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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공무원 인권상황 '위험수위'

우울·불안장애 심각… 처우 태부족
우울·불안장애 일반인의 15배… 수면장애는 20배 이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위협에 시달려 자살도
소방공무원 33.2%가 안전장비 자비로 구입한 경험 있어
대표기구, 소방공무원 근로 기준에 대한 특별법 제정 필요
  •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청계산 관현사 인근에서 소방대원 등이 동절기 산불대비 민·관·군 합동 화재 진압훈련을 하고 있다.
생사가 오가는 현장에서 국민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방관들이 위기다. 소방공무원 다섯 명 중 한 명은 우울·불안장애를 겪고 있었다. 이는 일반인의 15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화재 진압용 장갑과 방화복 등이 부족해 자비로 구입하기도 하고 불규칙적인 근무환경에 따른 초과근무가 불가피한데도 이에 따른 수당은 제대로 지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자료에 따르면 1998년에서 2007년 동안 퇴직한 소방공무원의 평균 수명은 58.8세로 밝혀졌다. 소방공무원 8525명이 응답한 국가인권위 보고서를 통해 그들의 인권 실태를 살펴봤다.

소방공무원 우울·불안장애 일반인의 15배

26년 차 한 소방공무원은 "구급대원으로 활동하며 공황장애에 걸려 1년 동안 휴직을 하며 병원치료도 해 보았지만 낫지 않아 소방을 떠나려고 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언제 출동 사이렌이 울릴지 모르는 긴장상태의 연속인 소방공무원 생활이 힘겨웠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에 의뢰해 올해 3∼9월 소방공무원 8524명을 대상으로 '소방공무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연구했다. 전국 약 4만 명의 소방공무원 가운데 21%가 응답한 역대 최대 규모의 조사 보고서는 심각한 노동권과 건강권의 위기를 보여줬다.

소방공무원의 19.4%가 우울 또는 불안장애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반 노동자의 우울·불안장애 비율(1.3%)과 비교했을 때 약 15배에 이르는 수치다. 청력 문제를 겪는 소방공무원도 전체의 24.8%로 일반인의 약 15배였다. 불면증이나 수면장애가 있다고 답한 소방관은 43.2%로 일반인의 20배에 달했다. 전신피로(57.5%), 두통 및 눈의 피로(52.4%)를 느끼는 소방공무원들도 많았다.

화재 진압과 긴급 구조를 하는 소방관은 저강도 전쟁 상태에서 국민의 목숨을 구하는 영웅이지만 고도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약자였다. 소방공무원을 위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대해 상담할 수 있는 의료진이 배치돼 있지만 반복되는 현장을 겪으며 스스로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어려워 치료가 쉽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라북도의 한 소방관은 "전남에서도 소방공무원 3명이 자살했지만, 다들 숨기니 원인을 알 수가 없다"며 "내가 어떤 문제를 앓고 있는지 스스로 예방하는 것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초과근무에 따른 수당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행정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7월 기준 법원 결과에 따라 초과근무수당 지급대상 원인은 총 3만2395명으로 이 중 2136명은 초과근무수당을 받지 못했으며, 그 금액이 무려 1739억원에 달했다.

인원 부족, 장비 노후화로 위험

소방공무원에게 소방 업무가 위험한지를 묻자 전체의 93%가 '위험하다'고 답했다. 그 요인(복수응답)으로는 '인원 부족'(77%)을 꼽는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이어 '장비의 노후화'(73.1%), '위험물질에 대한 정보 부족'(50.7%), '건물 구조에 대한 정보 부족'(46%) 등의 순이었다.

장비 노후화에 대해 소방공무원 33.2%(2615명)는 최근 3년간 장갑·랜턴·안전화 등 개인 안전장비를 자비로 구입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소방관 A씨는 "실제로 동료들이 인터넷을 통해 장비를 구입하고 있다"며 "워낙 장비가 부족하다 보니 소방공무원들 사이에서 동료의 장비를 몰래 가져가는 일도 발생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소방관은 디스크를 고질병으로 앓고 있었다. 소방공무원의 60.5%(4639명)가 디스크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91.5%가 소방공무원 근무 이후 디스크 진단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소방공무원 스스로 건강 수준이 '매우 좋다' 또는 '좋은 편'이라고 응답한 소방공무원은 46.7%로 일반근로자(72.1%)보다 현격히 낮았다.

몸이 아픈데도 일을 하러 가는 상황도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몸이 아픈데도 나와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소방공무원은 34.1%로 일반근로자 집단(21%)보다 높았다. 조기 복귀한 이유로 92.6%가 '직장의 인력 부족'이었다.

2012년부터 3교대가 도입됨에 따라 소방공무원의 충원이 필요했지만, 3교대에 필요한 인력이 충분히 충원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2014년 당시 소방방재청은 2014년부터 5년 동안 1만3362명의 소방공무원을 충원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4년도에는 충원 계획이던 3천 명의 41%인 1227명만 충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한 해 동안 하루 이상 요양이나 병원 치료가 필요한 상처를 입은 소방공무원은 1천348명이었다. 그러나 실제 요양을 신청한 소방관은 225명에 그쳤으며, 이 가운데 요양 승인을 받은 것은 173명에 불과했다. 몸을 다친 소방관 중 공무상 요양 승인을 받은 이는 8분의 1 수준이었다. 또한 같은 기간 동안 화상을 입은 경험이 있는 소방관 4.6% 중 '병원 방문 없이 자가 치료를 했다'는 응답이 52.2%, '병원비 본인 부담'이 14.2%로 드러났다.

권익 보호 위한 대표기구 필요해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소방공무원의 권익 보호를 위한 대표기구의 필요성에 대해 '매우 필요하다'(75%), '필요한 편이다'(22.6%)라고 말했다. 대표기구가 생기면 가입하겠다는 응답도 '반드시 가입하겠다'(63.4%), '가입할 의사가 조금 있다'(31.6%)는 결과가 나타났다.

소방공무원의 근무 여건이 열악하다는 지적은 그동안 끊이지 않고 제기됐지만,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 연구팀은 "일선에 있는 소방관들이 저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돼 근무 환경 개선 요구가 정책에 잘 반영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소방공무원 인권의 핵심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라며 "소방공무원 전체를 아우르는 특별법 형태의 근로기준법 제정이나 복지기본법 개정하는 등 제도개선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방공무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가진 대표기구를 구성하고 가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쳐 소방공무원의 안전권, 건강권, 노동권을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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