시기를 한정했다"며 "100년으로 늘리는 후속 작업을 준비해 우리나라의 부의 축적 양상에 대한 논의를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윤소영 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